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8.7.


《어웨이크너》

이성엽 글, 그린라이트, 2015.12.15.



열 살 언저리에는 집이나 학교에 있는 책을 그냥 읽었다. 열 살이 저물 즈음에는 배울 만한 책을 어디에서든 스스로 찾아서 읽었다. 스무 살을 지나고는 배울 만한 책을 곁에 쌓아 두고 읽었다. 서른 살을 지나고는 배울 만한 책으로 서재도서관을 열어서 읽었다. 마흔 살을 지나고는 배울 만한 책을 숲에서 더 자주 찾는다. 앞으로 쉰 살을 지날 무렵에는 배울 만한 책을 어디에서 찾으려나? 스스로 마음에서? 요아힘이라는 분한테서 배우는 마실길에 옆자리에 앉은 분이 문득 책 하나를 건네신다. 《어웨이크너》. 아, 책이름이 영어이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로구나. 나는 열 살부터 스물아홉 살 사이에는 ‘영어로 이름을 붙인 책’은 아예 사지도 읽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서른 살 뒤에는 ‘영어 이름 쓴 책’도 더러 사서 읽었고, 이제는 책이름에 안 매이고 ‘이 삶길에서 배울 길’만 헤아린다. 숲은 여름비나 겨울비를 가리지 않고, 산성비나 방사능비마저 가리지 않는다. 모두 받아들여 고운 숨결로 걸러내거나 삭여낸다. 나는 숲으로 가고, 숲이 되며, 숲을 노래하려는 길을 걸으니, 스스로 어떻게 깨어날 적에 웃음꽃이 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야겠지. 눈만 떠서는 깨지 못한다. 마음만 틔워서는 못 깬다. 몸도 열고 꿈도 심어야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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