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1
작은 신문사지국에 빨래틀이 없다. 놓을 자리도 없다. 이곳에서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손빨래를 한다. 청바지를 손빨래하자니 꽤 힘이 든다. 청바지가 이런 옷이로구나. 자전거를 돌리고 나서 땀으로 옴팡 젖은 몸을 씻으며 옷도 같이 빨래한다. 손빨래를 하며 살다 보니 가벼운 옷을 걸친다. ‘보기 좋은 옷’이 아닌 ‘빨래하기 좋은 옷’을 입는다. 1995.8.22.
빨래 2
“야, 손이 얼었어. 어떻게 빨래하지?” 옆에서 내무반 동기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콩콩 뛰면서 말한다. “난 신문배달하면서 늘 손빨래를 하고 살아서 그리 힘들지 않아. 그리고 손이 얼었대서 안 빨면 이 옷을 입을 수도 없어. 얼었으면 얼었구나 여기면서 이 얼음물을 못 느끼니 그냥 끝내면 되겠네 하고 생각해야지. 야, 바깥은 영하 십 도가 넘는 날씨인데, 물이 안 얼어서 오히려 고맙다 해야 하지 않니? 이 물이 얼어버리면 빨래를 하고 싶어도 못해. 고맙다고 절하면서 빨래해. 언손은 녹이면 돼. 오늘 빨래를 못하면 앞으로 한 달 동안 냄새나는 옷을 그대로 입고 살아야 해.” 1996.2.5. (덧말 :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원당리. 군대에서 이등병이던 때.)
빨래 3
둘레에서 “최종규 씨는 집에서 손빨래를 하지 않고 기계빨래를 하면 글을 쓸 겨를을 더 낼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묻는다. “집에서 밥해 주고 살림해 줄 사람이 있으면 글을 더 많이 쓸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도 묻는다. 이런 말에 빙긋 웃고서 대꾸한다. “아기 똥오줌기저귀를 손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손수 씻기고, 집살림을 기꺼이 짊어지면서 살아가다 보니, 외려 글쓸거리가 샘솟아요. 아니, 글쓸거리가 샘솟는다기보다는 말이지요, 저 스스로 앞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길을 어떻게 슬기롭게 가다듬으면서 이곳에서 씩씩하게 서야 하는가를 스스로 배울 만해요. 스스로 배우니 때때로 글을 써요. 스스로 배운 기쁨을 가끔 글로 옮겨요. 글만 쓰면서 어떻게 살아요? 아이들하고 복닥이고 숲을 노래하는 살림을 지으니, 더러 글손을 잡으면서 환하게 웃을 만하고, 책도 쓰고 읽고 돌보는 하루가 된다고 느껴요. 빨래를 하노라면 마음도 차분해지고 대단히 좋아요. 손빨래를 해보셔요. 삶이 확 다르게 보인답니다.” 2011.10.10.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