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비 내리는 여행
오치근 외 지음 / 소년한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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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차”를 끓이고 싶어라
― 초록비 내리는 여행
 오치근·박나리·오은별·오은솔
 토마토하우스, 2015.5.1.


내려오는 길에도 차밭 풍경에 감탄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커피나 중국차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점점 쇠퇴해 가는 우리나라 전통차의 모습이 가지가 온통 잘려 나간 천년 차나무와 꼭 닮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20쪽)


  우리는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요? 책에 적힌 자취를 살필 수도 있으나, 책에 안 적힌 매우 오랜 자취가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차나무에서 딴 잎으로만 찻물을 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차란, 모름지기 풀잎이나 꽃물을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는 물이기에, 우리가 불을 써서 물을 끓일 수 있을 무렵부터 마셨으리라 어림합니다. 어쩌면 끓는 솥에 나뭇잎이나 풀잎이 섞이면서 맛이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껴서 곳곳에서 저절로 ‘풀잎·나뭇잎’ 끓여서 마시기를 했을 수 있어요.

  가만히 보면 ‘덖다’하고 ‘달이다’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낱말을 언제부터 썼는 지 모릅니다. 그러나 매우 오래된 낱말인 줄은 알 수 있어요. 그러니 차나무가 한국에 언제부터 있었는 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덖은 잎을 달이거나 끓여서 마시던 살림’은 참으로 오래되었지 싶습니다.


차꽃은 하얀 찔레꽃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1∼3송이가 피는데 5∼8장의 하얀 꽃잎 안에 노란색 꽃술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향기가 좋아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 말려 두면 꽃차를 만들 수 있다. (62쪽)


  《초록비 내리는 여행》(오치근·박나리·오은별·오은솔, 토마토하우스, 2015)을 읽습니다. 지리산 언저리에서 살림을 가꾸면서 살아가는 식구들이 ‘차마실’을 다닌 걸음을 글하고 그림으로 엮습니다. 저마다 올망졸망 그림을 그리고, 오치근 님이 글쓰기를 도맡아서 엮어요.

  책이름에 붙은 ‘초록비’란 찻물을 빗대는 말이라 할 만합니다. 봄비도 초록비가 될 테고, 찻잎도 초록비가 됩니다. 봄비가 스미어 푸르게 돋아나는 찻잎을 끓여서 마시면 우리 몸에도 초록비가 퍼질 테고요.

  두 어버이는 아이들을 이끌고 차마실을 다니면서 차나무도 보고, 차나무가 자라는 시골 들이며 숲을 봅니다. 차 한 잔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를 아이들하고 함께 생각해 보고, 푸대접받는 차나무를 지켜보기도 하지만, 이런 차나무 가지 끝에서 새롭게 돋는 싹을 보며 씩씩하구나 싶어 놀라기도 합니다.


좋은 물까지 구했다면 이제 찻자리를 마련할 차례다. 요즘은 다인들 중에 아예 차실을 따로 갖춰 놓는 사람도 있지만, 반드시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차를 마시기 좋은 장소라면 어디든 찻자리가 될 수 있다. (88쪽)


  맑은 물에 바람이 흐르는 자리에 찻자리를 마련해 온 식구가 둘러앉습니다. 느긋하게 찻물을 홀짝이면서 온몸이 따뜻해집니다. 차나무에서 얻은 잎으로 차를 끓이기도 하고, 쑥이나 감나무처럼 풀이나 나무에서 얻은 잎으로 차를 끓이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풀잎하고 나뭇잎은 찻잎이 될 만합니다. 봄에 갓 돋은 잎을 알맞게 말린 뒤에 찌거나 덖으면서 찻잎을 마련합니다. 봄에 마련한 찻잎으로 여름 가을 겨울을 따뜻하게 보냅니다. 봄 한 철은 씨뿌리기로 부산하면서, 차로 쓸 잎을 건사하기에도 부산하구나 싶어요.


집으로 돌아온 은별이는 초의 선사의 모습을 그려 보겠다며 정성이다. 은솔이는 차꽃을 띄우며 놀았던 돌확과 지천으로 피어 있던 동백꽃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는지 언니와 함께 온 방에 돌확과 꽃을 그린 종이를 펼쳐 놓았다. (119쪽)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읽고서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집 나뭇잎하고 풀잎으로도 찻잎을 건사해 보고 싶습니다. 쑥잎이며 감잎뿐 아니라, 모과잎이나 찔레잎이나 매화잎으로도 찻잎을 마련해 볼 수 있겠지요. 뽕잎으로도, 또 모과꽃잎으로도, 앵두잎으로도 찻잎을 마련해 볼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헤아리며 아이들하고 함께 잎을 훑어 그늘에서 말리고, 찻잎을 찌거나 덖은 뒤에, 다시 잘 말려서 오래오래 두자고 생각합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누리면서 우리 나무하고 우리 풀이 있다면, 많지 않더라도 “우리 집 차”를 마련할 수 있어요. 마을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받아서 우리 집 차를 끓이면서 아침을 열면, 한결 따스하면서 짙푸른 하루가 되리라 봅니다. 2018.4.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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