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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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의 책은 '타워', '맛집 폭격', '예술과 중력가속도' 등을 이미 만나봤는데

기존에 한국소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SF적 기반에 세상의 부조리를 풍자하는 사회비판적 성격의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녹여낸 작품들로 국산소설로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별화가 되어

이번 신작에서는 과연 어떤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다.

 

제목부터 '이게 뭐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이 책은 갑자기 서울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성벽이 출현하는 기이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왠지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실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전쟁이 난 것처럼 난리가 날 것 같은데 의외로 담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게 바로 고고심령학자로 이 책에선 고고심령학을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아마 고고학과 심령학의 조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에선 없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주연으로 등장한다. 서울에 등장한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와 이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까지 이 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심각한 듯 심각하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대책 수립을 위해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되고 고고심령학자인 은수가 참석하는데

여기서 스승인 문인지 박사와 친분이 있던 한나 파키노티 박사와 만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성벽은

그녀가 자신의 논문에서 말한 '요새빙의' 현상이라 할 수 있었는데, 파키노티 박사는 보이지 않는

성벽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장기판의 기물 중 하나인 '상' 코끼리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이 책 전반에서 우리가 흔히 장기라 부르는 게임의 다양한 버전들에서 코끼리를 표상하는 기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얘기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기물들의

이동법을 담아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장기와 유사한 게임에 대한 논문

수준의 내용을 선보인다. 그리고 혼령과 소통하는 장면들은 영화 '식스 센스' 등에서 봤던 장면들을

연상시켰는데 역시나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소유자라 얘기가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가 어려웠다.

어릴 때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전우야 잘 가거라'와 '딱따구리 마요네즈'의

가사까지 뭘 이런 것까지 연구하느냐고 할 정도로 다양한 얘기들이 버무려져 있었는데

시종일관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배명훈 작가의 책들은 읽을 때마다 현실과는 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온 듯한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 책도 서울을 배경으로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닌 또 다른 서울을 경험한 느낌이었고,

이 책을 쓰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상당히 많은 조사를 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늘 색다른 얘기로 독자들에게 소설 읽는 재미를 선사했던 배명훈 작가가

다음에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과연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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