솜씨 2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 가서 내 책을 읽은 이웃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나더러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느냐?”고 “글솜씨를 그렇게 키우는 비법이 있나요?” 하고 묻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르기 마련인데, 이제는 좀 나아졌다. 이제는 ‘어쩔 줄 살짝 안’다. 고작 열 해 앞서까지만 해도 나는 둘레 사람들한테서 “문장력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나는 열 해 사이에 아무한테도 안 밝힌 ‘문장력 향상 비법’이라도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글을 쓸 뿐이다. 나는 스스로 겪은 삶을 글로 옮기고, 글을 쓸 적에 언제나 마음으로 말한다. 손으로는 글판을 두들기지만, 입으로는 내가 글판을 두들기는 빠르기하고 똑같이 말을 한다.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손으로는 글을 친다. 그래서 내 글은 모두 내 말이다. 내 말씨가 그대로 글씨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으로 쓴 글을 곧장 올리는 일은 없다. 적어도 열 벌은 되읽고서 올린다. 때로는 서른 벌을 읽고서 올리고, 어느 글은 백 벌 넘게 되읽고 손질한 끝에야 올린다. 입으로 말할 적에 군더더기 하나 없기를 바라면서 글로 옮긴달까.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나 스스로 토를 달 곳을 하나라도 두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입으로 말하면서 글쓰기’를 한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전을 뒤적여서 내가 쓰는 모든 낱말을 찾아본다. 예전에는 종이사전을 뒤적여야 해서 글쓰기가 수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누리사전으로 쉽게 낱말찾기를 하니 짐이 퍽 덜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예나 이제나 글을 쓰면서 내 글에 깃드는 모든 낱말을, 뻔히 안다 싶은 낱말도 모조리 다시 찾아보고 뜻을 읽고 새기면서 쓴다. 아마 어느 낱말은 사전으로 만 벌 넘게 찾아봤겠지. 아니 십만 벌 넘게 찾아본 낱말이 있으리라. 나는 글을 쓸 적에 “내가 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는 배우는 사람이다. 나는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으로 배우려고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나한테는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대수롭지 않다. 말뜻하고 말결하고 말씨하고 말느낌하고 말넋하고 말숨하고 말사랑하고 말삶하고 말살림하고 말길이 대수롭다. 어떤 글이든, 눈으로 읽는 말이다.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 같은 말”이 바로 ‘글’이라고 할 만하다. 아무튼 나는 늘 이런 마음으로 글쓰기를 했는데, 어쩌면 2007년 무렵까지는 대단히 어수룩한 못난쟁이 글쓰기였다면, 2017년으로 접어드니 조금은 봐줄 만한 글쓰기로 나아졌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그저 쓸 뿐이다. 생각하고 배우고 살펴보고 익히고 돌아보고 갈고닦고 헤아리고 사랑하면서 하루를 즐기는 글을 쓸 뿐이다. 2017.12.2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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