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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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51


《묻다》

 문선희

 책공장더불어

 2019.3.8.



이렇게 좁은 땅에 어떻게 소를 299마리나 묻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85쪽)


1990년 우리 정부는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세계동물보건기구의 국제 규약과 외국 관례 등을 바탕으로 살처분을 구제역 박멸을 위한 기본 모델로 채택했다. ‘사료 소비’, ‘생산량 감소’, ‘수출 제한’, ‘비용 절감’. 살처분 정책 어디에도 생명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91쪽)


좁은 공간에 갇혀 살을 찌우는 사료만 먹고 자란 동물은 덩치만 클 뿐 건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동물의 건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소 2∼3년, 돼지 5∼6개월, 닭은 35일, 출하되는 그 순간까지 숨만 붙어 있도록 도축이 가능하다. 인간이 고기를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고기를 얻기 위한 이 모든 과정을 먹이사슬에 의한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105쪽)


오늘날의 전염병 만연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추론해 볼 수 있다. 따뜻한 햇살, 신선한 바람과 맑은 물, 동물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본능에 따라 살 수 있는 농장. 답은 그 안에 있다. (168쪽)



  ‘사람들’이 아닌 ‘우리’는 멋모르고 살아가기 일쑤이지 싶습니다. 이른바 조류독감이나 구제역이 불거진다고 할 적에 고기짐승을 산 채로 땅에 파묻었지요. 아픈 짐승을 돌보거나 낫게 하려는 길을 가지 않았어요.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집에서 돌보는 귀염짐승이나 벗짐승이 아플 적에 어떻게 할까요? ‘너희가 어디 아프니 너희를 산 채로 파묻어야겠구나!’ 하고 여길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아픈 데가 낫도록 애쓸까요?


  조류독감이든 구제역이든 또다른 이름을 붙인 돌림병이 휩쓴다고 할 적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빨간 줄로 친친 감아서 막기만 하면 될 노릇일는지, 우리 곁에 있는 살뜰한 이웃으로 여겨서 차근차근 돌보면서 나아지는 길을 찾을 노릇인지, 이제는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묻다》(문선희, 책공장더불어, 2019)는 숱한 짐승을 파묻고서, 이 일이 그저 묻혀지나가도록 하는 나라살림뿐 아니라 우리 눈길을 맞바로 보면서 찬찬히 물어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묻고 나서 묻으려 하기에 묻는 책입니다.


  무엇을 물을까요? 무엇보다도 고기를 값싸게 사다가 먹을 줄은 알되, 정작 값싼 고기를 키우는 얼거리를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는 우리 모습을 묻습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어떻게 먹고 싶은지, 먹으면서 가꿀 삶터는 어떻게 돌보려 하는가를 묻습니다.

  값싼 고기가 아닌 제값을 치르는 맛나고 좋은 고기를 누리는 길을 갈 수 있기를 묻습니다. 제값을 치르는 맛나고 좋은 고기는 굳이 배불리 안 먹어도 넉넉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생각해 봐야지요. 맛있고 좋은 밥이라면 알맞게 먹어야 몸도 마음도 삶터도 다 좋습니다. 그다지 맛있지 않기 때문에 값싸게 잔뜩 사들여서 먹고 버리는 얼개는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을 묻어야 할까요? 씨앗을 묻어야겠지요.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할까요? 사랑스레 짓는 살림을 서로 물어보고 배우면서 나누어야겠지요.


  씨앗을 묻어 새싹이 돋는 땅은 아름답고 싱그럽습니다. 산 목숨을 마구 파묻어 곰팡이가 피고 썩어문드러지는 땅은 슬프고 아픕니다. 산 목숨인 아이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터전이 되면 아름답습니다. 산 목숨인 아이들이 꽃으로 필 길을 가로막거나 싹둑 잘라버리는 입시지옥이 되면 끔찍합니다.


  우리는 어느 길을 걷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걷는 길을 제대로 보기는 할까요? 물어야 합니다. 걸음걸이를 묻고, 살림길을 묻고, 꿈자락을 물을 노릇입니다. 바야흐로 묻어야 합니다. 기쁜 노래를 고이 묻고, 밝은 춤사위를 넉넉히 묻을 수 있는 놀이마당으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산 목숨은 이제 그만 묻기를 바라요. 고깃덩이 아닌 이웃을 보는 눈이 되면 좋겠어요. 살덩이 아닌 숨결을 읽는 마음이 되면 좋겠어요. 삶을 묻습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을 묻습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한테 스스로.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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