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걸음
올해 들어 일본마실 세걸음이다. 어쩌면 네걸음이나 닷걸음을 더 할는지 모른다. 이렇게 세걸음째 되고 보니, 공항으로 가는 길이나 공항에 들어선 길이나 비행기에 올라타고 내리는 길까지 아무렇지 않구나 싶다. 첫걸음일 적에는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르고, 두걸음째에도 대단히 땀을 뺐다. 세걸음째에는 첫걸음하고 두걸음째를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즐겁게 맞아들였다. 고작 세걸음인 주제에 홀가분하다고 여기니 바보스럽네 싶으면서도, 세걸음쯤 되면 으레 마음을 가볍게 놓을 수 있겠구나 싶다. 하고 다시 하며 또 하니 익숙해진다. 해보고 거듭 해보며 새로 해보니 어느새 몸에 밴다.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일까? 아기를 처음 낳는 분 가운데 똥기저귀나 오줌기저귀를 어떻게 손으로 만지면서 갈아 주느냐 묻는 분이 있지만, 얼마든지 즐겁게 맞아들여서 하고 또 하다 보면 밤에 눈 감고도 척척 똥기저귀를 갈 수 있다. 불빛 하나 없어도 아기를 안고 밑을 잘 씻길 수 있지. 우리가 못 쓸 글이란 있을까? 논문이든 소설이든 시이든 대수롭지 않다. 써 보면 된다. 부딪히면 된다. 자꾸 하면 된다. 글 참 못 쓴다고 꾸중을 들으면, 어느 대목에서 왜 꾸중을 듣는지 곰곰이 헤아리면서 다시 쓰면 된다. 거듭 꾸중을 들으면 거듭 생각해서 고치면 되고, 자꾸 꾸지람을 들으면 자꾸 생각을 이어서 하나씩 가다듬으면 된다. 여덟 살 아이한테 반듯하면서 띄어쓰기까지 맞춘 글을 바랄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 몇 살자리 아이 눈높이 글쓰기를 하는지를 돌아보자. 그러면 다 된다. 아주 쉽다. 호된 지청구도 신나게 받으면서 마음껏 쓰자. 2018.7.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