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을 가꿀 사람은 누구일까
[오락가락 국어사전 17] 거꾸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실행·행하다·이행’ 같은 한자말을 사전에서 나란히 찾아보면 뜻풀이가 매우 엉터리인 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낱말은 하나하나 보기도 해야 하지만, 꾸러미로 묶어서 보기도 해야 합니다. 사전은 학자가 도맡아서 짓는 책이라고 여기는 마음을 넘어서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 누구나 함께 가꾸고 짓는 책이라고 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사전을 가꾸고 지어야 비로소 사전다운 사전이 이 땅에 처음으로 태어나는 길을 엽니다.
문장(文章) : 1. = 문장가 2. 한 나라의 문명을 이룬 예악(禮樂)과 제도. 또는 그것을 적어 놓은 글 3. [언어]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 ≒ 문(文)·월·통사(統辭)
월 : [언어] = 문장(文章)
글월 : 1. 글이나 문장 2. ‘편지’를 달리 이르는 말 3. 예전에, ‘글자’를 이르던 말
글 : 1. 생각이나 일 따위의 내용을 글자로 나타낸 기록 2. 학문이나 학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 글자
‘글월’은 ‘문장’을 가리킨다지요. ‘글’이라는 낱말도 있기에 ‘문장’은 “→ 글월. 글”로 다룰 만합니다. 이러면서 ‘글월 : 1. 글이나 문장’ 같은 뜻풀이가 아닌 제대로 밝히는 뜻풀이로 손질해야겠습니다.
식탁(食卓) : 음식을 차려 놓고 둘러앉아 먹게 만든 탁자
밥상(-床) : 음식을 차리는 데 쓰는 상. 또는 음식을 갖추어 차린 상 ≒ 반대·식상(食床)
‘음식’이라는 한자말하고는 ‘식탁’이 어울리고, ‘밥’이라는 한국말하고는 ‘밥상’이 어울립니다. 둘 모두 써도 된다고 여길 수 있고, ‘식탁’을 “→ 밥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반대·식상’ 같은 한자말은 사전에서 털어내 줍니다.
바심 : 1. = 타작 2. = 풋바심
타작(打作) : [농업] 1.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 ≒ 바심 2. = 배메기 3. 거둔 곡식을 지주와 소작인이 어떤 비율에 따라 갈라 가지는 제도
배메기 : [농업] 지주가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수확량의 절반으로 매기는 일 ≒ 반작(半作)·반타작·병작(竝作)·병작반수·타작(打作)
반타작(半打作) : [농업] 1. = 배메기 2. 수확이나 결과물 따위가 예상보다 절반쯤밖에 되지 아니함
‘조바심’ 같은 낱말에 나타나는 ‘바심’은 ‘콩바심·깨바심’처럼 쓰다가 ‘타작’이라는 한자말에 치고 들어옵니다. 사전을 보면 ‘바심’이란 한국말에는 뜻풀이가 없이 ‘타작’이란 한자말에만 뜻풀이가 있습니다. ‘타작’을 “→ 바심”으로 다루고, ‘바심’을 제대로 쓰도록 이끌어야지 싶습니다. 그런데, ‘배메기’라는 낱말도 ‘타작·반타작’ 같은 한자말에 잡아먹히는구나 싶어요. 이리하여 ‘타작’은 “→ 바심. 배메기”로 다루어야겠고, ‘배메기’라는 낱말에 들러붙은 갖은 비슷한 한자말은 모두 털어야겠습니다.
장(場) : 1.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 지역에 따라 다르나 보통 한 달에 여섯 번 선다 2. = 시장
시장(市場) : 1. 여러 가지 상품을 사고파는 일정한 장소 ≒ 시상(市上)·장(場) 2. [경제] 상품으로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추상적인 영역
저자 : 1. ‘시장(市場)’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2.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가게 3.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반찬거리를 파는 작은 규모의 시장
‘장·시장’ 같은 낱말을 안 쓸 수 없습니다만, 두 한자말에 “≒ 저자”를 붙이지 않은 대목이 아쉽습니다. 한국말 ‘저자’를 알맞게 쓸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저자’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적을 노릇이 아니라, 뜻풀이를 달아야지요.
대기(大氣) : 1. ‘공기(空氣)’를 달리 이르는 말 2. [지리] 천체(天體)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기체
공기(空氣) : 1.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부를 구성하는 무색, 무취의 투명한 기체. 산소와 질소가 약 1 대 4의 비율로 혼합된 것을 주성분으로 하며, 그 밖에 소량의 아르곤·헬륨 따위의 불활성 가스와 이산화 탄소가 포함되어 있다. 동식물의 호흡, 소리의 전파 따위에 필수적이다 2. 그 자리에 감도는 기분이나 분위기
바람 : 1.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2. 공이나 튜브 따위와 같이 속이 빈 곳에 넣는 공기 3.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가짐 4.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 5. ‘풍병(風病)’을 속되게 이르는 말 6. 작은 일을 불려서 크게 말하는 일 7. 남의 비난의 목표가 되거나 어떤 힘의 영향을 잘 받아 불안정한 일 8. 남을 부추기거나 얼을 빼는 일 9. 들뜬 마음이나 일어난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0. 매우 빠름을 이르는 말
‘대기’는 ‘공기’라 하는데, 이 ‘공기’란 가만히 살피면 ‘바람’입니다. 옛날에는 ‘바람’ 한 마디로 모두 가리켰을 텐데, 과학이나 문명이 커지면서 ‘바람’ 한 마디로는 모자라다고 여겨서 여러 한자말을 끌어들이곤 합니다. 여러 한자말을 끌어들여야 하더라도, ‘대기·공기’ 모두 예부터 ‘바람’을 가리키는 낱말인 줄 알 수 있도록 “≒ 바람”이라 붙여 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바람’ 뜻풀이도 더 잘게 갈라서 쓰임새를 살려 주기를 바랍니다.
질서정연 : x
질서(秩序) :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정연(整然) : 가지런하고 질서가 있음
가지런하다 : 비슷한 물건이 층이 나거나 들쭉날쭉하지 않게 있다
한자말로 ‘질서정연’을 쓰는 분이 있는데, ‘정연’이라는 한자말이 “가지런하고 질서가 있음”을 뜻하니 겹말인 셈입니다. ‘질서정연·질서·정연’ 모두 ‘가지런하다’하고 잇닿지 싶습니다. ‘정연’은 “→ 가지런”으로 다루면 되고, ‘질서’는 “→ 가지런. 차근차근. 찬찬”으로 다룰 만합니다.
성급하다(性急-) : 성질이 급하다
급하다(急-) : 1. 사정이나 형편이 조금도 지체할 겨를이 없이 빨리 처리하여야 할 상태에 있다 2. 시간의 여유가 없어 일을 서두르거나 다그쳐 매우 빠르다
서두르다 : 1. 일을 빨리 해치우려고 급하게 바삐 움직이다 2. 어떤 일을 예정보다 빠르게 혹은 급하게 처리하려고 하다
‘성급하다’는 ‘급하다’로, ‘급하다’는 ‘서두르다’로, ‘서두르다’는 다시 ‘급하다’로 풀이하는 사전입니다. 얄궂지요. ‘성급하다·급하다’는 “→ 서두르다”로 다루면 됩니다. 이러면서 ‘서두르다’ 뜻풀이를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역(逆) : 반대 또는 거꾸로임
반대(反對) : 1. 두 사물이 모양, 위치, 방향, 순서 따위에서 등지거나 서로 맞섬. 또는 그런 상태 2. 어떤 행동이나 견해, 제안 따위에 따르지 아니하고 맞서 거스름
거꾸로 : 차례나 방향, 또는 형편 따위가 반대로 되게. ‘가꾸로’보다 큰 느낌을 준다
‘거꾸로’를 뜻하는 ‘역’이니, ‘역’은 “→ 거꾸로”라고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거꾸로’를 ‘반대로’로 풀이하는군요. 알맞지 않습니다. ‘거꾸로’ 뜻풀이가 돌림풀이가 되지 않도록 바로잡으면서 ‘반대’는 “→ 거꾸로. 맞서서”로 다루어 줍니다.
시급하다(時急-) : 시각을 다툴 만큼 몹시 절박하고 급하다 ≒ 애바쁘다
급하다(急-) : 1. 사정이나 형편이 조금도 지체할 겨를이 없이 빨리 처리하여야 할 상태에 있다 2. 시간의 여유가 없어 일을 서두르거나 다그쳐 매우 빠르다
애바쁘다 : = 시급하다
바쁘다 : 1. 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인하여 딴 겨를이 없다 2. 몹시 급하다
‘시급하다’하고 ‘급하다’가 맞물리고, ‘급하다’하고 ‘바쁘다’가 새삼스레 돌림풀이입니다. 이러면서 ‘애바쁘다’라는 낱말에는 뜻풀이가 없네요. ‘시급하다’는 “→ 애바쁘다”로 다루고, ‘애바쁘다’ 뜻풀이를 붙여야겠으며, ‘바쁘다’가 돌림풀이에서 벗어나도록 손질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급하다’는 “→ 서두르다. 바쁘다”처럼 두 가지 길을 알려주어야겠네요.
실행(實行) : 1. 실제로 행함
행하다(行-) : 어떤 일을 실제로 해 나가다
이행(履行) : 1. 실제로 행함
‘실행·행하다·이행’ 같은 한자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는 분이 있을까요? 어쩌면 아무도 안 찾아보는 나머지 이런 엉터리 돌림·겹말풀이가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셋 모두 사전에서 덜어낼 만합니다. 또는 셋 모두 “→ 하다. 해 보다”로 다루어 줍니다. 2018.3.27.뷸.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