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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길
구로사와 아키라 지음 / 민음사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05175124262943.jpg)
(알라딘에서는 `품절'이 되었다고 뜨기에
제가 가진 책을 긁어서 올려놓습니다.)
- 책이름 : 감독의 길
- 글쓴이 : 구로사와 아키라
- 옮긴이 : 오세필
- 펴낸곳 : 민음사(1994.10.27.)
1960년, 박정희는 《지도자도》라는 얇고 노란 책자를 펴내 전국 곳곳에 수없이 뿌립니다. 그러나 이내 이 노란 책자를 거두어들였고, 전국 곳곳에서 불을 지펴 집어던져 태워 버립니다(이 책자를 저한테 팔았던 헌책방 주인과 다른 책손이 들려준 이야기). 자신이 내세운 혁명공약 가운데 마지막 것,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때문입니다. 그 뒤 ‘혁명공약’은 다섯 가지만 적어서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펴낸 책은 《지도자의 길》. 독재자 박정희한테 ‘지도자’란 어떤 사람이고, 지도자라는 사람이 걷는 길이란 무엇이었을까요.
.. 단지 법이 규정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진아들을 강제로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어린이들의 성장은 제각기 다르다. 일부 다섯 살 아이는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다섯 살 아이 수준의 지능도 안 되는 일곱 살 아이도 있다. 지능은 아이마다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다. 1년의 성장이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1년 동안의 기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규정한다면 잘못이 아닐 수 없다 .. 〈31쪽〉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길’은 사람이 다니라고 뚫습니다. 자동차가 오가는 찻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아닙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이 다니는 길입니다. 찻길에 자전거가 다닌다면, 자전거가 다니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탄 사람이 다닙니다. 그러나 찻길을 달리는 자동차꾼은 찻길에 함께 있는 자전거꾼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전거에 탄 ‘사람’이 자기와 마찬가지 ‘사람’임을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도》와 《지도자의 길》을 낸 독재자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다스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람 위에 올라서서 권력을 누리’려는 마음이었을까요. 자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인 이 나라 백성들을 굽어살피고 헤아리고 보살피는 ‘길’이었을지, 이 나라 백성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며 자기 앞에 굽실거리거나 무릎꿇게 하려는 ‘길’이었을지.
.. 나는 내 눈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해서만 언급할 수 있다. 또한 나는 물증이 있는 것들만 믿는다 .. 〈103쪽〉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되어 버린 찻길입니다. 그래서 이 찻길을 걸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수없이 차에 치여 죽습니다. 사람을 친 차는 어디론가 내빼도, 차에 치인 사람은 어디로 가지도 못합니다. 사람이 아늑하게 다닐 수 없게 된 길에서는, 사람 아닌 목숨도 목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이 오가는 길은 네 다리로 걷는 들짐승과 멧짐승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열 다리나 스무 다리로 기어다니는 벌레도 오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찻길을 건너는 짐승들은 그 자리에서 개죽음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지렁이나 벌레는 자국도 못 남기고 사라집니다. 더욱이, 사람만 다니라고 하는 거님길(보도블럭)까지 치고 올라서는 자동차입니다. 길이 길 구실을 못하는 우리 삶터이고, 길을 마음놓고 다닐 수 없는 우리 형편이라고 할까요.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아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기억력일지도 모르겠다 .. 〈63쪽〉
언제부터 우리가 걷는 길이 이렇게 팍팍하고 메마르게 되었을까요. 어느 때부터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이렇게 사람은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을까요. 사람 발길이 끊어지고 매캐한 차방귀만 가득한 길, 사람 냄새도 손길과 발길도 움직임도 뚝 끊어지는 길이 되었을까요. 우리들은 우리들이 걸어갈 이 길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면서, 우리들이 참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마저도 엉망으로 흐트러뜨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 1930년 토키 영화가 등장하고부터, 우리는 옛 무성영화의 너무도 훌륭했던 점을 놓치고 잊어버렸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나는 미학적 손실을 끊임없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려면 영화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 〈321쪽〉
길이 길다움을 잃었을 때, 이 길을 오가는 모든 것도 자기다움을 간직하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지도자든 백성이든 관리든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든 사람 아닌 목숨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오붓하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서로 돌보고 마음쓰면서 보듬는 길이 아니니까, 서로 따스함을 나누며 사랑하며 믿고 살아가는 길이 아니니까, 이런 길에는 돈-이름-힘, 이 세 가지만 남는구나 싶어요.
자서전 《감독의 길》을 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돈으로 걷는 길도 아니고 이름으로 걷는 길도 아니며 힘으로 걷는 길도 아닌, 한 사람으로 걷는 길을 걸어서 감독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을 간직하고 사람다움을 키우면서 사람다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면서 감독으로 길을 걸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나라 영화감독 가운데 돈-이름-힘이 아닌 ‘사람으로서 걷는 감독이 갈 길’을 걷는 사람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4340.1.12.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