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모두 동시인이다



나는 말한다. “아줌마는 모두 동시인이다.” 하고. ‘시인’이 아닌 ‘동시인’이라 했는데, 그냥 시인이라고만 해도 좋다. 다만 아줌마 자리에 있는 분들이 그냥 시인이라고 할 적에 어깨에 짐이 있는 듯 여기는구나 싶어 동시인이란 이름을 써 볼 뿐이다. 다시 말해 본다. “모든 아줌마는 바로 오늘 동시를 신나게 쓸 수 있다.” 하고. 집안일을 하고 살림을 가꾸며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을 걸어왔거나 걸어가는 모든 아줌마는 그야말로 누구나 동시인이라고 느낀다. 다만 동시를 쓸 겨를을 못 내었을 뿐이다. 아이하고 함께 누리는 하루를 돌아보면서, 아이랑 같이 읽을 동시 한 줄을 즐겁고 상냥하게 글로 옮겨 본다면, 아줌마 손끝에서는 늘 동시가 피어난다. 삶이 무엇인지 알고, 살림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알며, 사랑을 어떻게 길어올리는지 아는 아줌마라는 자리에 선 사람은, 참으로 누구나 동시인이라고 본다. 이와 맞물려 한마디를 보탠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또 보탠다. “모든 아저씨는 아직 멀었다.” 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아이를 돌보지 않고, 아이가 걸어갈 꿈길을 함께 그리면서 같이 배우지 않고, 집안일하고 살림을 맡지 않고, 보금자리 바깥에서 돈버는 길만 걷는 아저씨는 동시를 쓸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자리에 있다고 느낀다. 온누리 아줌마여, 이제부터 동시를 쓰자. 밥은 그만 짓고, 빨래는 그만 하고, 아이는 곁님인 아저씨더러 사랑으로 돌보라고 맡기고서, 즐겁게 동시를 쓰자. 여태 지은 살림을 고스란히 동시로 풀어내어 삶을 사랑스레 노래하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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