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0.27.


《사상의 거처》

 김남주 글, 창작과비평사, 1991.11.25.



요 며칠 여러 가지 시집을 읽는데 하나같이 말장난이 가득해서 눈이 아팠다. 이른바 대학교수를 하는 분이 쓴 시도, 문학강의나 문학평론을 하는 분이 쓴 시도, 서로 장난스레 꾸미고 덧바르는 데에 품을 들이는 흐름이 안 그치지 싶다. 다들 이런 글쓰기에 길들었을까? 스스로 짓는 삶과 스스로 걷는 길을 제 나름대로 눈빛하고 손길을 살려서 담아내는 글이 아니라, 한자말(나이든 사람)하고 영어(젊은 사람)를 어디까지 뒤섞어 남들이 못 따라오게 하려는가에만 머리를 싸매는구나 싶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이런 말장난이 외려 말재주라도 되는 듯이 치켜세우는 평론이 넘쳤는데, 요새도 똑같더라. 눈을 씻으려고 《사상의 거처》를 되읽는다. 스무 해 남짓 묵었구나 싶은 글이 있지만, 곰곰이 새기면서 돌아볼 글이 있어서 좋다. 시라면, 적어도 김남주만큼은 쓸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김남주라는 사람이 품은 뜻대로 쓸 글이 아닌, 시를 쓰는 마음이나 눈빛이나 손길이 김남주만큼은 되어야지 싶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요 누구나 써야 맞는 글인데, 이 ‘누구’란 ‘아무’가 아닌 ‘누구’이다. 아무나 숲을 돌볼 수 없고, 아무나 흙을 만질 수 없다. 그러나 ‘누구’나 숲을 돌보고 누구나 흙을 만질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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