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배움수첩 2018.9.25.


앞손·먼젓손

← 선수

: “선수를 친다”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늘 아리송하다. 운동 선수를 친다는 소리는 아닐 테지만, 굳이 이런 한자말을 써야 하나 싶다. 먼저 손을 쓴다는 뜻이면 “먼저 손을 쓴다”라 하면 된다. 줄여서 ‘먼젓손’이라 할 만하고, ‘앞선’이라 해도 어울린다.


달새벽·저녁달

← ·

: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마당에 서서 숨을 쉬다가 별을 보는데 ‘새벽별·새벽달’ 같은 말은 쓰지만 앞뒤를 바꾸어 ‘별새벽·달새벽’이라 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왜 그러한가 하니, 세 시 아닌 두 시라면 새벽 아닌 밤으로 여긴다. 이런 밤에는 ‘달밤’처럼 ‘달’을 앞에 쓴다. ‘별밤’도 그렇지. ‘낮달·낮별’처럼 쓰지만 ‘달낮·별낮’이라고는 안 한다. 아무래도 달이나 별이 환한 낮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런 말은 안 쓸 텐데, 아직 달이나 별으 밝은 새벽이라면, 겨울이나 늦가을이나 첫봄에는 새벽 서너 시에도 깜깜하니까 ‘달새벽·별새벽’이란 말을 슬쩍 써 보고 싶다.


꼭두머리·우두머리·꼭두지기

← 長·대표·대장

: “어디의 장”이라는 일본 말씨는 고치기 어려울까? ‘모임지기’라든지 ‘마을지기·고장지기’ 같은 말을 쓰면 어떨까? ‘고장지기’란 ‘지자체장’이다. ‘우두머리’가 좀 거슬리다면 ‘꼭두머리’나 ‘꼭두지기’ 같은 이름을 새로 쓸 수 있다. 일본 책을 읽는데 “일족의 장”이란 말이 나와서, ‘겨레지기’쯤으로 옮기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꽃빔·잔치빔·혼인빔

← 웨딩드레스·혼례복

: 내가 가시내로 태어나서 이른바 “하얀 면사포”를 입는 혼인잔치를 했다면, 나는 당차게 ‘웨딩드레스’ 아닌 ‘꽃빔’을 입었다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사내는 ‘턱시도’를 입는다고들 말하는데, 사내도 ‘꽃빔’이라 하면 어떨까? 가시버시 모두 꽃답게 차려입으니 ‘꽃빔’을 함께 써도 좋다. 치마하고 바지를 갈라 ‘치마꽃빔·꽃빔치마’나 ‘바지꽃빔·꽃빔바지’ 같은 말을 써도 재미있겠지.


집잔치·둥지잔치·보금자리잔치·집놀이

← 홈파티·홈메이드 콘서트

: ‘집잔치’처럼 말하면서 집에서 신나게 어우러질 수 있다. ‘홈파티’가 아니어도 좋다. 집이 사랑스럽다면 ‘둥지·보금자리’ 같은 이름을 넣어 ‘둥지잔치·보금자리잔치’라 해도 되겠지. 집에서 놀듯이 잔치를 벌이는 일을 놓고 어떤 젊은 분들이 “홈메이드 콘서트”를 한다고 어느 책에 적었기에, 나라면 ‘집놀이’란 말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지은·우리 집·둥지판

← 홈메이드

: 집에서 지었으면 “집에서 지은”이라 하면 좋으리라. 아마 1990년대 첫무렵이었다고 떠오르는데, 가게마다 간판 한켠에 ‘since’를 붙이는 바람이 분 적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이런 영어로 밝힌 셈인데 “1950년부터”나 “1970년부터”처럼 한국말로 ‘부터’를 쓸 생각은 왜 못 할까? 손으로 짓든 집에서 짓든 수수한 말 그대로 써 볼 적에 한결 빛난다고 느낀다. 이런 결을 살려 “우리 집”이나 ‘둥지판’ 같은 말도 헤아려 본다.


예스러운·옛멋·옛것·오래된

← 빈티지

: 처음 ‘빈티지’란 말을 들은 때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2년 무렵인데, 그때에는 ‘빈티지 = 가난한(貧) 티가 나는 무엇’이라고 여겼다. 알고 보니 이런 뜻이 아닌 다른 영어여서 놀랐다. 사자성어로 ‘고색창연’을 쓰기도 하던데 ‘예스러운·예스런’을 쓰면 되고 ‘옛멋·옛것’ 같은 말을 써도 된다.


← 번 

: “몇 탕을 뛰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번(番)’이라는 한자말을 좀 줄일 수 있다. ‘번’을 안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어느새 잊고 말면서 우리 곁에서 슬그머니 떠나는 말을 새롭게 바라보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갈이·이를 갈다·땅치다·부들부들

← 절치부심

: 이를 갈아서 ‘이갈이’란 ‘절치부심’하고 같은 말이다. 한 낱말로 쓰지 말고 “이를 갈다”라 해도 된다. ‘땅치다’처럼 써도 재미있으나 그냥 “땅을 치다”라고 해도 된다. 네 글씨로 맞춘다면 ‘부들부들’이라 해도 좋다. ‘부들질’이라 해도 어울린다.


꽃고리·꽃걸이·꽃다발

← 화환

: 꽃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서 ‘꽃고리’도 되고 ‘꽃걸이’도 되고 ‘꽃다발’도 된다. 모두 꽃이다.


드팀집·피륙집·옷감집

← 포목전

: ‘드팀전(-廛)’이란 이름은 언제부터 사그라들었을까? ‘피륙’이란 말도 언제부터 자취를 감추었을까? 지난날 양반 사대부는 ‘전(廛)’이라는 한자를 써야 ‘가게’를 가리킨다고 여겼겠으나, 오늘 우리는 ‘가게’라 하거나 ‘집’이라 하면 된다. ‘드팀집’이며 ‘피륙집’이며 ‘옷감집’이란 말을 혀에 살짝 얹어 본다.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