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
르 꼬르뷔제 지음, 황준 옮김 / 미건사 / 1993년 6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작은 집
- 글쓴이 : 르 꼬르뷔제
- 옮긴이 : 황준
- 펴낸곳 : 미건사(1994.5.10.)
- 책값 : 5000원


 ‘르 꼬르뷔제’가 누구인지, 또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디에선가 이름을 익히 들었다는 생각에 《작은 집》이라는 작은 책을 덜컥 집어듭니다. 사진이 많고 글은 적은 책, 으흠, 이이 르 꼬르뷔제는 집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로군요.


..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수에서 4m라구? 그 사람들 미쳤군! 류머티즘에 걸리고, 무엇보다 호수면의 반사 때문에.” ‘모두들’ 자세히 관찰도 하지 않고, 잘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류머티즘이라고? 예컨대 남비에 물을 끓여 보면 된다. 수증기는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 남비 위쪽으로 올라가지, 절대로 남비 측면으로는 돌지 않는다. 통상 ‘습윤성 류머티즘 증상’은 표고 50미터 내지 100미터 전후의 구릉지에서 많이 발생한다 ..  〈13쪽〉


 온 나라 구석구석 아파트가 들쑥날쑥 들어서는 이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얼마나 ‘생각’을 해 보며 아파트를 지을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 기운, 햇볕, 바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까요. 아파트가 들어서며 달라질 그곳 삶터, 자연, 사람 들을 헤아려 보았을까요. 아파트를 세우면 집값이 얼마가 오르고, 돈을 얼마 버는 데에만 눈길을 쏟지 않았을까요.


.. 이 집의 개가 기뻐하도록(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개도 가족의 일원이므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밑을 볼 수 있는 높이에 울타리가 있는 구멍을 뚫고 작은 발판을 설치해 주었다. 이렇게 해 두면 개가 싫증을 내지 않고 놀게 될 것이다. 대문 울타리에서 이 발판이 있는 구멍까지 개는 계속해서 20미터나 뛸 수 있고, 또 거리낌없이 짖을 수도 있다 ..  〈27쪽〉


 요사이는 집에서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짐승을 기르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에도 집집마다 개며 닭이며 고양이며 돼지며 소며 염소며 토끼며 온갖 짐승을 길렀습니다. 지난날 짐승기르기는 우리가 먹는 고기짐승이기도 했지만, 한식구로 여기는 살가운 동무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날 우리가 기르던 짐승들은 딱히 ‘목에 줄이 매여 좁은 집구석에 갇히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일소를 부리고 돼지를 친다고 해도 이들 집짐승이 어느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마음을 썼어요.

 오늘날 애완동물은 아파트 구석에서 눈치를 받으며 살그머니 키워야 하거나 좁은 시멘트 소굴에 갇힌 채 온삶을 마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집짐승이 그곳에 사람과 함께 살겠거니 생각하는 ‘건축가’란 없고, ‘아파트 회사’에서도 이런 데에는 마음을 안 쓰니까요.

 집짐승을 기를 수 없는 집이라면, 사람도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숨구멍을 트며 살 만한 집이라면, 어떤 집짐승도 즐겁게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마당이 있는 집에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기 좋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이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도 한결 마음을 부드럽게 다스리고 조촐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이제 벌써 9월 말이 되었다. 가을 화초가 피기 시작한 옥상에는 다시 푸르름으로 가득 찼다. 야생 제라늄도 빽빽히 자라서 이곳 한쪽 면을 뒤덮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광장이다. 또 봄에는 어린 풀들이 자라고, 작은 화초가 피고 진다. 여름에는 키가 큰 잡초가 무성해 초원을 방불케 한다. 옥상 정원은 이렇게 자생하고 있다. 태양과 비와 바람과 씨앗을 날라다주는 새들 마음대로(아주 최근, 1954년 4월의 일이었는데, 이 옥상 한쪽 면은 원추리로 파랗게 뒤덮였었다. 원추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옮겨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  〈46∼47쪽〉


 아파트에도 뜰이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인은 틈틈이 뜰을 돌보며 ‘자기들이 심은 나무나 꽃’ 아닌 풀이 자라는가 빈틈없이 살피며 풀뽑기를 합니다. 꽃나무는 자기가 뻗고픈 대로 가지를 뻗을 수 없고, 1층과 2층, 또는 3층에 해를 가린다며, 위로 줄기를 올릴 수 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민들레 씨앗이 날아와도, 지나가는 새한테 묻어 온 들꽃이 뿌리를 내려도 어김없이 뽑힙니다.

 아파트 뜰은 겉보기로는 예쁘장하게 꾸민 푸름이 있는 듯 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끙끙 앓는 나무와 무서움에 벌벌 떠는 풀들이 잔뜩 옹크린 채 숨을 죽이고 있는 감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옥 같은 데에서 자라는 풀들이 푸르다면 얼마나 푸를 수 있을까요. 이런 풀을 보며 푸름을 느끼는 아파트사람들은 얼마나 마음에 푸름을 담을 수 있을까요.


.. 1924년에 이 작은 집이 완성되어 내 양친이 이사하려고 할 무렵, 이곳 촌장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이 땅에 이런 건축물은 ‘자연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라고 논의했다. 또 이 집이 이 땅에 세워짐으로써 앞으로 이런 종류의 건물이 (어쩌면) 몇 채나 더 지어질 것이 아니겠는가고 걱정하고, 이것이 다시는 더 모방되지 않도록 하자고 이런 건물의 건축을 금지했다 ..  〈82쪽〉


 르 꼬르뷔제라는 이가 지은 집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이 부모님은 이곳에서 마지막 삶을 아늑하게 보냈지만, 마을사람들하고 어우러지지 못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때부터 여든 해가 훌쩍 지난 2007년 오늘 르 꼬르뷔제를 돌아본다면, 지금도 르 꼬르뷔제가 지은 이 집은 ‘실패’일까요. 오늘 이 나라에서 아파트를 꾸역꾸역 온갖 곳에 세우는 ‘건축가’들은 ‘성공한 집’을 짓고 있을까요. 이집트에서 집짓는 일을 하는 하싼 화티는 ‘의사들이 맹장수술을 한다고 할 때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길이로 살을 갈라 똑같은 크기대로 맹장을 덜어내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람이 살 집을 그곳에 깃들 사람들 형편에 따라 다 다르게 짓지 않는 사람은 건축가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 구석구석 들어서는 아파트는 사람이 살라고 지은 집일까요. 죽은 르 꼬르뷔제가 본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찾아드는 그 수많은 아파트는 어떠한 집일까요. 아니, 집이라 할 수 있을까요. 사람도 집짐승도 깃들 수 없는 시멘트 소굴이거나, 사람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잃고 하루하루 마음이 병들고 몸은 찌들며 죽어가야 하는 시멘트 무덤은 아닐는지요. 우리가 깃들어 살아갈 집이라면, 돈으로 마련하는 집이 아니라, 그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며 얼마 동안 어떻게 지낼까를 헤아려서 저마다 다 다르게 지을 집이 아닐는지요. (4340.3.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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