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8 - 해바라기

 :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길이란


- 책이름 : 해바라기
- 글쓴이 : 시몬 비젠탈
- 옮긴이 : 박중서
- 펴낸곳 : 뜨인돌(2005.8.10.)
- 책값 : 10000원


 〈1〉 서울로 가는 길에

 

 새벽에 얼핏 잠이 깹니다. 방바닥이 뜨끈해졌다 싶어서 살짝 눈을 떠 보니, 보일러가 돌아갔나 봅니다. 방온도가 12도 아래로 떨어지면 돌아가도록 맞췄는데, 깊은밤에 11도로 내려가서 움직였는가 보군요.

 

 서울 나들이를 마친 뒤 돌아와 보면, 한낮에도 방온도는 12도 안팎이곤 합니다. 그러나 시골집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볼라치면, 깊은밤에도 방온도는 14도쯤 되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가만히 보니, 한 사람이 깨어나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몸에 있는 따스함이 방을 채워서 이렇게 방온도도 제법 높이 올라가는구나 싶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처형당할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그리고 끊임없이 샘솟는 갖가지 일화와 전설의 보고인 요제크가, 모든 인간은 애초부터 고난을 짊어지고 태어나는 법이라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고 해서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  〈19쪽〉


 드디어 비가 그치고 날이 갭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따뜻하겠지요? 벌써 12월이 코앞인데, 그러니까 지금은 겨울인데, 날이 참 포근합니다. 진작 왔어야 할 눈이 안 오고 비가 내렸어요. 겨울이 겨울 같지 않으니 서울에는 아직도 모기도 살아서 왱왱거립니다. 시골에도 나방이 아직도 살아서 파닥거립니다. 날씨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참. 그래, 날씨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 자연이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셈일까요?

 

 오늘이나 내일쯤 자전거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다시 떠나 볼까 합니다. 예닐곱 시간쯤 자전거를 몰고 서울로 가노라면, 길에서 부대끼는 자동차가 참 많습니다. 시골에도 차가 참 많습니다. 평일 한낮이나 아침인 때에도 차가 참 많습니다. 주말이 따로 없고 도시가 따로 없습니다. 이 많은 차들은 다들 무엇을 하려고, 어디로 가려고 길을 나섰을까요?

 

 시골을 벗어나 도시가 가까워지면 차는 훨씬 늘어나고, 빠르기도 아주 빨라집니다. 거칠기도 대단히 거칠고 무섭기도 참 무섭습니다. 자동차를 모는 분들은 왜 이렇게 길에서 거칠게 달리고 자전거꾼을 무섭게 할까요?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폴란드인과 함께 살았고, 그들과 함께 자라났으며, 그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언제나 이방인이었을 뿐이다.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상호 이해란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는 폴란드인 자신이 이미 독일에 예속된 상황 아래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유대인과 폴란드인 모두 똑같이 고난을 겪었지만, 둘 사이에는 여전히 장벽이 있었다 ..  〈113쪽〉


 시골 면만 나와도 가게가 제법 많습니다. 읍으로 나오면 훨씬 많습니다. 도시로 나오면 더더욱 많습니다. 서울로 접어들면 어디를 가든 길거리에는 가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탄 채로 생각합니다. 이 많은 가게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이 많은 가게에서는 무엇을 사고파나? 이 많은 가게에서 사고팔리는 물건들은 어떻게 쓰이고 남은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

 

 가게도 많지만 밥집과 술집도 참 많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세상인데, 집에서 밥을 안 먹고 바깥에 나와서 밥을 사먹는가요? 도시락도 안 싸고 다니는가요? 비싼 술에 비싼 안주를 먹어야 술맛이 나는가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공장 굴뚝은 이처럼 어마어마한 소비세상, 소비천국에 물건을 대주고, 소비세상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엇이든 돈 몇 푼 내고 씀씀이를 즐기며, 자동차도 이런 씀씀이 가운데 하나라는 것. 1시간이 안 되는 거리라면 가볍게 걷는 도시사람 보기 힘듭니다(시골도 비슷). 30분이 안 되는 거리라면 마땅히 걷는 도시사람 보기 힘듭니다. 대중교통을 타는 일도 좋지만, 두어 정류장을 넘지 않으면, 네 정류장까지도 스스럼없이 걸을 수 있어야 하지만, 걷는 사람이 참 적습니다. 걷기 버겁다면 자전거를 타면 될 일인데, 자전거 타는 사람도 적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터를 죽이고 있습니다.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만들고 쓰고 하면서. 아니 아무 생각 없이는 아니겠지요. 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는 일이겠지요. 먹고살아야 하니 마구마구 생산을 하고 소비를 해야겠지요. 먹고살아야 하니 자동차 공장에서 일해서 자동차를 엄청나게 뽑아대고, 텔레비전 공장에서 일하며 텔레비전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며, 회사 영업사원이 되어 이런 물건을 팔고, 또 이런 물건을 쓰며 그치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2〉 무시무시한 말 ‘먹고살기 힘들다’


.. 그는 자기가 땅속에 묻히면 해바라기를 한 그루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런 살인자는 죽고 나서도 뭔가를 가질 수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  〈85∼86쪽〉


 박정희와 전두환이 다른 대목이 있다면 한 가지를 들고 싶습니다. 박정희는 독재정치를 잇고 잇고 또 이으면서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민주주의 시늉을 내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전두환도 박정희처럼 끝없이 독재를 이어갔다면, 어리석은 이 나라 사람들은 전두환도 박정희처럼 우러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둘이 저지른 일이란, 둘이 우리 사회를 비틀어 놓은 꼴이란, 그다지 다를 바 없다고 느낍니다만, 받는 대접이 참 다릅니다.


.. “그리고 자네.” 아르투르는 나를 향해 말했다. “제발 이젠 그 이야기 좀 그만하게. 그렇게 끙끙 앓는 소리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일단 우리가 이 수용소에서 살아남고―솔직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세상이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이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게 된 다음이라면, 그런 용서니 뭐니 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거야. 옳다는 사람도 있고, 그르다는 사람도 있고, 자네가 그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나올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 우리가 지금 이 문제를 놓고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만 해도, 솔직히 나는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말할 수 없는 사치라고 보네.” ..  〈120쪽〉


 문익환 목사님은 한겨레가 남북에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뚜벅뚜벅 걸으면 휴전선이고 뭐고 다 무너진다고 시로 읊으셨고, 이것이 참 맞는 말이요 옳은 길인데, 정작 어깨동무를 겯자고 할 때 기꺼이 나서는 ‘보통’사람이란 썩 안 많아 보입니다. 독재정권에 눌려 있을 때에도 그랬고, 요즘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다들 참 바빠서 그러하지 싶습니다. 1960년대에는 1960년대대로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렇고, 2000년대에는 2000년대대로 먹고살기 팍팍해서 그렇다고들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예나 이제나 한 번도 먹고살 만한 적은 없었을까요? 그러면 얼마만큼 되어야 먹고살 만한 삶이 되는지.


.. “이 동네 사람은 모두 유대인과도 사이좋게 지냈어요. 그리고 우리가 직접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시겠죠.” 내가 대답했다. “지금은 누구나 다들 그렇게 말하죠. 지금 부인께서 하시는 말씀도 수긍이 가기는 합니다만, 이 세상에는 결코 그런 변명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독일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죠. 바로 독일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비록 개인적인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수치심만큼은 공유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죄를 저지른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승객이 전차에 올라탔다가 내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과연 누가 죄를 지었는지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독일인 모두의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죄를 짓지 않은 독일인도 그러한 죄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  〈146쪽〉


 자전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또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뒤에서 빵빵거리면서 윽박지르는 자동차가 곧잘 있습니다. 일부러 자전거를 깔아뭉개려는 듯이 길섶으로 차를 바싹 들이대며 으름장을 놓는 자동차는 이보다 많습니다. 도심지에서는 자전거가 못 지나가도록 길섶을 꽉 막아선 자동차가 퍽 많습니다. 길섶을 막아선 차는 신호에 걸리고 차에 막혀서 꼼짝도 못하는 차. 자기가 못 가니까 자전거도 가지 말라고 막는지, 자기가 앞에 가고 너는 뒤에 가라는 뜻으로 막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고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다 자가용을 굴립니다. 기름값이 그렇게 올랐어도 자가용을 꿋꿋하게 몰고 다닙니다. 굴리는 자가용도 값싸고 기름 적게 먹고 세금 덜 내는 작은차가 아닙니다. 큰차들입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면서 살림을 줄이는 사람 보기 힘듭니다. 쓸 것은 다 씁니다. 영화도 참 많이 봅니다. 밥집-술집-찻집-옷집 장사는 그야말로 잘됩니다. 참 아리송합니다.


.. 가령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나치 범죄자에 대한 재판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는 빛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아무런 증거도 확보되지 못한 범죄 사실까지 자백했다.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피고들은 그저 진실을 완강히 부인할 뿐이었다. 그들이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뿐이었다. 즉 자신들의 범죄를 목격한 증인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종종 그 SS대원이 25년 뒤에 이처럼 재판을 받게 되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상상해 보곤 했다. 그때 학장실에서 죽기 직전에 내게 한 것처럼, 재판정에서도 똑같은 고백을 했을까? 그때 죽어가면서 내게 참회한 것처럼,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을까? ..  〈149∼150쪽〉


 제 아침은 박새와 콩새가 깨웁니다. 까치도 깨우고 어치도 깨웁니다. 이밖에 다른 새들도 많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뭐, 이 이름이라는 것도 사람들 마음대로 붙였으니 그냥 ‘뭇새’라 하는 편이 나을라나. 때때로 다람쥐를 보고 고라니도 봅니다만, 먹고살기 힘들다면 바로 이 날짐승과 들짐승들이 먹고살기 힘듭니다. 자기들 삶터가 줄어들고 있는데, 먹잇감도 줄어들고 있는데,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날까요? 자전거로 국도를 타면 어김없이 차에 치여 죽고 깔려 떡이 된 짐승들 주검을 열∼스물쯤 봅니다(충주-서울 오가는 동안). 사람을 쳐도 뺑소니로 내빼는 년놈이 많지만, 짐승을 치고 미안해하거나 슬퍼하는 사람 보기 참 드뭅니다. 치여 죽은 짐승을 비껴 달리며 떡이 되지 않도록 마음쓰는 사람은 더더욱 드뭅니다. 모두들 찻길에서 너무도 빨리 달리기 때문에 길바닥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거들떠보지 못합니다. 앞만 보고 빨리빨리 달리기만 하니 볼 틈도 없겠지만.

 

 일이란, 또 놀이란, 우리를 즐겁게 하며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합니다. 일이든 놀이든 ‘먹고살기’만을 생각해서 하지는 않습니다. 먹고사는 한편, 즐거웁고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고달프기만 한 일을 왜 하겠습니까. 입에 풀칠만 하려는 일을 왜 하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 일이지요.

 

 나아가려는 길이 안 보입니다. 걸어가려는 길이 안 보입니다. 그저 씽씽 아슬아슬하게 내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엄청난 물건씀씀이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도무지 뭐하려고 살아가는 자기 삶인지, 그렇게 살면서 무슨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어린이였을 때부터 사람다이 살아가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사람다이 사는 길을 배우지 못합니다. 책 한 권을 읽혀도 지식을 건네는 책을, 조기교육이다 해서 이것저것 머리속에 쑤셔박는 책만 사 줄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읽힐 책이라면 누구보다도 어버이가 먼저 자기 가슴에 뿌듯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책을 읽혀야 할 텐데, 영어 교육에 좋다느니 이큐에 좋다느니 뭐에 좋다느니 하면서 싸구려 전집물을, 인터넷에서 40∼60%씩이나 깎아주는 책들을 골라잡아서 읽히는 판입니다. 아이가 중학교에만 들어가면 이런 책이나마 싹 치워 버리고 오로지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만 잔뜩 안기고 학원 뺑뺑이에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억지 자율’학습을 시킵니다. 대학교에 가까스로 들어가면 이제는 책이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놀다가, 학교 마칠 즈음 되어서 토익이나 토플이나 뭐를 대충 시험 보고, 그런 뒤 고시다 뭐다 공부도 하고…… 이렇게 해서 회사에 들어가면 또 무엇을 할까요? 부모가 좋아하는 사위나 며느리를 맞이해서 혼인하고 애 쑥쑥 낳고 ‘안정된’ 살림을 강남이나 분당이나 일산 따위에 몇 억짜리 아파트 하나 얻어서 살아가면 되나요?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길을 어버이 스스로 찾지 못하면서 아이를 낳는 형편입니다. 어릴 적에야 어쩔 수 없다지만, 머리통이 굵어진 다음에도 아무것도 못 느끼고 그저 따라만 가는 젊은이들도 자기 스스로 길을 안 찾아요.

 

 이야기책 《해바라기》에 나오는 유대인 학살과 독일사람들 죄값 문제도 크지만, 지금 우리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누가 앞서랄 것 없이 끔찍하고 모질다고 느껴집니다. 앞을 모르는 내달림, 그저 끝간 데 없이 소비주의에 빠지고 얼과 넋조차 없이 해롱해롱거리는 우리 사회라고 느껴집니다.


 〈3〉 아쉬움

 

 시몬 비젠탈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152쪽에서 끝납니다. 그 뒤에는 ‘심포지엄’이라고 해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어떻게 느꼈는가를 이야기한 글을 붙입니다. 거의 미국사람이 쓴 글입니다. 뒤에 붙은 글을 읽다가 몇 번이나 책을 덮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기에는 참 맞는 말이구나 싶으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거든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하고 미국이라는 나라 우두머리하고는 다르기 마련이라, 미국에서 벌이는 엄청난 침략과 독재정권 돕기를 놓고 한 마디도 안 하는 일이야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미국 여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는 일에 그토록 많은 이가 찬성을 하고, 쿠바나 니카라과를 비롯한 중남미에서도, 또 베트남에서, 또 한국에서 저지르고 있는 짓들을 놓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법. 책 끝에 한국사람 한 분이 글을 붙입니다. 그러나 참 아쉽습니다. 왜 일본사람 글은 하나도 없는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번역을 부지런히 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또 세계2차대전 때 모질고 끔찍한 가해자였던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 책 《해바라기》를 읽고 느낌을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안 실었는지? 어차피 세계대전은 ‘서양사람끼리 하는 싸움’이었으니, 서양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펴낸 책인지?(책은 프랑스에서 처음 나왔는데, 프랑스판은 시몬 비젠탈 이야기까지만 있고, 번역책은 미국책으로, 미국책에는 다른 사람들 생각이 붙었다고 합니다. 한국 번역책에는 한국사람 글 하나만 더 끼워넣었구나 싶습니다.)


..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 이처럼 끔찍한 모욕을 당하는 광경을 말없이, 항의 한 마디 없이 바라보는 것 역시 악랄한 행동은 아닐까? ..  〈94쪽〉


 사람과 똑같은 목숨붙이가 이토록 괴로워하고 ‘먹고살기’ 고달파 힘들어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우리들입니다. 아니, 지켜보기는커녕 아예 모르거나 등돌리는 우리들이라고 느낍니다. 푸나무나 짐승뿐 아니라 바로 이웃사람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해도 나 몰라라 하거나 외려 잘됐다고 키득거리는 우리들 아닌지요.

 

 나치 독일은 유대겨레 사람을 ‘눈에 잘 보이도록’ 죽이고 괴롭히고 들볶았습니다. 민주주의나라 한국에서 우리들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도록’ 서로를 괴롭히고 같은 한겨레끼리도 등처먹는 한편, 누가 더 많은 돈-이름-힘을 얻는가에만 눈이 벌건 채 돌아다닙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아니 벌써 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또 다른 《해바라기》를 이야기해야지 싶습니다. ‘내 돈 내가 쓴다는데 뭔 상관이야?’ 하는 말이 힘을 내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떼죽임을 돌아보는 또 다른 《해바라기》를 머리 맞대고 이야기해야지 싶습니다. (4339.11.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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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12-03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