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들을 말만 듣는 책



  글쓴이는 ‘저 할 말만 하는’ 책이라면, 읽는이로 보면 어떠할까요? 읽는이는 읽는이대로 ‘저 듣고픈 말만 듣는’ 책입니다. ‘저 들을 말만 듣는’ 책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보면 좋겠어요. 글쓴이 넋이나 뜻을 모든 읽는이가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글쓴이처럼 살지 않았거든요. 글쓴이 넋이나 뜻이 100이 담긴 책에서 우리는 몇 가지나 받아먹거나 알아차리거나 느낄까요? 우리는 100이면 100 모두 낱낱이 알아내고 샅샅이 깨달아서 글쓴이 이야기를 아로새기거나 나무라거나 따지는가요, 아니면 100 가운데 한둘만 살피거나 훑고서 섣불리 따따부따 하는가요? 글쓴이 넋이나 뜻 100 가운데 한둘만 살폈다고 해서 책읽기나 글읽기를 못했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한두 가지라도 살폈으면 잘 했습니다. 우리는 천천히 100을 모두 헤아리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못 읽어내었으면 이튿날이나 이듬해에 읽어내어도 됩니다. 책이란, 서둘러 읽어치울 종이꾸러미가 아니에요. 나무 목숨만큼, 나무한테서 얻은 숨결로 빚은 종이 목숨만큼 두고두고 곁에 두면서 차근차근 새길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야기꾸러미인 책은 사람마다 다 다르게 읽어냅니다. 곧 우리는 누구나 다 다른 비평가란 소리입니다. 우리 나름대로 읽은 책은 우리 마음으로 읽은 길이요, 우리는 다 다르면서 아름답고 즐거운 눈썰미를 밝혀서 살림을 새로 짓는 손길을 배우는 벗님입니다. 2018.7.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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