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시골집에 있을 때는 쉬를 할 때 꼭 밖에 나갑니다. 밖에 나가서 산기슭이나 감나무 밑이나 밭둑을 찾습니다. 뒷간에서는 똥만 누고 오줌은 곧바로 이 산 저 들에 돌려 줍니다. 예부터 ‘감나무 밑에 개를 매어 놓으면 감이 맛있게 잘 익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자리를 바꾸어 가며 오줌을 누니까 감나무가 썩 잘 자라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어제부터 그믐이지 싶습니다. 달력을 봅니다. 맞네요. 그믐이 되겠네요. 밤에 쉬하러 밖에 나오면 캄캄 어두움이더니만. 제가 사는 바로 옆집은 불이 나는 바람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 제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더 깊은 산속에 하나, 마을로도 한참 떨어진 곳에 또 하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깊은 밤에 불을 다 끄고 바깥으로 나오면 그야말로 어둠뿐입니다. 둘레에 불이 하나도 없으니 밤하늘이 아주 잘 보입니다. 추운 겨울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예부터 추운 날은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했는데, 별이 막 떨어질 듯이 보인다고 했는데, 안경을 안 써서 잘은 모르겠으나 참말 별이 잘 보입니다. 어제는 부엉이 우는 소리를 아주 오랜만에 들었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사냥철이 끝나가는지, 사냥꾼들 총부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멧새가 밤에 조용조용 몰래몰래 우는가 봅니다.


.. 사진이란 어떤 예술이라는 말인가. 한마디로 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 복합적인 인생과 자연을 대상으로 거기에서 깨달은 내 생각, 내 느낌을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 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사진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사진을 해야 한다 ..  〈62∼63쪽〉


 고요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일이란 큰 고마움이자 아름다움이라고 느낍니다. 오로지 제 스스로 몸을 놀려야 살아갈 수 있고, 사람 아닌 온갖 소리와 움직임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는 사람 목소리와 움직임이 얼마나 많은가요. 이런 소리와 움직임에서 멀찍이 벗어나 나한테서만 나는 소리와 움직임으로, 또 사람 아닌 소리와 움직임을 부대낄 수 있는 곳이 어디일는지요.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인데, 자연을 못 느끼고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멀리하는 요즘 아닙니까. 더욱이, 이제는 태어나기를 시멘트집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시멘트집에서 죽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흙하고는 동떨어졌달까요. 인연이 없달까요. 흙이 뭔 줄도 모른달까요.


.. 예술은 황무지에 길을 내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 이미 닦여진 길은 그냥 걸어가기에는 편하지만, 그것은 남을 따라가는 행위이다. 길을 만드는 일이 아닌 것이다. 예술가란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149쪽〉


 지지난주부터는 물이 아예 안 나옵니다. 그나마 그사이 날이 풀리며 두 번 녹은 적 있는데, 그 뒤로는 안 녹네요. 이제부터 참 겨울이구나 싶습니다. 뭐, 물이 안 나와도 그동안 미리 받아 둔 물이 있으니 밥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씻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 산골짜기에서는 씻지 않아도 때 탈 일이 없으니까, 몸 더러워질 일이 없으니까, 안 씻는다고 몸에 나쁠 일이 없습니다. 외려 씻는 일이 도움이 안 된달까.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어두워지는구나 하고, 창밖이 밝아지며 날이 새면 아침이 오는구나 합니다. 아침마다 박새와 콩새가 조잘조잘 지저귀며 창가에까지 날갯짓을 합니다. 사람이 있으니 먹잇감이 둘레에 있을까 싶어 오는구나 싶은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 새들한테 줄 만한 먹이가 없군요.

 제 사진기는 헌책방에서만 움직입니다. 시골집에 있을 때는 가방에서 얌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가끔, 제 살림집 둘레라든지 책상맡이라든지 사진으로 담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서 디지털사진을 찍곤 합니다. 지금도 글을 쓰며 밤참으로 먹던 날고구마를 한 장 찍었습니다. 필름값이 두려운 저로서는 가볍게 즐기고픈 사진은 디지털을 씁니다. 필름값이 두렵기는 하지만 헌책방 삶터를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기에, 헌책방을 찍을 때만큼은 필름을 씁니다. 거의 아낌없이.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 삶은 자기 스스로 가꾸며 즐길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저는 저대로 사람 발길 드문 시골집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자전거를 타고 헌책방 나들이를 떠납니다. 제가 찍는 사진이라면 이런 제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이겠지요. 제가 찍는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저부터 제 삶이 반가워야 할 테고 즐거워 할 테며, 기쁜 마음으로 가꾸어야지 싶어요. 뭐, 예술이 안 되더라도 저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을 담을 수 있다면, 제 목소리를, 제 움직임을, 제 마음을, 제 생각을 담을 수 있다면 좋을 테고요. (4340.1.1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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