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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착란 - 어느 젊은 시인의 내면 투쟁기
박진성 지음 / 열림원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인문책시렁 37
《청춘착란》
박진성
열림원
2012.8.16.
우리가 시라고 써 온 문장들은 우리 마음의, 감각의 어떤 우발적인 조합이 글자로 튀어나온 거고, 내가 듣고 있는 음악, 네가 듣고 있는 음악은 어떤 날들의 바람의 기록들이고. (36쪽)
여전히 병원은 들락날락하고 있지만 많이 좋아진 상태고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는 좀 편안해진 것 같다. (93쪽)
아직 꽃은 보이질 않고 꽃 피는 소리가 왁자하게 거리를 기어다닌다. 이번 봄의 나의 목표는 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용서하는 것. 그리하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것. (195쪽)
대학 때 연애하던 여자아이가 말했다. 당신은 늘 열렬해. 절박해. 하지만 그 열렬함이, 절박함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거란 거, 한번쯤 생각해 봤니? (278쪽)
고은 시인이 쓴 시나 글을 읽으면, 술 마시는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술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다만 술힘을 빌려서 넋을 잃은 채 자잘한 짓을 일삼는다면, 이는 사내다운 길이 아닌 밉살스런 길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고은 시인하고 술자리를 함께한 글벗이나 책벗이 참 많을 텐데 여태 이런 얘기를 쉬쉬합니다. 최영미 시인이 이 일을 널리 터뜨렸고, 박진성 시인이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박진성 시인이 쓴 책을 헤아리다가 《청춘착란》(박진성, 열림원, 2012)을 읽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시인이라는 길을 걷기 앞서 스스로 얼마나 아픈 삶이었나를 적바림하면서, 시인이라는 길을 걷는 동안 또 얼마나 고단한 나날인가를 빼곡하게 적습니다.
온통 아픈 이야기가 흐르는 이야기를 읽기는 수월하지 않습니다. 쓴 사람뿐 아니라 읽는 사람도 함께 아프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지요, 고은이란 시인하고 함께 술자리를 했던 숱한 글벗(문인)하고 책벗(출판 관계자)은 밉살스런 짓을 일삼은 사내하고 똑같이 뒹굴면서 그런 짓이 얼마나 밉살스러운가를 하나도 못 깨달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한통속이란 말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젖어들면서 한통속이 됩니다. 끼리끼리란 말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물들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끼리끼리가 됩니다. 그리고 아파 보면서, 아프게 살면서 아픔을 씻는 길을 살피고, 아픈 이웃을 알아보는 눈이 트이겠지요. 어느 날 아픔을 씻어낸다면 비로소 웃는 길을 알아볼 테고, 웃는 길을 알아보는 그날은 남들을 따라 웃거나 눈치를 보며 짓는 웃음이 아닌,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부러 어려운 말을 써야 글이 되지 않는다는 대목을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학교나 인문책이나 오늘날 온갖 문학에서 어려운 말을 널리 쓴다고 하더라도, 그 어려운 말이란 참마음을 가리거나 감추는 허울인 줄 알아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쟁이란 비평쟁이가 어려운 말이란 허울로 이름값을 키우거나 이름담을 쌓는 길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잘 헤아려서 새로운 글길을 닦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그들 울타리에 끼어들어 끼리끼리 노닥거려야 빛나는 글이름을 얻지 않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