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18. 가르치다
‘2019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신청하라는 누리글월을 몇 달 앞서 받았습니다. 예전에 신청을 한 사람한테는 저절로 알림글월이 오는 듯합니다. 몇 해 앞서 신청해 보았을 적에 ‘탈락’을 했다는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탈락을 시켜 미안하다’고 전화를 걸어 온 적 있습니다. 떨어진 사람한테 떨어졌다고 알려줄 까닭이 있는지 몹시 아리송했으나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습니다. 아무튼 올해에는 신청서류가 꽤 많습니다. 문단성추행이 불거지기도 한 탓인지, 문단성추행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다짐글도 서류로 붙이라고 합니다. 이러다가 한 가지 서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막혀서 기금 공모를 맡은 일꾼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그런데 이곳 일꾼이 매우 퉁명스럽고 딱딱하게 대꾸할 뿐입니다. 벙벙하더군요. 아니, 이 사람 왜 이러지? 도움을 바라는 대목을 알려주면 되지 “안 돼요.” “없어요.” 이런 말만 하고 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아, 아, …… 이 따위 기금은 신청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 기금 신청을 안 하기로 합니다. 어쩜 이런 공무원이 다 있으랴 싶어, ‘불친절조차 아닌’ 이이를 어디 신고라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둡니다. 그리고 동시를 씁니다. 팔짱끼고 콧대센 벼슬아치는 잊고, 즐겁게 마음을 기울이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동시를 띄울 이웃님 한 분을 그리면서 ‘가르치다’라는 낱말로 이야기를 엮습니다. 벼슬아치 한 분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돌아보고,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 삶길을 걸어가려는가를 헤아려 봅니다. ㅅㄴㄹ
가르치다
해꼬리가 하루하루 길어지다가
어느 날 문득 멈추고
차츰 높이 오르는 날이다
겨울이 저문다고 알려준다
바람 타고 날아와 싹튼 씨앗
웅크리다가 확 터진 잎망울
밭자락에 솟는 쑥이다
봄이 피어난다고 보여준다
새벽을 열며 지저귀는 새
아침에 스러지는 이슬
밤이 깊어가는 밝은 별이다
하루를 고이 지으라고 가르친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말 익히고
어버이는 아이한테서 사랑 배우고
나는 너한테서 웃음 물려받고
너는 나한테서 노래 물려준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