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46
카프카가 쓴 말
일본에서 한국말로 이야기꽃을 폈습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며 한국말로 한국책을 읽는 일본 이웃이 퍽 많다 하는데, 이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말로 짓는 사전이란 무엇이고, 사전에 담는 말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은 분 가운데 제가 쓴 책을 읽은 분이 문득 “최 선생님이 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어떤 일본말을 쓰는가 하고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착한’ 일본말을 얼마나 썼는지 돌아보면서, 앞으로 ‘착한’ 말을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하고 또박또박 한국말로 이야기합니다. 이분은 카프카 문학을 매우 사랑하여 카프카 책을 독일말로 다 읽으시기도 했다는데, “카프카가 어떤 독일어로 글을 쓴 줄 아십니까?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를 썼습니다. 카프카는 매우 쉬운 독일어로 아주 깊은 철학을 문학으로 담아냈습니다.” 하고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카프카 문학을 그리 사랑하지 않아서 몰랐고, 카프카 문학을 독일말로 읽지 않았기에 더욱 몰랐습니다. 카프카 사랑이인 일본 이웃님이 알려준 이야기를 듣고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매우 쉬운 말로 아주 깊은 생각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분이 있을까요? 쉬운 말로 부드러우면서 깊고 넓게 생각꽃을 펴고 글꽃을 피우는 분이 있을까요? 모두 어려운 전문용어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아주 ‘쉽게’ 쓰지는 않을까요? ‘쉬운’ 말을 쓰기보다는, 쉽지 않은 말을 ‘쉽게’ 쓰는 글버릇이나 말버릇에서 못 헤어나오지는 않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은 매우 쉽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들려준 말씀도 참으로 쉽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나 불경은 얼마나 쉬운 글일까요? 문학을 비롯해서 교육이나 정치나 사회나 철학이나 경제나 과학 같은 인문학은 얼마나 쉽고 부드러운 말씨로 펴나요?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말씨로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를 쓸 줄 아는 글님은 얼마나 될까요? 열 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는 쉬운 말이 평화요 평등이며 민주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4.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