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5. 고요



  2018년 10월 18일에 인천 율목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이날 율목도서관에서 이야기꽃을 펴다가 갑자기 떠올랐는데, 제가 인천에서 국민학생으로 살던 1980년대 첫무렵에 도서관이 궁금해서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인 이곳에서 책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동무하고 찾아갔는데, 도서관지기가 저희를 바로 내쫓았어요. “여긴 애들이 오는 곳이 아냐. 중학생이 되면 그때 와.” 하고서 얼른 나가라 하더군요. 그때 도서관지기가 어떤 말결이나 목소리로 저희(국민학생)를 내쫓았는지 모르겠으나 매우 무서웠고, 국민학교를 마치기까지 도서관 가까이에는 얼씬도 안 했습니다. 그 뒤 중학생이 되어 도서관이란 데를 가면서 보니, 인천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은 입시생이 입시공부를 하는 곳이더군요. 그무렵 ‘독서실’이 책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시험공부를 하는 곳이었듯 그무렵 인천에서 도서관은 책을 건사해서 나누는 터가 아니었습니다. 아마 인천에 있던 도서관에 어린이책은 아예 없거나 몇 권 없었을 수 있어요. 게다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오’거나 ‘책을 읽으러 오’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도 여기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 뒤로 서른 해 남짓 흐른 2018년 한가을에, 율목도서관을 돌보는 도서관지기가 저한테 대뜸 한 마디를 합니다. “저희 ‘율목도서관’에 동시를 하나 써 주셔요.” 가슴이 찌릿했습니다. 도서관에 바치는 동시라니, 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울까요! 온누리 어린이한테, 인천을 보금자리로 삼는 이웃님한테 상냥하면서 기쁜 노래를 띄워 봅니다. ㅅㄴㄹ



고요


신명나게 수다잔치 하다가

한 사람이 문득 말을 멈추니

모두 갑자기 입을 닫아

낯설면서 새삼스러운 고요


한 사람 두 사람 열 사람

푹 빠져든 이야기로 날아가며

어느덧 아무 몸짓도 소리도 없이

서로 다른 즐거움 흐르는 고요


고요한 수다판이 되니

개미가 책상 타고 기어가는 소리

나비가 팔랑거리며 내는 소리

아주아주 크게 들린다


고요한 책터가 되니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살던

저 먼 숲에서 찾아든 바람

눈으로 보고 살갗으로 느껴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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