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1

왜 이렇게 시장이며 군수이며, 또 국회의원이며 장관이며 대통령이며, 막삽질을 밀어붙이는지 몰랐다가, 이제 환하게 안다. 그분들은 마을에 안 살고 아파트에 산다. 그분들은 흙을 안 만지면서 살고, 언제나 심부름꾼을 곁에 두고서 운전수 거느린 자가용에 앉을 뿐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알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길을 가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통령을 비롯해서 시골 면장까지, 모든 공공기관 벼슬아치가 된 사람한테는 ‘마을집 + 자전거’를 주어야지 싶다. 도시라면 가장 오래된 골목마을 골목집을 한 채 주고, 자전거를 한 대 주어, 골목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그분 일터로 날마다 오가도록 하기. 그분 곁에 경호원이 있어야 한다면 경호원도 같이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면 되지. 경호원도 골목마을 골목집에 깃들어서 살고. 이렇게 하면 나라도 마을도 확 달라지리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2007.12.20.


마을 2

자주 다니지 못하더라도 틈틈이 떠올리면서 마실을 할 수 있으면 즐겁다. 굳이 날마다 다녀야 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걸음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운 하루이다. 마을을 알고 싶다면 마을에서 살면서 마을을 거닐어야 할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골목마실을 도무지 못 한다고 하지 말고, 이레에 한 걸음을 해도 좋고, 바쁘게 일터를 오가는 길에 1분쯤 말미를 내어도 좋다. 바로 이 1분을 써서 샛길로 접어들어 해바라기를 할 수 있다면, 마을도 골목도 이웃도 새삼스레 품을 수 있다. 2008.6.17.


마을 3

엄청난 돈을 퍼부어서 다 때려부수고 아파트를 올리는 재개발을 해야 마을이 살아나지 않는다. 돈을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돈에 얽매이는 쳇바퀴가 된다. 마을사람 스스로 차근차근 손질하고 가꾸는 살림을 아끼는 나라길을 편다면, 이때에는 돈 한푼 안 들여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마을이 태어난다. ‘마을살리기’란 이름을 함부로 쓰지 마라. 어느 마을이 언제 죽었느냐? 멀쩡히 살아서 싱그럽게 춤추는 마을을 들여다볼 생각을 안 하면서 돈에 눈이 먼 막삽질을 ‘마을살리기’란 이름으로 밀어붙이지 마라. 2009.4.16.


마을 4

골목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골목’이란 말을 쓸 일이 없었다. 동무들하고 늘 ‘거기’나 “너희 집”이나 “우리 집”이라 했다. 때로는 ‘빈터’를 찾아서 놀 뿐이었고. 이런 곳에 꽃이 피고 나무가 우거지며 밭이 있는 줄 깨달은 때는 서른이 한참 지나고서. 이윽고 아이가 태어나 갓난쟁이를 안고 업으며 해바라기를 다니고 걸음마를 가르치면서 온골목이 꽃밭이요 나무숲이며 텃밭인 줄 깨닫는다. 마을이 서기 앞서 들꽃이요, 마을이 서며 마을꽃이었을 텐데, 인천 같은 고장에서는 ‘골목꽃’이 될 테지. 골목이웃 스스로 살아내는 터에 사랑이란 손길을 담아 살림을 지으니 어느새 보금자리 되고, 이곳에 새빛이 서리더라. ‘골목빛’이다. “산다고 해”서 보지는 않더라. “사랑해”라는 마음이기에 바라보고 알아보더라. 2019.1.2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