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막 <콘택트 2>를 다 읽었다. 나는 많은 생각들을 하는데 대부분은 당연히 기록되지 않고 잊혀진다. 그 중 아주 일부만이 이렇게 기록의 형태로 남는다.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 생각한 점을 남기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책은 아마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가 아닐까? 아마도 칼 세이건은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과학자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은 거대했다. 칼 세이건이 아니면 과학과 종교를 다루는 이야기를 이처럼 우아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남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이 그 자신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은 신봉하지만 남의 생각은 의심한다. 자신의 생각에는 독실한 신앙인이 되지만 남의 생각에 대해서는 회의론자가 된다.
칼 세이건은 이 소설을 통해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는 종교인들을 설득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시도하다니 역시 대단하다고 경의를 표한다. 물론 이 소설로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등장인물 파머 조스처럼 어느 정도 생각이 깨어있는 종교인이라면 설득당할지도 모른다.
종교와 과학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의 해답은 바로 "물리적인 증거" 다. 이것은 어쩌면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도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비롯하여 그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아래 내용은 스포를 포함합니다.)
이미 오래 전의 소설이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봉되었지만 그래도 스포는 조심하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은 우주에서 온 신호를 수신하여 기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기계를 타고 외계인을 만나고 온다. 하지만 지구로 돌아와보니 시간은 20분 밖에 흘러있지 않고 우주선은 이동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찍은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주인공의 경험은 주관적인 경험일 뿐 그녀에게 물리적인 증거가 없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여기서 과학자와 비과학자의 차이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종교인들은 자신의 말이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과거의 기록은 증거가 될 수 없다. 과학자들은 주장할 때 항상 증거를 가지고 주장한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과학자들의 주장을 믿지도 않고 증거를 보지도 않는다. 종교인들과 과학자들의 소통을 위해 공통의 언어로 '과학'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어쩌면 인류의 공통 언어를 넘어 우주의 공통 언어일지도 모른다. 수학은 분명 우주의 공통 언어일 것이다.
칼 세이건은 이런 생각들을 아주 우아하고 멋지게 소설을 통해서 표현했다. 과학과 신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소설을 통해 보여줬다. 그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리처드 도킨스의 설득 방식보다 칼 세이건의 방식이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