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정철 지음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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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50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정철 엮음

 사계절

 2017.7.7.



“한마디로 ‘이희승 사전’ 때부터 전문용어, 한자어, 백과사전적인 용어를 보태면 어휘 늘리기가 쉬우니까 다 그런 식으로 작업해서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까지 나아간 거야. 일반 어휘도 어느 정도 보태긴 했지만, 말뭉치 속에 있는 것들을 눈여겨보면서 일일이 거두진 못했지.” (41쪽/조재수)


“분야별로 전문가와 학자들이 글을 썼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학자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생각해요.” (98쪽/장경식)


“‘가다’의 뜻풀이가 어마어마하게 많잖아요. 너무 많아서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 언중이 ‘가다’를 다양하게 쓰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잖아요.” (187쪽/도원영)


“영한, 일한, 한영, 한일사전 다 일본에서 개발한 사전을 놓고 작업했어요. 지난날 사전의 부끄러운 모습이죠. 영어사전을 만들 때 영어 쪽 사전을 토대로 만드는 것보다 일본에서 만든 영일사전을 놓고 번역하는 게 훨씬 손쉬운 작업이었으니까요.” (256쪽/안상순)



  제가 하는 일은 ‘한국말사전 새로 짓기’입니다. 둘레에서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줄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이고, 조금 생각하더라도 한국말사전을 ‘새로 짓기’를 한다는 대목을 아리송하게 여깁니다. ‘국어사전’이 여러 가지 있는데 굳이 왜 사전을 새로 짓느냐고 물어요.


  이때에 먼저 ‘국어’라는 말부터 우리가 털지 못한 찌꺼기라는 대목을 밝힙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 우두머리가 이웃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며 억지로 밀어붙인 말이 바로 ‘國語’예요. ‘國民·國歌·國鳥·國花’ 같은 일본 한자말이 다 그때에 생겼습니다. ‘국민학교’는 ‘초등학교’로 바꾸어도 ‘국민 여동생’ 같은 말을 함부로 쓸 만큼 한국은 삶넋이 얕아요. 이러다 보니 한국말사전이 엉터리이거나 엉성한 줄 못 깨닫기 일쑤예요. 여태 온갖 사전이 일본사전을 베끼거나 옮겼고, 아직 이 때를 씻지도 벗지도 못한 터라 ‘사전 엮기’가 아닌 ‘사전 새로 짓기’를 해야 한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정철, 사계절, 2017)을 읽으면 한국에서 ‘사전 쓰기나 엮기’를 하는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만난 분 가운데 ‘사전 짓기’를 하는 분은 안 보입니다. 여태 일그러졌던 한국말 속모습을 살펴서, 제대로 피어날 한국말을 가꾸는 사전 짓기를 헤아리는 분은 보이지 않아요. 모두들 말뭉치를 모아서 보기글을 뽑고, 여러 사전 뜻풀이를 견주어서 그나마 나은 뜻풀이로 손질하는 길을 걸은 분입니다.


  금성출판사 사전을 엮은 분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살피면, 금성 사전을 내고자 뜻풀이를 하려고 다른 사전 뜻풀이를 오려서 한 자리에 모았더니 모두 엇비슷해서 놀랐대요. 이 모습은 요새도 엇비슷합니다. 국어사전 이름으로 나온 사전이든 영어사전 이름으로 나온 사전이든, 서로 베낍니다.


  한국에서 다른 사전 뜻풀이를 안 베낀 사전이라면, 《문세영 사전》하고 《한글학회 큰사전》 두 가지밖에 없었고, 《뉴에이스 국어사전》하고 《푸르넷 초등 국어사전》은 이 베낌질에서 벗어나려고 퍽 애썼습니다. 이밖에 다른 사전은 하나같이 판박이에 닮은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나온 갖은 사전을 샅샅이 읽었기에 이를 깊이 느낍니다.


  그나저나 사전을 쓰든 엮든 짓든, 학자나 전문가 아닌 ‘말이 삶에서 태어나고, 삶이 말을 새로 가꾼다’는 대목을 깨달아 즐겁고 슬기롭게 한길을 갈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아무 말이나 잔뜩 끌어들여 올림말 숫자를 부풀리는 사전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짓는 생각을 넉넉히 말로 나타낼 수 있도록 돕는’ 사전으로 가야지 싶어요.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를 내다보면서 ‘새 사전 짓기’를 하는 바탕이 설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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