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 - 마지막 한 마리가 행복해질 때까지 생각이 커지는 생각
아네테 펜트 지음, 수잔네 괴리히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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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책시렁 190


《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

 아네테 펜트 글

 수잔네 괴리히 그림

 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2018.7.20.



아냐는 깜짝 놀랐다. 토끼를 품에 안았지만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했다. 지금까지 토끼를 길러 본 적이 없어서 토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프랜치가 안겨 준 토끼는 키도 컸고, 발바닥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 (35쪽)


“학교 색깔이 맘에 안 들면 너희가 학교를 예쁘게 칠해 봐. 매일 학교에 가고 그 안에서 공부해야 하는 건 너희잖아.” (45쪽)


“동물들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들 고맙고 기쁜 게 아니었어요?” 플리치가 말했다. “프랜치가 여기서 산다는 것 자체가 싫은 거야.” 마틴이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여길 부숴 버리고 비싸게 팔고 싶은 거지, 틀림없어!” (83쪽)


“이 집을 소유할 생각은 없어. 다만 여기 살면서 동물들을 보살피고 싶을 뿐이야.” 프랜치가 한숨을 쉬었다. (160쪽)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고들 말하지만, 이런 말이 어디에서 비롯하거나 누가 들려주는가를 낱낱이 짚지 않기 일쑤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람이 먹는 고기가 되는 목숨은 ‘다른 고기를 잡아먹지 않’으면서 크고 튼튼하게 잘 살거든요. 잘 살펴볼 노릇입니다. 사람은 ‘고기를 잡아먹는 고기’를 얼마나 먹을까요? ‘고기를 잡아먹는 고기’가 아닌, ‘풀하고 이슬을 먹는 숲짐승’을 고기로 삼지 않나요? 그렇다면 굳이 ‘풀을 뜯는 짐승’을 고기로 삼기보다, 사람 스스로 ‘몸을 튼튼하고 크게 가꾸는 풀’을 즐겨먹으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고기를 먹고 싶다면 먹으면 됩니다. 이때에 손수 기른 집짐승을 잡아먹으면 되겠지요. 풀이나 풀벌레를 잡아먹고 살던 집짐승을 잡아먹으면, 이를테면 닭 한 마리로도 여러 사람이 배부를 만합니다. 이와 달리 좁은 공장에 가두어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이슬도 흙도 풀도 없이 사료하고 항생제로 살점을 키운 닭이라면 한 사람이 한두 마리로도 모자라기 마련입니다.


  고기를 먹더라도 어떤 고기를 어떻게 길러서 먹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몸을 이루는 먹을거리를 어떻게 돌보아서 누리는가를 찬찬히 배워야 합니다.


  《동물들과 함께 사는 집》(아네테 펜트·수잔네 괴리히/김현희 옮김, 책속물고기, 2018)은 사람들이 ‘고기를 얻으려고 기르던 짐승’을 마구 괴롭히거나 돈이 안 되어 내팽개치는 사회 얼거리를 넌지시 짚습니다. 이러한 사회를 어린이도 부드러이 받아들이거나 살필 수 있게끔 이야기로 엮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고 맞닿습니다. 어떻게 먹어야 즐거운가는 어떻게 살림을 지어야 하는가하고 맞물립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나 산업이 어떤 얼거리인가를 읽어야 하고, 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며, 오늘 우리가 살림을 가꾸는 보금자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즐거운가를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동물복지라는 이름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이란, 어느 하나만 보살피는 길이 아니라, 서로 아끼며 어깨동무를 하는 길입니다. 풀 한 포기하고 풀벌레 한 마리가 아늑하지 못하다면 사람도 아늑하지 못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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