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거미의 사랑 창비시선 259
강은교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래책시렁 61


《초록 거미의 사랑》

 강은교

 창비

 2006.2.6.



  흔히들 ‘읽을 사람(독자)’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합니다만, 저는 달리 바라봅니다. ‘쓰는 사람’은 ‘스스로 읽으’려고 쓸 뿐, ‘남한테 읽힐’ 뜻으로 쓸 수 없어요. 남한테 읽히려는 글은, 남한테 예쁘게 보이려는 얼굴이나 옷차림 같다고 느껴요. 남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또는 안 나쁘게 보이려고, 또는 훌륭히 보이려고 얼굴이나 옷차림을 매만지는 몸짓이라면, 글쓰기에서도 ‘남한테 잘 보이려고 겉치레나 겉멋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되읽으려고 쓰는 글이라면 ‘남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오직 제 마음을 깊고 넓게 파헤칩니다. 그래서 스스로 되읽으려는 뜻으로 마음을 깊고 넓게 파헤치면서 쓰는 글일 적에는, 뜻밖에 ‘이웃도 같이 읽을’ 글로 거듭나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하고 함께 읽으려고 쓰기에 아름다운 동시가 아니라, 어른 스스로 어린이 마음·삶·사랑이 되어 쓰는 동시이기에 아이도 나란히 읽을 만하다고 느껴요. 《초록 거미의 사랑》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쓴이는 독자나 평론가 눈치나 눈길이 아닌 시쓴이 마음을 바라보려는 넋으로 글을 썼구나 싶어요. 남 눈치를 안 보는 글을 얼마만에 만나는지! 다만 시쓴이는 자꾸 남 눈치나 눈길에 얽매이려 합니다. 한국에서 글쟁이란 자리는 아무래도 눈치나 눈길을 보는 몸짓이로구나 싶은데, 풀거미라면 풀밭에서 새 거미줄을 짜면 돼요. ㅅㄴㄹ



길게 줄지어 마을버스를 기다리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이가 뛰어나간 곳은 울퉁불퉁한 흙더미. 아이의 얇은 발이 흙더미를 헤쳤다. 노란 바탕에 검은 점이 무수히 찍힌― 야아, 나비!― (나비/43쪽)


그래, 시는 넘쳐난다. 우리 시대에 시인은 너무 많다. / 시인들이 넘쳐나는 탓에 평화의 노래도 넘쳐나는구나. / 전쟁의 반대가 평화가 아닐 수 있다고. (어떤 회의장에서, L.J.N.을 추모하며/132쪽)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