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1
어머니한테 꽃이름을 여쭈면 어머니는 꽃잎이 아닌 풀잎만 보고도 어떤 꽃인지 척척 알려준다. “우아, 어머니 대단하다! 어떻게 꽃이름을 이렇게 다 알아요?” “응, 그냥 알지.” “어머니는 식물도감보다 훨씬 훌륭해요!” “뭘.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면 다들 알아.” 1985.7.2.
꽃 2
“네가 먹는 모든 과일은 다 꽃이었어. 몰랐니?” “…….” “어머, 우리 종규가 모르는 것도 다 있네. 학교에서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줬니? 호호호.” 1987.9.4.
꽃 3
남자고등학교란 데는 참 웃기다. 누가 꽃무늬나 꽃그림이 들어간 옷이라든지 신이라든지 책받침이라든지 공책을 쓰면 바로 손가락질을 하며 계집애 같다고 놀린다. 어쩜 이렇게 엉터리 같은 생각을 다 할까. 꽃이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1991.4.16.
꽃 4
“선배, 꽃무늬옷 예뻐요. 어울려요. 그 옷 어디서 났어요?” “응, 새벽에 신문배달을 할 적에 아파트도 한 곳 돌리거든. 그곳에 헌옷 모으는 상자가 있는데, 거기를 뒤지면 입을 만한 옷이 있더라. 거기서 한 벌 가져왔어.” 1999.5.9.
꽃 5
봄이 되어 갓 봉오리를 터뜨린 꽃을 본다. 향긋한 냄새를 맡으려고 눈을 감고 코를 살며시 대려 하는데 파르르 떠는 몸짓을 느껴 문득 눈을 뜬다. 눈앞에 딱히 아무것도 없다. 뭐지? 다시 눈을 감고 코를 꽃송이에 대는데, 나한테 꽃내음을 베푸는 꽃송이가 파르르 떠는 기운을 느낀다. 아, 꽃이 파르르 떨었네. 설마 제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내밀었다고 이렇게 기뻐하면서 파르르 떨었나? 벌이며 나비가 꿀하고 꽃가루를 찾아서 꽃마다 찾아드는 마음을 알겠다. 2004.3.29.
꽃 6
어린 날에는 동무들하고 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거나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딱지를 치거나 제기를 차거나 팽이를 돌리거나 연을 날리거나 자치기를 하거나 땅따먹기를 하면서 흙바닥이나 돌틈에 꽃이 핀 줄 하나도 못 알아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떠난 인천에 돌아온 이제, 어릴 적 놀던 골목이나 태어나서 자란 골목을 다시 거닐어 보니 곳곳이 꽃밭이다. 골목집에서 길바닥을 들어내어 마련한 손바닥만 한 꽃밭뿐 아니라 돌틈이며 온갖 곳에서 꽃이 흐드러진다. 골목이 그냥 골목이 아니네. 온통 꽃골목이네. 새가 심고 골목사람이 심어서 자라는 꽃으로 골목이 아주 밝은 냄새로 가득하네. 2007.4.15.
꽃 7
꽃은 기다린다. 저를 눈여겨보거나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다가 가만히 다가와서 쓰다듬어 주기를. 우리 집 뒤꼍에 옮겨심은 나무가 여섯 해 만에 꽃을 피운다. 뒤꼍으로 오르는 길목에 흰민들레 두 송이가 피었다. 내가 심은 민들레일까, 아이들이 꽃씨를 후후 불며 놀았기에 뿌리를 뻗은 민들레일까. 2019.3.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