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시 시골사람



  1995년부터 하루를 서너 시에 연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여덟아홉 살 무렵에는 새벽 다섯 시 반 무렵에, 중학교를 다니던 열네 살 무렵에는 새벽 다섯 시 무렵에 하루를 열었다.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 자란 몸이지만 새벽 다섯 시에 하루를 열며 싱그럽다고 느꼈다. 이무렵 도시는 시끄럽거나 자질구레한 것이 골목이나 길에 없다. 오롯이 혼자 조용하게 바람을 마시고 구름을 보며 동을 누릴 수 있어 즐거웠다. 둘레에서는 ‘무슨 학교를 새벽 다섯 시 반에 길을 나서서 가느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나, 자동차 거의 안 다니고, 걸어서 다니는 사람조차 없는 이무렵에 학교에 일찌감치 느긋하게 걸어가서는, 아침 일곱 시 반 무렵까지 학교에 아무도 오지 않아 커다란 운동장이며 건물에 나 홀로 덩그러니 앉아 생각에 잠기고 책을 펴서 읽으며 더없이 즐거웠다. 그러니까, 나는 모범생이 되려고 새벽 다섯 시 반에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갔다기보다, 오롯이 나 스스로를 조용히 돌아보며 하루를 열고 싶어서, 그 커다란 도시에서 조용히 두 시간쯤 누리고 싶어서 새벽마실을 한 셈이라고, 이제 와서 느낀다. 2010년에 아주 인천을 떠나 시골에 살고부터는 하루를 서너 시에 연다. 돌이키면, 1997년에 군대를 마치고 1998년에 다시 신문배달 일을 할 적에는 하루를 밤 두 시부터 열었다. 밤 두 시부터 하루를 여니 하루가 그지없이 길다. 그래서 밤 두 시에 하루를 열면 아침 일곱 시 무렵에 살짝 아침잠을 잔다. 새벽이란, 하루를 여는 새로운 빛이 떠오르는 때이기도 하면서, 스스로 삶을 짓는 첫걸음이라고 여긴다. 새벽 일찍 일어나면 시골사람이라고들 여기는데, 곰곰이 돌아보니 이 말이 참 맞다. 도시에 살아도 누구나 시골사람이 될 수 있다. 시골에 살아도 누구나 서울사람이 될 수 있겠지. 새벽 서너 시에 하루를 열고 저녁 아홉 시 무렵에 이르러 하루를 닫으면, 글 한 줄에 새벽결 아침결 낮결 저녁결 밤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면서 퍽 기운차게 흐른다고 느낀다. 요즈막에는 이처럼 때(새벽부터 밤까지)를 느끼도록 북돋우는 글을 마주하기 매우 어렵다. 다들 ‘때없이’ 아무 때나 글을 쓰는구나 싶다. 2018.7.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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