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52
뿌린 대로
어느 때부터인가 “경제적인 언어 사용”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글잣수가 적어야 “경제적인 언어 사용”이라 하면서, 한자말이야말로 “경제적인 언어”라고 하는 얘기가 퍼졌습니다. 그런데 참말 한자말이 글잣수가 적을 뿐 아니라 “경제적인 언어”일까요?
우리가 스스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든 나라 어느 겨레가 쓰는 말이든 하나같이 ‘알뜰’합니다. 알뜰하지 않은 말이란 없습니다. 알래스카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알뜰합니다. 불가리아나 덴마크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살뜰하고, 베트남이나 라오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한테는 그 고장에 맞는 말이 가장 알차겠지요.
영어를 놓고 영국이란 나라에서도 고장마다 다르게 씁니다. 미국하고 호주하고 캐나다도 다른 영어를 씁니다. 왜냐하면 큰 틀에서는 영어입니다만 고장마다 삶터가 다르거든요. 중국에서도 중국말은 고장마다 사뭇 달라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면 네 글씨라 한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라 하면 일곱 글씨라 한답니다. 그러니 ‘인지상정’이 경제적인 언어 아니겠느냐고 묻는 이웃님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럴 테지만, ‘인지상정’은 ‘人之常情’까지 알아야 하기에 정작 여덟 글씨입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언뜻 보면 일곱 글씨이지만 흔히 “뿌린 대로”처럼 쓰곤 합니다. 자, 곰곰이 따지면 어느 말이 단출할까요? 어떻게 말할 적에 바로 알아들으면서 알뜰살뜰할까요?
‘꼭’은 하나요, ‘반드시’는 셋이요, ‘필요(必要)’는 둘 또는 넷입니다. 우리는 글잣수 때문에 이 말을 쓰고 저 말을 안 써야 할까요? ‘어리석다·어리숙하다·바보스럽다·우둔(愚鈍)하다’가 있다면, 이때에도 글잣수만 보고 낱말을 골라야 할까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알뜰한가(경제적인가) 아닌가를 볼 노릇이 아니라, 결에 맞추어 생각을 제대로 밝히는지, 뜻에 맞추어 마음을 잘 드러내는지, 서로 기쁘게 이야기를 하는 발판이 될는지를 살필 노릇입니다. 2018.4.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