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너나없이’ 볼 수 있다면 ‘너나있이’ 볼 수 있다. ‘너나없이’란, 너랑 나를 가리려는 마음이 없이 보려는 눈이다. ‘너나있이’라면, 너랑 나를 가리려는 마음이 있이 보려는 눈일 텐데, 너랑 나는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다. 너랑 내가 살아가는 몸뚱이가 다르고, 너랑 내가 짓는 살림이 다르고, 너랑 내가 사랑하는 길이 다르다. 그렇지만 너랑 나는 똑같이 아름다운 숨결이자 넋이자 마음이다.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달라 어느 곳에서 일하더라도 자리도 다를 텐데, 자리란 위아래로 가르지 않는다. 자리는 그저 자리로 가른다. 윗자리하고 아랫자리란 없다. 이 자리 저 자리 그 자리가 있을 뿐이다. 네가 위에 서거나 내가 위에 설 수 없고, 내가 밑에 서거나 네가 밑에 설 수 없다. 이를 읽지 못하기에 서로 ‘남’이 된다. 이를 읽지 못한 채 서로 높이거나 낮추어야 하기에 그만 ‘놈·년’이 된다. 이를 읽을 적에는 비로소 서로 ‘님’이 된다. 이야기를 하려면 너나없는 마음이 되면서, “참다이 너나있는, 참너랑 참나가 어깨동무하는 사이인 마음”이어야지 싶다. 1995.11.4.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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