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소설이었습니다.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을 그려서 더욱 위대한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플에서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호평을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책이었습니다. 역시나 좋았습니다. 삶의 끝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공과 실패? 부나 명예? 사랑과 가족? 이 책은 여러분께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어떤 것에 당신의 열정과 사랑을 바쳤는가?

 

 

 아래는 시골 농부의 자식이었던 스토너가 문학의 세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교수는 스토너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로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여러분에게는 셰익스피어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 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아래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이토록 멋진 문장을 쓰는 작가의 소설 읽어보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가 짐작했던 것만큼 훌륭한 책이었다. 문체는 우아했고, 명석한 지성과 냉정함이 열정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글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도 그녀의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갑자기 그녀가 바로 옆 방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다가 온 것 같았다. 방금 그녀를 만졌던 것처럼 손이 저릿거렸다. 그 상실감, 그가 너무나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그 상실감이 쏟아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의지를 넘어 그 흐름에 휩쓸리는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자신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기억을 향해 미소 짓는 것처럼.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들 초얼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강렬하고 꾸준하게. 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 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 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 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p353

 

  스토너는 죽기 전 자신의 인생을 관조합니다. 아래는 그 부분입니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한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p388

 

  "책이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너무나 멋진 표현입니다. 이 소설 마지막까지 멋집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p392 

 

 

 추천드리고 싶은 소설입니다. 한 남자의 인생을 담담히 따라가다보면 곳곳에서 우리의 인생을 마주치게 됩니다. 위대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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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7-02-12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성공한 삶을 살았기도 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죠.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큰 성취를 이루었으면서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따당하고 와이프한테 다시 따당하고, 그러면서 또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도 하고. 이래저래 우리네 인생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13 01:0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CREBBP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요. 저도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잃어버리길 반복하는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