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말은 틀림없이 털어내고

[오락가락 국어사전 39] ‘짐’인가 ‘하물·화물’인가



  한국말사전에 한국말 아닌 잔말이 무척 많은 오늘날입니다. 갖가지 말을 두루 담으려 한다면, 이때에는 한국말사전 아닌 백과사전 얼개로 담을 노릇이요,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제대로 다루어 쓰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두 갈래 사전이 엉성하게 섞이면서 말은 말대로 흐리멍덩하고, 살림은 살림대로 어수선하지 싶습니다. 말틀을 제대로 세울 적에 자질구레한 부스러기를 걷어낼 수 있고, 자잘한 것을 털어낸 사전이라면 매우 알찰 테지요.



짐 : 1.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챙기거나 꾸려 놓은 물건 ≒ 하물(荷物) 2. 맡겨진 임무나 책임 3. 수고로운 일이나 귀찮은 물건 4. 한 사람이 한 번 지어 나를 만한 분량의 꾸러미를 세는 단위

하물(荷物) : = 짐. ‘짐’으로 순화

화물(貨物) : [경제] 운반할 수 있는 유형(有形)의 재화나 물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짐배 : 짐을 실어 나르는 배 ≒ 복물선·복선(卜船)·하선(荷船)

화물선(貨物船) : 화물을 실어 나르는 배 ≒ 화선(貨船)



  사전은 ‘짐’을 풀이하며 ‘하물’을 비슷한말이라며 붙이지만, ‘하물’은 ‘짐’으로 고쳐쓰라고 다룹니다. 그렇다면 ‘짐’이라는 낱말에 이 한자말을 비슷한말로 붙일 까닭이 없겠지요. 이밖에 짐을 실어 나르는 배라면 ‘짐배’이면 되고, ‘화물선’은 “→ 짐배”로 다루면 될 노릇입니다. ‘복물선·복선·화선’ 같은 한자말은 모두 털어내어도 됩니다.



연중행사(年中行事) : 해마다 일정한 시기를 정하여 놓고 하는 행사

연례행사(年例行事) : 해마다 정기적으로 하는 행사

한해일 : x

해잔치 : x

해살림 : x



  해마다 꾸준히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이런 일을 한자말로는 ‘연중행사·연례행사’로 다루는구나 싶은데, 이런 한자말만 사전에 실을 노릇이 아니라, 이를 한국말로 담아낼 만한 ‘한해일·해잔치·해살림’을 얼마든지 새말로 지어 사전에 실을 수 있습니다.



커닝(cunning) : 시험을 칠 때 감독자 몰래 미리 준비한 답을 보고 쓰거나 남의 것을 베끼는 일. ‘부정행위’로 순화

부정행위(不正行爲) : 올바르지 못한 행위

훔쳐보기 : x

훔쳐쓰기 : x

베껴쓰기 : x

몰래보기 : x

cheat : 1. 속이다, 사기 치다 2. (시험·경기 등에서) 부정행위를 하다[속임수를 쓰다] 3. 바람을 피우다, 부정을 저지르다

カンニング(cunning) : 커닝; 시험 때의 부정 행위



  ‘커닝’은 일본을 거쳐 들어온 영어라고 할 만합니다. 몰래 베끼거나 훔치는 짓을 영어로는 ‘cheat’라 하니까요. 그런데 한국말사전은 ‘커닝’을 올림말로 삼고 ‘부정행위’로 고쳐쓰라고 다뤄요. 이보다는 ‘커닝·부정행위’모두 “→ 훔쳐보기. 훔쳐쓰기. 베껴쓰기. 몰래보기”쯤으로 다루면서, 이 네 낱말 ‘훔쳐보기·훔쳐쓰기·베껴쓰기·몰래보기’를 새롭게 올림말로 삼아야지 싶습니다.



맵다 : 1. 고추나 겨자와 같이 맛이 알알하다 2. 성미가 사납고 독하다 3. 날씨가 몹시 춥다 4. 연기 따위가 눈이나 코를 아리게 하다 5. 결기가 있고 야무지다

모질다 : 1. 마음씨가 몹시 매섭고 독하다 2. 기세가 몹시 매섭고 사납다 3. 참고 견디기 힘든 일을 능히 배기어 낼 만큼 억세다 4. 괴로움이나 아픔 따위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

사납다 : 1. 성질이나 행동이 모질고 억세다 2. 생김새가 험하고 무섭다 3. 비, 바람 따위가 몹시 거칠고 심하다 4. 상황이나 사정 따위가 순탄하지 못하고 나쁘다 5. 음식물 따위가 거칠고 나쁘다

독하다(毒-) : 1. 독기가 있다 2. 맛, 냄새 따위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고 자극적이다 3. 마음이나 성격 따위가 모질다 4. 의지가 강하다

독(毒) : 1. 건강이나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 2. 독성을 가진 약제. 극약보다 독성이 한층 강하여 극히 적은 양으로도 사람이나 동물의 건강이나 생명을 해칠 수 있다 = 독약 3.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 = 독기 4. 좋고 바른 것을 망치거나 손해를 끼침. 또는 그 손해 = 해독

독기(毒氣) : 1. 독의 기운 2. 사납고 모진 기운이나 기색

독성(毒性) : 1. 독이 있는 성분 ≒ 독력(毒力) 2. 독한 성질 3. [생물] 병원균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 숙주에서 나타나는 증상의 심각성을 이른다



  ‘맵다’라는 낱말은 ‘사납다·독하다’로 이어지고, ‘사납다’는 ‘모질다·억세다·험하다·거칠다·심하다·나쁘다’로 이어지고, ‘모질다’는 ‘매섭다·독하다·사납다·억세다·심하다’로 이어지고, ‘독하다(毒-)’는 ‘심하다·모질다·강하다’로 이어집니다. 가만히 따지면 어느 낱말도 풀이를 안 한 셈입니다. 모두 다른 낱말로 돌림·겹말풀이를 한 얼개입니다. ‘독기·독성’도 매한가지이지요. 뜻풀이가 안 된 이런 낱말을 처음부터 다시 풀이하기도 해야 할 테고, ‘독하다’는 “1.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빼앗을 만하다 2. → 사납다. 매섭다. 모질다. 맵다”로 다루면서, 한국말 ‘사납다·모질다·맵다’를 비롯한 여러 낱말(매섭다·억세다·거칠다)도 제대로 풀이해야겠습니다.



잔- : ‘가늘고 작은’ 또는 ‘자질구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잡-(雜) : 1. ‘여러 가지가 뒤섞인’ 또는 ‘자질구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막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외마디 한자말 ‘잡(雜)’을 사전에 올리자면 “→ 잔. 막” 이렇게 다룰 만합니다. ‘잡놈·잡초’ 같은 낱말은 ‘잔놈·잔풀’로 손질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어요. ‘잡스럽다 → 자잘하다. 자질구레하다’로 손질하도록 이끌 만하고요.



각가지(各-) : 각기 다른 여러 가지 ≒ 각항

갖가지 : ‘가지가지’의 준말

가지가지 : 이런저런 여러 가지

가지 : 1. 사물을 그 성질이나 특징에 따라 종류별로 낱낱이 헤아리는 말

각종(各種) : 온갖 종류. 또는 여러 종류 ≒ 각색

종류(種類) : 1. 사물의 부문을 나누는 갈래 ≒ 종(種)·종속(種屬)

갈래 : 1. 하나에서 둘 이상으로 갈라져 나간 낱낱의 부분이나 계통



  ‘각가지·각종’은 “→ 갖가지. 가지가지”로 다루면 됩니다. ‘종류’는 “→ 갈래”로 다루면 되고요. ‘가지’ 풀이를 보면 “종류별로 낱낱이 헤아리는”이라 적는데, 이는 겹말풀이입니다. “갈래로 헤아리는”이나 “낱낱으로 헤아리는”으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분명(分明) : 틀림없이 확실하게

확실하다(確實-) : 틀림없이 그러하다

틀림없다 : 조금도 어긋나는 일이 없다

어긋나다 : 1. 잘 맞물려 있는 물체가 틀어져서 맞지 아니하다 2. [식물] 식물의 잎이 마디마디 방향을 달리하여 하나씩 어긋나게 나다 3. 기대에 맞지 아니하거나 일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다 4. 서로의 마음에 틈이 생기다 5. 방향이 비껴서 서로 만나지 못하다

틀어지다 : 1. 어떤 물체가 반듯하고 곧바르지 아니하고 옆으로 굽거나 꼬이다 2. 꾀하는 일이 어그러지다 3. 본래의 방향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나가다 4. 마음이 언짢아 토라지다 5. 사귀는 사이가 서로 벌어지다



  ‘분명’은 겹말풀이를 하고, ‘확실하다 = 틀림없다’이니 ‘분명·확실’은 “→ 틀림없다”로 다룰 노릇입니다. 그런데 ‘틀림없다’를 ‘어긋나다’로 다루고, ‘어긋나다’는 ‘틀어지다’로 다루고, ‘틀어지다’는 ‘어그러지다’로 다루는 돌림풀이입니다. 이런 돌림풀이를 찬찬히 가다듬어야겠어요.



원인(原因) : 어떤 사물이나 상태를 변화시키거나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된 일이나 사건 ≒ 원유(原由)

근본(根本) : 1. 초목의 뿌리 2. 사물의 본질이나 본바탕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또는 그 단계

까닭 :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 ≒ 소이(所以)



  “근본이 된 일”에서 ‘근본’이란 ‘뿌리’나 ‘바탕’을 가리킵니다. 어떤 일에서 뿌리나 바탕이라면 ‘처음’을 가리키고, 이는 한자말로 ‘시작’이지요. 뜻이나 결을 헤아리면 “원인이자 시작”은 겹말입니다. 두 한자말 가운데 하나만 골라서 쓰거나 “모든 병이 싹튼 뿌리이다”나 “모든 병이 싹튼다”나 “모든 병이 비롯한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사전을 더 살피면 ‘까닭’을 ‘원인’으로 풀이하고, ‘원유·소이’ 같은 한자말이 비슷한말이라며 나오지만, ‘원유·소이’는 사전에서 덜 만하고 ‘원인’은 “→ 까닭”으로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자탄(咨歎/咨嘆) : 한숨을 쉬며 한탄함 ≒ 자차(咨嗟)

한탄(恨歎/恨嘆) : 원통하거나 뉘우치는 일이 있을 때 한숨을 쉬며 탄식함. 또는 그 한숨

탄식(歎息/嘆息) : 한탄하여 한숨을 쉼. 또는 그 한숨

한숨 : 근심이나 설움이 있을 때, 또는 긴장하였다가 안도할 때 길게 몰아서 내쉬는 숨 ≒ 대식(大息)·태식(太息)



  ‘한탄’은 “한숨을 쉬며 탄식”을 가리킨다니 돌림·겹말풀이에다가, ‘탄식’은 “한탄하여 한숨을 쉼”이라 하니 돌림·겹말풀이예요. 한자말 ‘자탄·한탄·탄식’은 모두 사전에서 덜어낼 만합니다. ‘한숨’ 한 마디이면 넉넉합니다. 따로 사전에 실어야 한다면 “→ 한숨”으로 다뤄야겠지요. 그런데 ‘한숨’을 풀이하며 두 가지 한자말을 비슷한말이라며 붙이는데, ‘대식·태식’은 쓸 일이 없으니 털어냅니다.



지방질(脂肪質) : 1. 성분이 지방으로 된 물질 2. [의학] 지방을 많이 함유하는 체질(體質) ≒ 기름질

지방(脂肪) : [생물] 지방산과 글리세롤이 결합한 유기 화합물. 상온에서 고체의 형태이며, 생물체에 함유되어 있다. 동물에서는 피부밑·근육·간 따위에 저장되며, 에너지원이지만 몸무게가 느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굳기름·지고(脂膏)

기름질(-質) : [의학] = 지방질

기름 : 1. 물보다 가볍고 불을 붙이면 잘 타는 액체. 약간 끈기가 있고 미끈미끈하며 물에 잘 풀리지 않는다. 동물의 살, 뼈, 가죽에 엉기어 있기도 하고 식물의 씨앗에서 짜내기도 하는데, 원료에 따라서 빛깔과 성질이 다르고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2. ‘석유’를 달리 이르는 말 3. 기계나 도구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되도록 마찰 부분에 치는 미끈미끈한 액체 4. 얼굴이나 살갗에서 나오는 끈기 있는 물질

굳기름 : [생물] = 지방(脂肪)

물기름 : 물처럼 묽은 기름. 흔히 끈기 있고 된 포마드에 상대하여 동백기름 같은 머릿기름을 이르는 말이다



  이 나라에 ‘지방’이란 한자말이 갓 들어올 무렵 ‘굳기름’으로 고쳐쓰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이처럼 고쳐서 쓰기로 했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들어선 뒤로 이 말씨가 묻혔습니다. 그런데 ‘굳기름’이라 하지 않아도 ‘기름’이란 낱말이 ‘지방’을 나타낼 수 있어요. 큰 얼거리로 ‘물 같은 기름’하고 ‘덩어리가 된 기름’이 있되, ‘물기름·굳기름’으로 가를 만해요. 사전풀이에서는 이 대목을 찬찬히 살펴서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지방’ 같은 한자말을 쓰더라도 ‘굳기름’을 알맞게 쓰는 길을 나란히 밝힐 노릇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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