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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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6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공경희 옮김

 북뱅크

 2008.12.5.



“하이디도 전쟁을 하는 것은 알았어.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했거든. 하지만 그것이 히틀러 잘못이라고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 집안사람들은 모두 히틀러를 위해서 일하는 이들이었어. 그들은 히틀러를 훌륭하다고 여겼고, 하이디에게 그렇게 말했어.” (57쪽)


  우리는 서로 어떤 눈으로 바라보면서 부를까요? 우리는 때때로 ‘서로 다른 사람’이나 ‘저마다 다른 숨결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인 줄 잊은 채 부르지는 않을까요? 따지고 보면 “누구 아들”이나 “누구 딸”이기는 하겠으나, “누구 아들이라더라”나 “누구 딸이라지” 같은 껍데기를 자꾸 씌우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이름을 잊는달까요.


  어떤 사람 아들이나 딸이라 해서 어느 사람하고 똑같거나 닮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크게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 사람 아들이나 딸이 그 잘못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하지 않아요. 다 다르거든요. 그리고 어느 사람이 크게 빛나는 일을 했어도 그 사람 아들이나 딸은 저마다 다른 길을 갈 뿐이겠지요.


“그렇지. 아들의 잘못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가 아버지가 한 짓을 잘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악행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건 안 될 일이지. 과거의 잘못을 똑바로 보지 않으면 되풀이할 수 있단다.” (114쪽)


  어린이문학 《히틀러의 딸》(재키 프렌치/공경희 옮김, 북뱅크, 2008)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째, 호주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로 생각을 북돋우고 마음을 살찌우는 삶을 보여줍니다. 둘째, “히틀러 딸”인지 “하이디”인지, 어느 이름으로 부르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람을 아주 다르게 보거나 느낄 뿐 아니라, 이이는 이웃이나 동무가 될 수도 있지만, 아예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어요.


  다만, 이 책은 ‘지은 이야기’입니다. 히틀러란 사람한테 딸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다고 해요. ‘히틀러한테 딸이 있다면, 그리고 그 딸이 전쟁통에 살아남아서 아버지하고 아주 다른 길을 조용히 걸어간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를 동화 얼거리에 담아서 묻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히틀러 딸” 또는 “하이디”는, 이 이야기에서 짝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고 해요. 이때에 어느 아이는 “히틀러 손자!”라 말하지만, 다른 아이는 “하이디 아이!”라고 대꾸합니다. 자, 이때에도 또 다른 이름이자 삶입니다. 그리고 “누구네 아이”이기 앞서 “아무개”라고 하는 그 아이 이름이 있어요.


“의사랑 결혼해서 아이들도 낳았어.” “히틀러의 손자들이네!” 마크가 말했다. “아냐. 하이디의 자식들이야.” 안나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196쪽)


  우리는 서로 이름으로 부르기에 동무가 됩니다. 생각해 봐요. 동무하고 노는데 동무를 “누구 아들”이나 “누구 딸”이라 부를까요? 아니지 않나요? 우리는 동무 이름을 부르며 동무하고 놀아요. 오로지 동무 이름만 떠올리면서 동무하고 마음으로 사귀어요.


  서로서로 어떤 눈으로 보려나요?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려나요? 우리는 어떤 삶으로 손을 잡거나 손을 뿌리치려나요? 우리는 서로 무엇을 보려나요? 기쁘게 어우러질 삶을 바라는지, 아니면 허울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도 삶길을 못 보려는지, 찬찬히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더피(히틀러)의 딸은 이제 없었어. 겔베르 선생님이 만들려고 애쓰던 착한 아이도 사라졌어. 남은 것은 하이디뿐이었어. 하이디의 마음속 깊이 있는 작은 씨앗뿐이었어. 살아남아야 했어. 그래야 씨앗이 자랄 수 있으니까. (184쪽)


  아이들이 저마다 생각을 새롭게 지피는 이야기를 다루는 《히틀러의 딸》에서 찬찬히 짚기도 하는데, 잘잘못과 사랑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서로 이웃이 되려는지 동무가 되려는지, 아니면 그냥 남남이거나 미워하는 사이가 되려는지를 자꾸자꾸 물으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만난다면, 내가 너를 만나고 네가 나를 만난다면, 바로 너는 너요 나는 나이기 때문일 테지요. “누구네 집 아이”라는 껍데기를 헤아리면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만남이 서로 즐거울까요?


  허울이 도사리는 삶이 될 수 있지만, 깊이 따스하면서 넉넉하게 어깨동무하는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책은 “히틀러의 딸”을 다루는데, 한국이라면 “전두환 아들”을 떠올릴 만하겠지요. 그러나 살가이 만나는 고리가 아닌, 미움과 멍울이라는 고리는 이제 끊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같이 끊어야겠지요. 그분도, 우리도. 그리고 다함께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야겠지요. 흙을 만지고 숲을 노래하면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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