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26. 마


  ‘마!’ 하고 누가 말하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마, 됐다.”에서 쓰는 ‘마’입니다. 둘째, “하지 마.”에서 쓰는 ‘마’입니다. “마, 됐다.” 할 적에는 어쩐지 마음이 놓인다면, “하지 마.” 할 적에는 마음이 무겁거나 옭매입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출입금지”라 하면 딱딱하면서 힘있어 보인다고 여기는데, “들어오지 마”나 “다가오지 마”처럼 써도 딱딱하면서 힘있어 보이지 않을까요? “흡연금지”라 해야 세 보이는 말이 되지 않아요. “담배 피우지 마”라 해도 세 보이는 말이 됩니다. 또는 “담배 끊어”나 “담배 저리 가”나 “담배 치워”라 해 볼 만한데 “담배 꺼져”라 하면 더없이 세 보이는 말이 될 테지요.


  공공기관이나 공공장소에서 쓰는 말은 부러 딱딱하거나 세 보이는 말을 써야 한다고 여겨 버릇하면서 한자말에 얽매이는 분이 퍽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말로도 얼마든지 세 보이는 말을, 아니 참말로 드센 말을 헤아려서 쓸 수 있어요.


  “절대엄금”이 아니어도 됩니다. “하지 마”라 하면 됩니다. “촉수엄금”이 아니어도 되지요. “건들지 마”나 “건드리지 마”라 하면 되어요. “무단횡단 금지” 같은 알림판이 꽤 많은데요, “막 건너지 마”라든지 “그냥 건너지 마”라든지 “함부로 건너지 마”라 할 만합니다. 부드럽게 쓰고 싶다면 “막 건너지 마요”나 “그냥 건너지 말아요”나 “함부로 건너면 다쳐요”라 해 볼 만해요.


  요새는 ‘묻지마’가 한 낱말로 굳은 듯합니다. “묻지마 투자”나 “묻지마 교육”이나 “묻지마 읽기”처럼 쓸 만해요. 이런 얼거리로 ‘하지마’나 ‘보지마’나 ‘먹지마’나 ‘읽지마’나 ‘가지마’를 써 보아도 재미있고 어울립니다.


 이용금지 → 쓰지 마 / 쓰지 말도록 / 쓰지 말 것 / 안 써요 / 안 씁니다 / 쓰지 말아요 / 쓰지 맙시다

 이용중지 → 못 씀 / 못 써요 / 쓸 수 없음 / 쓸 수 없습니다 / 쓰지 않음 / 쓰지 않아요 / 못 씁니다 / 망가졌어요 / 망가졌습니다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용금지·이용중지’ 같은 말도 새롭게 손질해서 쓸 만합니다. ‘접근금지’라면 “다가오지 마”나 “다가오지 마셔요”라 할 만한데, ‘물러서라’나 ‘물러서세요’나 ‘물러섭니다’라 해도 되어요.


  ‘촬영금지’ 같은 알림말을 쓰는 곳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찍지 마”나 “찍지 말아요”나 “찍지 마세요”나 “찍으면 싫어요”나 “찍으면 싫어” 같은 말로 알맞게 손볼 수 있습니다. 때하고 곳을 살펴 다 다르게 쓸 만해요. 한국말은 틀에 매이지 않는 결이 좋고, 누구나 재미있고 새롭게 쓰면서 빛나요. 말끝하고 토씨를 살몃살몃 바꾸면서 결을 살릴 수 있으니,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이 대목을 눈여겨보면서 서로 즐거이 말길을 트도록 북돋운다면 좋겠습니다.


  모든 말은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어떤 생각을 나타내고 싶은가 하고 마음에 그리기에 말을 떠올려서 쓸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있기에 이 말을 쓴다기보다, 이러한 생각을 나타내고 싶다고 느끼니 이 자리에 걸맞을 말을 저마다 스스로 새롭게 짓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기차를 타면서 가게에 들러 주전부리를 살피는데, 빵을 담은 비닐자루에 “소시지 중량 up!”이라 적힙니다. 이 글씨를 들여다보며 생각해 보았어요. 꼭 이렇게 글씨를 담아야 했을까요? 빵을 빚어서 다루는 곳에서는 이런 말이 아니고는 알림말을 알맞게 적을 수 없었을까요?


 소시지 중량 up! → 소시지 무게 늘림! / 소시지 무게 늘렸다! / 소시지 무게 늘렸어요! → 소시지 더 많이! / 소시지 더 넉넉히! / 소시지 더 묵직!


  말끝을 살짝 바꾸면 말결이 살짝 바뀝니다. 말마디를 새로 다듬으면 말빛이 새로 살아납니다. 공공기관이나 학교나 언론사에서도 말글을 알맞으면서 바르거나 곱게 쓰면 좋겠는데, 이뿐 아니라 여느 일터나 자리에서도, 또 물건을 빚어서 파는 곳에서도 알맞으면서 바르거나 곱게 말글을 가다듬으면 훨씬 좋으리라 봅니다.


  경기 수원에 마실을 다녀오며 수원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이 버스에서 “안전을 위하여 정차한 후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같은 글월을 보았습니다. 이 글월을 어린이가 잘 알아볼 만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알림글을 적어서 붙일 적에는 더 마음을 기울여서 상냥한 결을 느끼도록 하면 좋으리라 봅니다. 저라면 버스 알림글을 다음처럼 쓰겠습니다.


 안전을 위하여 정차한 후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 안전하도록 차가 선 뒤에 일어나셔요 / 안전하도록 차가 선 다음 일어납시다 → 다치지 않도록 차가 서면 일어나요 → 차가 선 다음 일어나서 내려요 / 차가 선 뒤에 일어나서 내리셔요


  우리는 아직 일본 말씨를 곳곳에서 씁니다. 일제강점기는 고작 서른여섯 해였으나 이동안 물들거나 길든 말씨가 매우 깊어요. 더구나 전문 일자리에서는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씨를 써야 하는 듯 여기기까지 해요.


  곰곰이 따지면 영어나 일본말을 쓴들 그리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한테는 한국말이 있기에 한국말을 쓰면 될 텐데, 구태여 영어나 일본말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한국말을 새롭게 살리거나 지어서 쓰기 어렵다면 모르되, 우리 스스로 말결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는 길을 닦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 스스로 생각을 키우거나 가꾸는 삶이 못 될 수 있어요.


  “민폐를 끼치다”에서 ‘민폐(民弊)’란 무엇일까요? 꼭 이 낱말을 써야 할까요? 이런 한자말이 스며들기 앞서 어떤 말로 이러한 일이나 자리나 결을 나타냈을까요? 생각하고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말썽을 일으키다”나 “골칫일을 일으키다”나 “말썽거리가 되다”나 “골칫거리가 되다”라 할 만합니다. “걱정을 끼치다”나 “걱정거리가 되다”라 해도 어울립니다.


  ‘청렴결백(淸廉潔白)’이라 해야 깨끗하지 않아요. ‘깨끗하다’라 하면 되고, ‘맑다’라 할 수 있으며, ‘티없다’나 ‘티끌없다’라 할 수 있습니다. ‘맑디맑다’라 해도 되지요.


  일본을 거쳐 들어온 아리송한 말 ‘더치페이’는 ‘따로내기’나 ‘나눠내기’라 할 만하고, 밥자리에서 돈을 나누어서 낸다면 ‘도리기’라는 낱말을 살려서 쓸 만합니다.


  어느 책을 읽다가 ‘성자필쇠(盛者必衰)’라는 글월을 보았는데요, 한자를 묶음표에 넣어서 밝혀도 뜻을 모를 수 있어요. 이때에도 생각해 봅니다. “일어나면 스러진다”라 하면 좀 길어도 바로 알아볼 만합니다. “뜨고 지다”나 “뜨면 진다”나 “떴으니 진다”나 “떴다면 진다”라 해도 어울리고, “뜨면 지기 마련”처럼 살짝 늘려서 써도 좋아요. 더 헤아린다면 ‘뜨고지다’를 아예 한 낱말로 삼아도 됩니다. ‘뜨고지다’라는 새말을 지어서 쓰지 말라는 틀이란 없습니다. 앞뒤를 바꾸어 ‘지고뜨다’라는 말을 써도 재미있지요.


  말이란,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말이란, 생각을 담아낸 마음입니다. 말이란, 생각을 지어서 가꾸는 마음입니다. 어떤 말을 어느 자리에 알맞으면서 즐겁게 써서 생각을 나눌 적에 마음이 활짝 피어나는가를 헤아린다면, 말은 말대로 자라고 마음도 마음대로 자라리라 느껴요.


  ‘자라다’라는 말을 생각해 봐요. ‘자라다·크다’ 같은 한국말이 있으니, 한자말 ‘성장(成長)’은 꼭 안 써도 됩니다. “성장이 빠르다”가 아닌 “빨리 자란다”라 하면 됩니다. “성장 과정을 살피다”가 아닌 “자란 길을 살피다”라 하면 돼요. “고도 성장”은 “크게 자란·높이 자람”이라 하면 되겠지요.


  무럭무럭 자라라는 뜻으로 ‘자람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자람둥이·자람순이·자람돌이’ 같은 말도 어울립니다. 잘 자라도록 지킨다는 뜻으로 ‘자람지기’가 되고, ‘자람힘·자람꿈·자람놀이·자람글·자람노래’ 같은 말을 하나하나 새롭게 쓰면서, 말도 생각도 삶도 이야기도 넉넉히 자라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