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9. 살살이꽃
저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여느 동시집을 읽히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모든 동시집이 우리 집 아이들하고 안 어울린다고 느끼거든요. 왜 이렇게 느끼느냐 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졸업장학교(제도권학교)하고 학원을 안 다니는데, 여느 동시집에는 졸업장학교하고 학원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학교랑 학원에서 입시에 시달리는 이야기는 우리 집 아이들이 앞길을 그리는 노래를 듣고 누리는 살림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여느 동시집은 말재주나 말장난을 하는 글이 너무 많습니다. 말을 살찌우는 생각을 슬기롭게 사랑으로 가꾸는 이야기가 아닌, 가벼운 손재주로 말을 이리저리 꾸미기만 하는 치레질이 흘러넘쳐요. 이러면서도 번역 말씨나 일본 한자말이 동시마다 가득하더군요. 무엇보다도 예나 이제나 숱한 동시집은 어린이가 어떤 숨결이며 앞으로 어떻게 마음에 꿈씨앗을 사랑으로 심어서 새롭게 숲집을 일구는 씩씩한 사람으로 자랄 만한가 하는 그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동시를 읽을 수 있도록 하자면 제가 스스로 동시를 써서 읽히는 길뿐입니다. 아직 제가 스스로 못 짓는 살림이 많습니다만, 아이들하고 하나씩 새로 배우며 가꾼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동시를 써요. ‘살살이꽃’이란 동시는 꽃을 사랑하는 우리 집 아이들이 꽃 한 송이를 바라보던 옛사람 따스한 눈길을 배우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꽃이름을 어떻게 짓는지, 꽃은 저마다 어떻게 아름다우며, 이 아름다운 빛숨을 우리가 어떻게 나누어 받으며 환하게 웃는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ㅅㄴㄹ
살살이꽃
이따금 여룸에 깨어나지만
웬만하면 여름 지고
가을 깊을 무렵
들에 길에 살랑살랑
가끔 흰 꽃송이
때로 발그스름 꽃잎
곧장 짙붉은 꽃 꽃 꽃
바람바라기로 춤을 춰
가느다란 줄기에
가늘가늘 잎은
무릎이나 종아리에 스치면
매우 부드러워
나를 보며 살살 손짓
너를 보며 사알살 눈짓
해님도 살살살 웃으며 반기는
살살이꽃
(숲노래/최종규 . 동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