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씁니다 ― 4. 한글

 

  저는 한국말사전을 짓는 일을 하니 늘 글을 쓰는 셈인데, 정작 ‘글·한글’을 놓고서 넓거나 깊게 헤아리며 이야기를 한 일이 드물다고 몰록 느꼈습니다. 누구보다 저 스스로 글이랑 한글이 무엇인가를 선물처럼 받고 싶은 마음에, 바로 제가 저한테 선물로 주고 싶은 글월을 적었습니다. 이 글월을 적는 동안 우리 집 두 아이가 떠올랐고 곁님이 떠올랐어요. 이다음으로 온누리 모든 아이랑 어른이 떠오르며, 사람을 둘러싼 뭇숨결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은 글하고 말을 다룬다면, 뭇목숨은 발자국하고 소리를 다루어요. 사람은 글하고 말 사이에서 노래를 짓고, 뭇목숨은 발자국하고 소리 사이에서 노래를 짓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마시고 비를 먹으며 해를 쬐면서 새롭게 산다면, 바람이랑 비랑 해는 사람이 짓는 삶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빛날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냥 쓰는 말이란 없고, 그냥 태어난 글이란 없지 싶습니다. 모두 즐거운 삶에서 지은 사랑을 바탕으로 태어난 말이 있고, 이 즐거운 말을 기쁘게 담아낼 글을 엮었구나 싶어요. 나라나 겨레마다 말하고 글이 다른 까닭이라면, 나라나 겨레마다 삶터가 다르고, 이 다른 삶터에서 짓는 살림이 다르니, 다 다르면서 같은 결인 사랑이 샘솟아서 흐르는 바람이나 비나 해도 다르면서 같은 결을 글씨나 말씨에서 드러내겠지요. 한글이 아름답기에 영어도 한자도 가나도 히브리 글씨도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곱기에 너희가 쓰는 말도 나란히 곱습니다. ㅅㄴㄹ

 

한글

 

우리가 쓰고 읽는 글은
우리가 나누는 말은
두 눈으로 알아보도록 빚은
또렷하고 가지런한 그림

 

이 땅에서 읽고 적는 한글은
이 땅에서 살림짓고 살면서
사랑스레 슬기로이 생각하 숨결
새롭게 담으려고 엮은 그릇

 

네가 띄워 내가 읽는 글월
내가 옮겨 함께 읊는 노랫말
하늘 바람 해 비 눈 꽃
모두 실어서 같이 즐기는 얘기바구니

 

물소리 새소리 말소리 노랫소리
글로 받아적으니 새넋 흘러
눈짓 손짓 몸짓 낮짓
한글로 옮겨내니 ㄱㄴㄷ 춤춰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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