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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딩 감옥의 노래 ㅣ 큐큐클래식 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지현 옮김 / 큐큐 / 2018년 3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말 329
감옥 담장은 튼튼하고 하루는 길더라
― 레딩 감옥의 노래
오스카 와일드/김지현 옮김
쿠쿠, 2018.3.2.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자유로와야 할 영혼에
빡빡히 조인 굴레를 씌워 가두려 하고
숲은 모두 자유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건전한 상식의 먼지 깔린 길을 걷는다지 (변명/53쪽)
시집 <레딩 감옥의 노래>(오스카 와일드/김지현 옮김, 쿠쿠, 2018)는 두 가지 시를 들려줍니다. 앞쪽에는 글쓴이 오스카 와일드 님이 ‘여느 삶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길로 쓴 시라면, ‘레딩 감옥의 노래’는 ‘감옥이라는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길로 쓴 시입니다.
이 시집은, 오스카 와일드 님이 왜 옥살이를 해야 했는가를 모르는 채 읽을 수 있고, 이 대목을 궁금히 여겨 책끝에 붙은 풀이글을 먼저 읽고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시부터 먼저 읽고서 풀이글을 읽었고, 시를 새롭게 더 읽어 보았습니다.
저 높이 우짖는 하얀 갈매기를 봐
우리가 못 보는 그 무엇을 보는 걸까
별일까? 아니면 먼 바다로 나가는
어느 배에서 번뜩이는 등불일지도 몰라.
아! 어쩌면 우리는
꿈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그녀의 목소리/67쪽)
혀도 없고 노래도 못 하는 어느 죄의 유령이, 밤의 장막 사이로 기어나와
내 방의 양초가 환히 타오르는 것을 보고, 문을 두드려 너를 들여보낸 걸까? (스핑크스/121쪽)
오스카 와일드라는 분이 옥살이를 한 탓은 여러모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얼핏 보기로는 동성애 때문이라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국 귀족 사회 틀을 ‘더럽게 건드렸’기에 미운털이 박혔다고도 합니다. 영국 귀족 사회는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이 ‘후작 집안 젊은이’를 이끌고 동성애를 즐기는 몸짓을 두고볼 수 없었다고 하는군요. 영국 귀족 사회는 ‘공개 동성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고, 오스카 와일드는 동성애도 이성애도 모두 떳떳한 사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동성애를 한다는 대목을 떳떳이 밝히고 산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에서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주류 남성’이 매우 싫어했다고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를 둘러싸고 영국 귀족 집안 젊은이하고 ‘공개된 동성애’를 누리지 않았다면, 이녁 문학에서도 동성애를 고스란히 드러내지 않았다면, 아마 이녁은 옥살이를 치러야 할 일도, 한동안 영국 문단에서 버림받아야 할 일도 없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녁은 제 마음이나 사랑을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에 빠진 이들과 함께 원을 그리며
그와 다른 줄에서 걷던
나는 궁금해졌네. 그 남자가 저지른 죄가
큰 것일까 작은 것일까
그때 내 뒷사람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말,
“저 친구, 교수형당할 거라오.” (레딩 감옥의 노래/141쪽)
다만 그가 어떤 생각에 쫓겨 발걸음이
빨라졌는지, 그리고 어째서
눈부신 하늘을 향해 그토록 애틋한 눈빛을
보냈는지, 나는 알았네.
그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죽였고
그래서 죽어야 하는 것이라네. (레딩 감옥의 노래/143쪽)
옥살이를 해야 하면서 그동안 누리던 이름이나 삶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감옥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 햇볕 한 줌을 쬐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옥살이를 하는데 어느 날 사형수 한 사람을 문득 보았다고 합니다. 볕바라기를 시키는 감옥에서 볕바라기를 하기보다는 하늘을 애틋하게 올려다보는 사형수 모습이 남다르게 보였다고 해요.
오스카 와일드 님은 레딩 감옥에서 이태를 살고 나온 뒤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갔다지요. 다만 이 마지막 삶자락에서 쓴 글이 ‘레딩 감옥의 노래’이고, 이 시는 옥살이를 하기 앞서 쓴 시하고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즐겁게 꿈꾸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시였다면, 레딩 옥살이를 마치고는 아프거나 슬픈 이웃이 살아가는 나날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함께 아프거나 슬픈 마음을 담은 시였다고 해요.
어떤 이는 젊은 시절에 사랑을 죽이고
어떤 이는 늙어서 죽이지
어떤 이는 욕망의 손으로 목 졸라 죽이고
어떤 이는 황금의 손으로 죽이네
가장 친절한 자는 칼로 죽이지, 그래야
죽은 자가 빨리 차가워지니까 (레딩 감옥의 노래/145쪽)
그러다 마침내, 걷는 수감자들 사이에
그 남자가 나타나지 않자
나는 알아지, 그가 검은 피고석의 끔찍한
칸막이 안에 서 있으며
신의 달콤한 세상에서는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을 것임을. (레딩 감옥의 노래/159쪽)
사랑을 노래하던 사람은 사랑을 노래했기에 발목에 사슬을 채워야 했고, 발목에 사슬을 채우고 옥살이를 하는 동안 사형수를 만납니다. 사형수를 만나고 이이를 지켜보면서 무엇을 헤아렸을까요. 감옥에서 노예처럼 고된 일을 날마다 치르는 이태를 견디고 감옥 바깥으로 나와서 어떤 바람을 쐬었을까요.
다른 글은 더 쓰지 못하고 오직 ‘레딩 감옥의 노래’만, 레딩 옥살이에서 겪은 이야기를 ‘노래(ballad)’라는 이름을 붙여서 길게 시 하나를 쓰기만 한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더는 노래할 기운을 내지 못했으나 마지막으로 노래한 한 마디에 어떤 꿈이나 사랑을 실을 수 있었을까요.
법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
그런 것은 나는 모르네
감옥에 누워 있는 우리가 아는 것은
담장이 튼튼하다는 것과,
하루가 일 년 같다는 것, 꼭 그만큼
매일이 길다는 것뿐이라. (레딩 감옥의 노래/207쪽)
고된 하루가 깁니다. 고되지 않은, 그러니까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는 어떠할까요?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는 짧을까요, 아니면 사랑으로 가득한 하루도 길까요?
레딩 옥살이를 마치고 죽음길로 떠난 오스카 와일드 님을 묻은 자리에 ‘날개 달린 스핑크스’ 조각을 세웠다고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날개를 꺾어야 한 몸이지만, 흙으로 돌아간 저승나라에서는 날개를 다시 펴고 날아오르려나요.
깊고 어두운 곳에서 울리는 노래는 오래오래 흐릅니다. 가위질하는 법은 목숨 하나를 끊었지만, 날개를 달고 싶은 노래는 새롭게 저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2018.4.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