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필두로 총 9권인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출간 순서대로 읽기
시작한 지 벌써 7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드디어 9권을 모두
소장하게 되면서 딱 중간인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부터 가속도가 븥기 시작했는데, 이후 읽은 '미국
총 미스터리'나 '샴 쌍둥이 미스터리'는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이 없지 않은 터라 이 책은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챈슬러 호텔 22층 대기실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둔기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추리소설 속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것이야 필수 양념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책 속의 살인사건이 다른
작품 속 사건과 다른 점은 한 마디로 '거꾸로 범죄'라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옷을 거꾸로 입은 상태인
것을 비롯해 난장판이 된 방안의 가구나 책장, 카펫 등이 모두 벽을 향한 채 거꾸로 되어 있어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신원미상의 남자가 기이한 모습으로 죽은 사건에서 엘러리
퀸은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있던 현장에 뭔가 사건의 단서가 있음을 알아차리지만 그게 뭔지는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우표와 보석 등을 수집하며 사건 현장 옆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던 도널드 커크와 그의 가족들은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하나씩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도 까도 의심만 갈 뿐 확실한 한 방이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자잘한 의혹들은
밝혀지지만 여전히 피해자의 정체나 범인의 윤곽은 잡히지 않는데 피해자가 뉴욕 출신이 아니라면
어딘가에 짐을 맡겨놓았을 거란 생각에 찾아가지 않은 짐을 수소문해서 범인이 나타나길 기다리지만
낌새를 눈치챈 범인이 등장하지 않고 결국 모든 것은 엘러리 퀸의 추리에 달린 상황이 되면서 피해자
모형을 만들어 갖은 실험을 해본 엘러리 퀸이 드디어 피해자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낸다.
전작인 '샴 쌍둥이 미스터리'에서 빼먹었던 '독자에의 도전'이 다시 등장해 반가웠는데, 이번에도
빼먹을 뻔 하다가 교정이 끝난 뒤 출판사 직원이 발견하고 알려줘서 부랴부랴 추가하면서 전작에서
빼먹은 사실도 알게 되었다니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엘러키 퀸이 좀 느슨해진 듯한 느낌을 주었다.
범인이 거꾸로 상황을 연출해야 했던 동기는 충분히 예측한 바이지만 뭘 숨기려고 했는지는 그쪽을
잘 모르다 보니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었고, 특히 범인이 만든 트릭은 사실 추리해내기 어려웠지 않나
싶었다. 전작과 같이 이번에도 범인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서 뭔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라
할 수 있었는데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단순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거꾸로 범죄'라는 기상천외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제 국명 시리즈도 단 한 권만 남겨두었다. 마지막이 다가와서 그런지
좀 아껴둬야 할 것 같은데 국명 시리즈와의 아름다운 이별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