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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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나뭇잎이 어느새 앙상한 가지를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누구나, 탄생과 소멸의 반복되는 순환과 그 고리들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삶은 상실로 향하는 여정이 되어 있다. 매번 찾아뵐 때마다 연로한 부모님이 조금씩 잃어가는 것들. 기억, 건강, 활력, 이를 잇는 나와 내 세대가 잃어가는 것들. 완전한 소멸을 향해  가고 있는 개체의 삶이 의미있는 건, 그 개체의 소멸이 바로 이 세계의 활력을 지속시키고 생명을 지속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은 탄생과 더불어 먼 하나의 끝 소멸을 향해 성장하고 발전하고 쇠퇴하지만 우주는 그대로 자신이 가진 운동 법칙에 따라 운행을 계속하고, 새로운 세대는 계속 탄생하고 거듭되고 순환하는 세계를 이어 하나가 된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몇 세대에 걸친 가족의 반복되고 순환하는 역사를 '마술적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사실에 환상을 섞어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폴란드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올해,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올가 토카르축의 이 소설은 여러가지 면에서 백년의 고독을 연상시켰다. 태고라는 마을은 마코토 마을을 연상시킨다. 마코토 마을과 태고는 모두 고립되어 있지만 삼 대째 이어가는 마을의 작은 중심이다. 그 중심은 확장되고 번성하고, 전쟁과 여러 번의 역사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소멸되어 간다. 그곳에서 주요 인물들은 성장하고, 자식들을 낳고 자신의 의지와, 지식과 통찰로는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대격변을, 거부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그 역사를 삶 자체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거의 1세기 전체, 3세대에 걸치는 시간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독립, 세계 대전, 쿠테타, 또다시 전쟁, 홀로코스트, 나치와 소련의 점령, 사유재산 몰수,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 지난 세기 특히 앞쪽 절반 동안 그 어느 나라와 민족과 국가와 지역이 이러한 파괴적인 격변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우리 세대의 어머니 아버지들, 그들의 부모와 그 부모의 부모들이 만났던 숱한 역사들이 그들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고 짓밟고 찢었놓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몰락해가고 부패해가는 세상 속에서 절망하며 살아남았는지 우리는 들은 만큼만 안다. 태고의 폴란드에서도 백년의 마코토에서도, 그것들은 그 역사적 사건과 행위에 아무런 관심도, 영향력도 없는 모든 소시민들의 개인의 삶과 일상을 지배했다.


“모든 것은 발전한다는 확고한 믿음, 모든 종류의 낙관주의는 결국 청춘이 품고 있는 가장 큰 기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가 언제나 독약처럼 은밀히 지니고 다니던, 절망으로 가득 찬 그릇이 그의 내부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시간 중”


독립이 되고,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고난과 죽음과 부패로 우울에 짙은 거리와 집에서 상속자 포피엘스키는 신의 부재를 느끼고 절망한다. 이후 사업은 번창했지만 우울증에 걸리고, 랍비가 보내준 게임박스를 선물받는다.  컴퓨터 게임도 아니고 상자에 있는 조잡한 모형과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길이 그려져있고 그 한 복판에 태고라고 적힌 넓은 천과 주사위, 그리고 가이드북으로 구성된 게임 상자다. 현대의 컴퓨터 MMORPG 게임을 연상시키는 세계 창조 게임을 한다.  한 계절 내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1이 주사위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봄을 다 보낼만큼 게임의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며 포피엘스키는 빠져든다. 


“이 게임은 탈출을 위한 지도이다. 미로의 중앙에서부터 시작된다. 게임의 목적은 모든 영역을 통과하여 여덟 개의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 게임의 시간 중”


가상의 컴퓨터 게임 세계에서 반복되는 우주 창조와 진화 게임을 보여주는 류츠신의 [삼체], 7인에 의해 반복되고 좌절되는 사형 집행이라는 가상 세계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이보영의 [7인의 집행관]에서 경험한 적 있는 세계의 창조와 멸망 그리고 반복되는 순환이라는 가상 세계를 아날로그적 방법으로 표현한 상속자 포피엘스키의 게임은 이 소설에서 마법적 판타지를 현실에 투영하여 영리하게 연결시킨 매혹적인 기법이다. 게임은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신화와  실제를 연결시킨다. 주사위를 던지고, 세계가 태어나고, 포피엘스키는 게임이 지시하는 바를 따른다. 개가 되는 꿈을 꾸라는 지시에 따르기 위해 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개를 떠올리고, 마침내 개가 되어 킁킁거리고 냄새맡으며 돌아다닌다. 그래야 게임이 지속된다. 꿈이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바라는 대로 꿈을 꾸는 법과 그 꿈을 조정하는 법까지 터득한다. 게임에 빠진 그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꿈의 세계에서 주로 머물며, 현실 공간은 잠시 다니러 오는 뿐인 곳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나치가 점령했다가 물러갔고, 이번에는 사유재산이 몰수되어 그의 성, 공장, 방앗간 등 태고의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지만, 그는 드디어 한판을 깼다고 모든게 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즐거워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서, 시인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정말로 자신의 의지로만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 그 [가지 않은 길]의 인생 길 속에는 분명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어떤 상황, 마주하게 되는 어떤 역사적 사실들과 늘 대면하게 되어 있고, 길의 선택은 이것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엉키고 섥힌 숱한 선택지 속에서 자신이 볼 수 있는 길의 앞은 아주 바로 한 발자국 앞일 뿐이다. 그 앞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크랙이 그 앞에 뻗어나갈지는, 유사하게 되풀이 되는 역사지만 한 번도 똑같은 시간과 공간이 만난 적 없는 여기 우주에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우주의 우연성이 오랫동안 신의 계시 혹은 신의 판결로 여겨져 왔던 그 가지 않은 길의 진실이 있다. 신은 거듭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만 모든 상황은 세계를 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좌절하는 신은 무엇인가, 파괴되고 또 새롭게 창조되는 세상. 전쟁과 학살과 약탈과 침략과 부패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선택한 [가지 않은 길]과 [따라간 길] 속의 모든 개인들이 20세기 전 역사를 통틀어 경험한 체험의 알레고리가 이 게임에서 번번히 절망했던 신의 8번의 세계 창조와 파괴로 나타난다. 3대에 걸친 여러 가문에서 일어나는 이 방대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과 주어진 환경에 의해 개인과 그 후손들의 굴곡진 운명을 전하지만, 어느 특정인이 주인공이 아니며 등장 인물 모두와 신,  마녀와, 성녀, 죽은 사람, 초능력 등 동시대에 누군가의 머리속에 민담으로 있던 비현실적인 존재들, 그리고 식물, 동물에서 그라인더 같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의 시간이 공평하게 담겼다.


유복하고 선택받은, 상속자 파피엘스키와 그의 가족들과는 가장 대조적으로 나오는, 처음부터 맨발에 거지였던 크워스카는 그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변치 않게 언제나 멸시받고 천대받는 존재다. 그렇지만 뱀과 사랑을 하고, 안젤리카라는 식물과의 사이에서 딸 루타를 낳는, 마녀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초월적 존재다.  방앗간 부부인 미시아와 게노베파는 중산층의 평균적인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게노베파는 남편이 징집중일 때는 외도를 하는 젊음의 시간과 늙어서는 이웃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장면을 목격한 이후 주저앉아 다시는 걷지 못하는 시간이 있다. 각자의 시간을 갖는 태고의 주요 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다. 딸 미하우의 남자친구를 질투하는 미시아의 시간과 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대궐같이 큰 집을 짓는 미시아의 시간 옆에는 아들 파베우가 새로 지은 미시우의 커다란 저택으로 장가가자 자신의 딸 스타시아를 위해 그 옆의 작은 땅에 집을 짓는 초라한 지붕쟁이 보스키 영감의 시간이 있다. 두 평범한 가족의 교차된 시간 속에는 상속된 부와 성(gender), 그리고 장애의 굴레 속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가지 못한 길] 옆의 샛길 위에 궁색하게 버려진 소수자들의 삶을 조용하게 조명한다.


지붕쟁이 파베우의 똑똑한 아들 파베오는 부자집 딸에게 장가가고 당의 유력 인사와 가까와지기를 바라며 가난을 극복한 기회주의적 시간을 비교적 무난하게 살아가지만, 그의 누이 스타시아는 바로 남동생이 극복한 그 가난과 비천함으로 인해 남자에게 버림받고 궁색한 시간을 인내한다. 반면 아름다움과 자발적 의지라는 타고난 선물이 주어진 크워스카의  딸 루타는 그 쉽게 부와 교환 가능한 성적 매력이 얼마나 깨지기 쉽고 함부로 다루어지는 종류의 것인지를 결혼을 통해 깨닫는다. 경제적 필요를 남자에게 의탁해야 했던 당대 여성들은 자발적이든 아니든 남자에게서 독립적이어야 할 때 경제적 독립이라는 거대한 난관에 봉착하는데, 이를 극복해야 하는 시간이 여성 해방과 페미니즘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스타시아는 물건을 사다 팔며 마을에 작은가게를 열어서, 루타는 악마의 소굴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제삼의 국가로 가는 길을 택함으로서 그들의 험난한 인생 여정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게노베파가 루타와 출산시 뒤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장애 아들 이지도르는 한 때 루타를 사랑하지만 배반당하고, 누나 미하우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하는데, 훗날 그가 루타가 보내온 우표를 계기로 이상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해학적인 시간도 있다. 이들의 시간 곁에는 집의 시간, 수호천사의 시간, 버섯균의 시간, 보리수의 시간과 같은 개체들의 시간이 조용히 교차한다. 신처럼, 영혼처럼, 물질에 깃들어 있는 정신 역시 우주의 공간을 구성하고 인간들에게 상호 영향을 끼치는 것들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는 그 굴곡지고 얼룩진 삶의 평범하고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시간의 흐름과 동시에 조금씩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결국 시간이 앞으로 가는 동안 뒤에서 조용히 완전한 무로 소멸되어 사라진다. 이렇게 각자 시간 조각이 그들의 내밀했던 시간의 이야기들을 전할 때, 폴란드라는 멀고 낯선 땅에서 낯설지 않은 동질의 역사적 비극과 탈출할 수 없는 굴레를 조우할 수 있었다. 여전히 소멸하고 여전히 탄생하는 세계의 순환과 반복 앞에서 조용히 사라질 나의 시간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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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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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지식이 자유자재로 뻗어 있는 에코의 글은 산만해서 집중을 요구할 때가 많지만, 대신 항상 유머와 해학으로 즐거움을 서비스해준다. 블랙 유머는 독일어를 잘해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지도교수를 잘못 만나면서 꼬이기 시작하던 시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한번 꼬인 인생은 성공으로 가는 우연의 길목을 만나지 못하고 계속 꼬인 채로 중년에 이르렀다. 고스트라이터에서부터 시작해서 번역 일과 온갖 잡동사니 신문에 닥치는 대로 글을 쓰며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며 사는 50세의 콜론나가 자신의 인생을 실패자로 규정하는 대목은 잘 안나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준다. 

패배자는 독학자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승리자보다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가 승리하고자 한다면 그저 한 가지만 잘 알아야지 무엇이든 다 알겠다고 시간을 허비에선 안 된다. 박학다식하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건 패배자들이 겪는 업보이다. 어떤 사람의 지식이 늘면 늘수록 잘못 돌아가는 일들도 자꾸 늘어간다는 것이다. 24


그러던 어느 날 시메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제안을 한다. 콤멘다토레가 발행하게 될 새로운 신문의 창간 멤버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인데, 제시하는 액수가 엄청나다. 이렇게 뜬금없는 금액을 제시할 때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 시메이는 이미 세상 쓴 맛을 두루 섭렵했을 콜론나에게 숨김없이 계약 조건을 이야기한다. 

창간 준비만 하다가 발행인의 결정으로 사업이 끝나버리면, 나는 책을 출간할 겁니다. 책은 폭탄이 될 것이고 나에게 거액을 인세를 안겨줄 겁니다. 그런데 책이 출간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내가 책을 출간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주겠지요 (p33)


이 책은 우선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타블로이트 신문의 창간 준비호가 제작되는 과정의 세부 논의 과정들을 통해 뉴스가 제작되는 생태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재능있고 경험이 풍부한 콜론나는 데스크를 맡으며 창간을 준비하기 위해 고용된 기자들과 친해진다. 그 중 한 편으로는 브라가도초와 뜻하지 않게 자주 얽혀 그의 장황하고 황당하기 그지 없는 음모론의 청취자가 되고 술값까지 내게 되는 상황이 자주 생기고 한편으로는, 연예인 뒤꽁무니만을 따라다니던 전직 연예계 기자 마이아와 썸을 타게 된다. 브라가도초가 기레기를 대표한다면 마이아는 아직까지 대중에게 진실을 전하고 싶은 순수한 기자 정신을 대표한다. 

나오지도 않을 신문이지만, 시메이 주필과 콜론나는 기자들에게 신문의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신문의 실제적인 요구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발행인인 콤멘다토레가 요양원을 소유했는데 한 판사가 요양원의 운영실태 수사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발행인에게까지 수사의 영향력이 미치게 될 것을 미리 염려해, 수사관의 뒤를 캐는 것이 신문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신문이 할 일은 무엇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옳지 않'을 때 취해야 할 것은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그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만한 것을 찾아내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청렴하다고 해도 수상쩍은 일을 한가지쯤은 했을 거에요. 그것도 아니라면..그가 매일 하는 일을 수상해 보이도록 만드는 겁니다...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188

이 얼마나 익숙한, 사실 진부하기까지 한 수법인가.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이 처형해왔던가. 오늘도,  미디어를 장악한 베를루니코스가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각종 비리와 부패의 파티장으로 벌였던 10년의 장기집권 기간 중의 범행은 우리나라가 겪은 10년의 개막장이게나라냐정부와 여러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이탈리아에서 꺼진불도 다시보지 않고 재활용했던 파시스트들의 잔존 여파가 부패 극우로 변신하는 과정과 혈서 쓰고 친일을 한 후 공산당까지 골고루 돌아가며 했던 자랑스런 아버지를 둔 덕에 허황된 지역주의에 목을 맨 세력과 이에 호응하는 대중을 업고 대통령까지 했던 박씨의 성공담과 구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경우 미디어가 아무리 잔머리를 굴리고 노력해도, 적당히 해먹었어야 덮는 게 가능하지라는 본보기를 근과거의 역사가 흔들리는 촛불의 잔영속에 비추지만, 미디어는 오늘도, 진실을 전하기 보다는,  목적을 위해 사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잘라내기 오려붙이기를 통해 대중의 눈을 속이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세월호에 탔던 어린 아이들이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가라앉았다는 그 엄청난, 믿기지 않은 사건의 본질은 실종되고 숨은유병원찾기놀이로 일제히 여론이 움직였던 일을 잊은 듯 본질을 호도한 보도들에 묻혀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을 의심하고 비방하고 검찰의 권력 앞에 꼭두각시처럼 부화뇌동하고 있다.

악한 사람을 신문에서 착하다고 부르면 그 사람은 착한사람이 되고, 사람들은 신문을 따라 착한OO라고 부른다. SNS 시대에도 여전히 신문과 뉴스의 효과는 그 무엇보다 막강하고,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이 개인 1인 미디어가 외치는 말보다 진실성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모가 어떤 세력을 와해하고 혹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소한 거짓을 퍼뜨리는 방법은 교묘해서 알아차리기 힘들다. 1의 거짓을 전달하기 위해 99의 하찮은 진실에 1의 중대한 거짓을 섞어 전달하면 99의 하찮은 진실이 휘발한 후 1의 거짓만이 99만큼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이 짓거리들에 한국의 신문들은 최고가 되었다.

맞아요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145

신문들은 뉴스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뉴스를 덮어서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 250

가짜뉴스가 판을 치다 보니,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달에 가지 않았느니, 에이즈라는 질병은 존재하지 않는다느니, 미국정부가 UFO니 외계인을 숨기고 있다느니 하는 여러가지 음모론 속에 0.1%의 몰랐던 진실, 매우 역사적으로 중요한 진실이 숨어있다면 음모론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브라가도초는 어이없게도 처형당한 무솔리니가 대역이었다는 음모론을 개발(?) 중이다. 뭔가를 믿기 시작하면 확증편향으로 이어져, 연관된 모든 것을 의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게 된다. 물론 본인은 개발이 아니라 진실을 캐는 과정이지만, 브라가도초가 제시하는 무솔리니의 대역 음모론은 말처럼 그리 황당하지만은 않다. 그는 무솔리니 체포 및 처형 당일의 행적을 깨알같이 조사하며 꿰어맞추면서 클론나에게 음모론의 진실(자기가 믿는)을 이야기하지만, 역사는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드러나는 몇몇 군데 구멍들은 상상력으로만 메꿀 수 없다. 결국 그 구멍들을 메꾸기 위해 조사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연관된 인물과 사건이 활보하는 시간 범위는 더 가까와진다. 

두체 무솔리니 파시스트 스토리는 참으로 흥미로왔다. 서너 페이지에 걸쳐 거의 칼럼 기사처럼 브라가도초가 조사한 무솔리니의 행적이 정리되어 있는데, 이를 간략하게 옮겨보면 이렇다. 짧은 지면이지만 등장인물도 많고, 이동 경로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주의깊게 읽었다. 

무솔리니 대역 처형 재구성 시나리오 등장 인물

카벨라 : 마지막 충신, 파시스트 신문 
산드로 페르티니 :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 영웅 
라켈레 : 아내
클라레타 페타치 : 애인
마르첼로 페타치 : 애인의 오라비(스페인 영사로 분장)
*페드로 : 빨지산 부대 대장
*발레리오 대령 : 무솔리니 처형 지휘 대장

무솔리니의 도피 행적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실질적 수도였던 살로에서 시작된다. 전쟁이 막바지였던 1945년 4월 18일 무솔리니는 살로를 버리고 밀라노 도청을 본부로 삼는다. 4월 25일 해방군과 맞닥뜨리자 무솔리니 일행은 밀라노 탈출, 가족, 애인도 코모에 집결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날 가족과 만나지 않는다. 이후 코모 인근 카르다노에서 무솔리니는 애인과 합류하고 도피중, 히틀러가 보낸 호위대가 오스트리아로 대피를 돕기 위해 나타나고 메나조에서 이들과 합류, 스위스 국경 키아벤나로 향하지만 실패하고 무소에서 빨치산과 대면한다. 호위하고 있던 독일군들은 이탈리아인들을 빨치산에게 넘기고 퇴각하지만, 돈고에서 독일군에 대한 전면 수색이 이루어지고 독일군으로 변장한 무솔리니가 여기서 발견된다. 이 때 조약에 의해 무솔리니는 연합군에게 인도될 예정이나, 해방위원회는 처형하기로 결정한다. 처형 이유는 이렇다. 

"해방위원회의 대다수는 이탈리아에 당장 하나의 상징, 파시즘의 20년 세월이 끝났음을 알리는 구체적인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두체 무솔리니의 죽은 몸뚱이가 바로 그 상징이다.(..) 만약 무솔리니가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으면 그의 이미지가 오래 남아 실체는 없으면서도 다루기 곤란한 존재가 되리라 직감한다. 바르바로사(붉은수염)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전설을 생각해보라.(..)동굴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가 때가 되면 깨어나 독일을 위대한 제국으로 만들 거라는 웅대한 전설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는가. 무솔리니가 그런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이탈리아 국민을 과거로 회귀하도록 환상을 불러일으키면 안되는 것이다(162)"

4월 29일에 모든 시체가 밀라노 로레토 광장에 부려진다. 이 광장은 거의 9개월 전에 근처에서 총살당한 빨치산들의 주검이 버려졌던 곳이다. - 빨치산들을 총살한 파시스트 민병대원들은 그 주검들을 온종일 햇볕이 뺑쨍한 곳에 놓아두고 유가족들이 시신을 거두어 가지 못하게 했다(169)

체포되어 공개 처형된 무솔리니가 대역이었다는 근거는 콜론나가 보기에도 독자가 보기에도 허술하기 짝이었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는 점, 당대 사람들이 무솔리니의 얼굴을 잘 몰랐다는 점, 1주일만에 수척했던 무솔리니가 퉁퉁하게 살이 올라있었다는 점 등을 기반으로 한 추측성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 몇가지 모순까지 존재하기에 브라가도초는 만일 그가 살아있었다면 어디에 있었겠는가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거대한 역사의 음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가짜와 진짜가 교묘하게 섞어서 짜맞추면 누군가에게 무언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내일 창간되지 않을 창간 준비호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음모론에 빠진 브라가도초가 진실의 실 조각들을 모아서 짜낸 스토리 어딘가에는 누군가를 두렵게 하는 무서운 진실이 숨어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들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가짜이거나 왜곡이었다는 거야. 우리는 25년동안 계속 그들의 속임수 속에서 살았어. 내가 그랬잖아. 남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그 모든 뉴스는 오래전부터 유포되고 있었어. 다만 집단의 기억에서 뉴스들이 지워졌던 거야. 모자이크의 조각들을 한데 모으려면 기록보관소나 자료실에 가면 돼...마치 새로운 폭로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이전 뉴스를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니까 모든 것을 끌어내 다시 죽 늘어놓기만 하면 돼. 브라가도초가 바로 그 일을 했고, BBC도 그 일을 한 거야. 재료를 혼합해서 저마다 칵테일을 만들었어. 그래서 우리 앞에 두 잔의 완벽한 칵테일이 있어.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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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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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홈지라고 부르는 주인공 소녀가 가진 강박증을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작가의 말에서, 존 그린은 두 사람의 정신과 의사를 언급하며 그들 덕분에 자신의 삶의 질은 엄청나게 나아졌다고 말했다. 지나친 청결에 사로잡힌 강박증도 그 종류가 여럿 있을텐데, TV (엉터리) 교양 리포트에서 떠드는 '화장실보다 세균이 천배 많이 발견된다는 OOO' 시리즈는 OOO의 대상을 주기적으로 바꾸지만, <내 속에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를 읽고 나면,   오히려 그런 세균과 박테리아 등등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더 느긋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미생물들은 내 몸의 일부이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위험하다는 걸, 그리고 나쁜놈과 좋은놈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도 대충은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강박증 아이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세포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대략 50퍼센트가 세균으로 이뤄졌는데, 이는 나를 이루는 세포의 절반은 전혀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라는 특정한 생물 군계에는 지상의 인간보다 천 배 많은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종종 내 안과 표면에서 살고 번식하고 죽는 그들의 존재가 느껴지는 듯했다.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강박증을 일으키는 원인을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세포 속에 살고 있는 그 미생물들이 자신을 차지하고 마음대로 조정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나쁜 미생물에 대한 공포에 매몰되어 있다. 단짝 친구인 데이지의 힘겨운 경제적 사정과 가정사에 거의 아는 게 없다시피할 정도로 자기 자신과 자기자신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만 생각한다. 그럼에도 데이지와 홈지는 둘도 없는 단짝이고, 둘은 10만불의 현상금이 달린 백만장자 데이비스 아버지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화이트 강 건너 저택엔 강둑과 저택이 있고 그곳에 데이비스가 산다. 강건너 저택이 돌담과 강둑과 철조망으로 방비된 덕에 홍수 때마다 강이 홈지네 쪽으로 범람한다.  부가 흘러 넘치는 곳에 재난은 빠져나가지.  데이비스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홈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데이비스를 슬픔 캠프에서 만났었고, 캠프가 끝난 후에도 그들은 몇 번 만났다는 걸 기억하는 데이지가 데이비스를 이용하여 그의 아버지의 행방을 찾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들의 사건은 데이비스와 홈지를 연결시켜주는데, 서서히 데이비스를 알아가면서 사랑을 느낀 홈지는 자신의 강박증 때문에 더이상 나가지 못함을 알고 절망한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때로 이게 무슨 과학 대중서에 나올만한 대사들을 읋어 대는 아이들을 보며 이거 미국 고등학생들은 이렇게나 똑똑하단 말야? 는 감탄이 나오다가도, 그렇게 잘 아는 아이가, 손세정제를 먹어 간을 손상시키는 지경에 이르는 막무가내의 행동까지 할 때에는 그를 그렇게 만드는 힘이 정체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강박증은 병인 거 맞고, 완치되기 힘들지만, 여러 심리 치료로 조금 삶의 질이 나아질 수는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주로 TV에서 하나의 재미있는 캐릭터로 자주 만난다. 예전에 어떤 친척분이 약간 그런 증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직까지 화자되고 있는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는 접시에 새우깡이 조각조각난 조각이 많이 있더란다. 이게 뭐냐 했더니 새우깡을 집어먹을 때, 손에 닿은 부분을 안먹고 떼어놓은 거란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외식을 하고 숟가락을 같이 쓰고 그럴까 하며 깔깔거렸는데, 그 분이 캄필로박터균과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와 엡스타인 비 바이러스 같은 병원균의 이름을 일일히 알았을 리는 없지만, '세균' = '병원균' 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하는 행동과 그것에 대한 주변의 조소 때문에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 지는 짐작할 길이 없다. 책에는 그 강박적 마음이 어떤 식으로 그런 자해적인 행동을 불러오는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이들의 대사도 통통 튀고. 읽을만 하다. 


옛날에 어떤 과학자가 있었어. 과학자는 구름처럼 모인 관중 앞에서 지구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지. 지구가 수십억 년 전에 우주 먼지로 이뤄진 구름 속에서 생겨났고, 한동안 아주 뜨거웠다가 또 한동안 서늘해져서 바다가 생겼다고. 바다에서 단세포 동물들이 출현하고, 또 수십억 년이 지나 생물이 늘어나고 복잡해지다가 25만 년 전쯤부터 인간이 진화하고, 우리는 보다 진화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우주선과 그 모든 것을 만들게 됐다고. 그렇게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역사에 대해 연설하고 끝으로 관객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어. 그러자 뒤에 앉은 할머니가 손을 들고 말했지. 
‘잘 들었습니다, 과학자 선생님. 하지만 사실 지구는 거대한 거북이 등에 세워진 평평한 땅이랍니다.’
과학자는 할머니를 골려 주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물었어.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거대한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지. 
‘더 거대한 거북이가 있죠.’
이제 과학자는 화가 나서 물었어. 
‘그럼 그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나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지. 
‘선생님, 이해를 못하시네요. 그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는 거예요.’

나는 깔깔 웃었다. 
“그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구나.”
“거북이들만 존나 있는 거야, 홈지. 넌 맨 밑에 있는 거북이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왜냐하면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으니까.” 

나는 영적 깨달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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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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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씩 기온이 오르던 여름 휴가때 바닷가에서 읽었다. 읽은지 한참 되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날 거 같았는데, 그래도 꽤 많이 굵직굵직한 사건이 떠오른다. 어떤 책은 읽은 지 몇 달만 지나도 뭐였더라 완전 까먹고 뭔가 힌트를 줘야 대략적으로 생각나는 경우도 많은데, 그래도 띄엄띄엄 기억나는 거 보면, 인상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때로 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한참 두어달 후에야 제대로 내릴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거칠게 요악한다면 각자 따로따로 상처받은 두 사람의 마음이 만나 만드는 사랑이야기다.  인상적인건 두 사람의 캐릭터다. 웃기지도 재미있지도 그닥 매력적이거나 특별할 것도 하나 없는 사람들. 따지고 보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에 있으련만, 대개 소설 속 주인공들은 트라우마에 가까운 깊은 상처를 안고 산다. 경애가 안고 살아가는 상실과 상처는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영화 동아리 아이들과 지하 주점에서 파티를 하다가 화재가 났는데, 인구들 모두 죽고 혼자서 살았다. 게다가 직장에서는 파업 기간 동안 노조 위원장(?)에게서 성희롱을 당하고 이를 폭로했다가 회사는 물론 노조에게서도 미움을 받아 외토리이다. 그래도 경애는 꿋꿋하게 혼자서 잘 살아간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상수와 경애의 공통점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서 소외된 건데, 경애의 억울함과 달리 상수는 올곧은 듯 하며 뭔가 눈치가 없기도 한 듯 한 성격적 결함(으로 주변에서 생각하는)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상수는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성인 상수는 페이스북에서 연애 코치를 하는 유명한 '언니'다.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아,  익명의 페이스북으로 상수는 경애의 과거와 현재 죽은 남자친구와 화재에 대한 사연을 모두 알고 있다. 게다가 상수는 아버지의 배경탓에 낙하산으로 들어왔기에 더욱 더 그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둘다 회사와 동료 입장에에서 자를 수도 없고 두고 보기도 싫은 계륵 같은 존재다. 그러던 차에 둘을 베트남으로 전근을 보내는데. 거기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상수의 성격과 악착같은 경애가 기존에 영업하던 팀과 트러블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은 둘을 현실 세계에서 가까와지게 만드는데, 경애는 여전히 상수가 페이스북의 상담 '언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게 밋밋하게 스토리를 정리하다보니, 좋은 소설을 망쳐놓은 거 같은데, 실제 소설은 두 사람의 마음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주고 받는 대사에서도 잔재미가 있다. 회사, 가정, 썸타는 경애 모두와 잘잘한 트러블을 겪는 상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시련은 그에게 가장 큰 낙이자, 또다른 정체성이었던 페이스북 계정인 '언니'가 해킹당하는 것이다. 


익명성을 믿고 동성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자신의 모든 걸 내보인 사람이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은 어떨까. 용서하고 자시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현실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마음, 경애의 마음을 고스란히 내보였다는 데서 오는 혼란일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 안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배반감에 몸을 떨며 없었던 시간처럼 마음을 거두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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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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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이코패스 킬러 (릴리)가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데,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살인이라는 대형 범죄의 입장에서 볼 때 살인자가 가해자이고 살해된 자가 피해자지만, 저 깊은 속 꿈틀대는 살인 충동을 활성화시켜 살인을 행하게 자초한 것은 애초 살해된 자인 경우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살해된 자가 대단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어린 소녀에게 다가가 음탕한 시선을 보내고, 밤에 혼자 자는 아이에게 와서 숨어 들어와 욕망을 분출하는 인간이 그 다음에는 어떤 행동을 할지는 뻔한 일이다. 살인은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똑똑하고 이성적인 아이는 대학에 가고, 과거를 잊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지만, 양다리 걸치는 남자 친구의 이중적 모습을 발견하게 되니, 이런 사람도 죽여 마땅한 사람에 된다. 자신의 마음에 이토록 큰 상처를 준사람이 일말의 양심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걸 보니, 두고두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부숴놓을 사람이다. 그러니 죽여 마땅하다.  이번에도 아슬아슬 하지만, 완벽 범죄에 성공한다. 이것은 릴리의 과거의 이야기이다.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릴리와 테드의 이야기가 교차해서 펼쳐진다. 백만장자 테드는 와이프 미란다의 매력에 빠져 결혼해서, 저택을 공사중인데, 와이프는 공사를 맡은 건축업자와 바람이 났고, 배반감에 괴로워하던 테드가 릴리와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다. 전력도 화려한 전문 킬러가 먹이감을 만난 것처럼, 릴리는 그를 돕기로 하고, 살해계획을 세운다. 범죄를 하던 뭘 하던 세번째가 고비다. 테드의 경우 백만장자이고, 재산을 노리고 그와 결혼한 미란다가 먼저 선수쳐서 테드를 해치려고 계략을 세워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테드의 죽음으로 미란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미란다와 릴리 두 킬러의 두뇌 싸움이 시작된다. 릴리는 이지적이고 매력적인 뭔가 초월한 듯한 느낌을 풍기는 신비한 분위기의 타고난 사이코패스 킬러이고, 미란다는 오로지 돈을 쫓는 미녀다. 둘다 사람 죽이는 재주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필요한 살해에 이용하는 도구는 멍청한 남자다. 건축 업자는 테드를 죽이면 백만장자의 돈이 다 자기 돈이 되는 줄 알고 미란다가 해외에 나갔을 때 자처해서 그를 죽이지만, 알고 보니 낙동강 오리알 처지에 살인을 혼자 뒤집어 쓰게 생겼는데 이제 릴리까지 나타나 두 여성이 서로를 죽이기를 원한다. 


과거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하는 것 말고는 사건은 순차적으로 일어나고, 독자에게 그 어떤 속임수도 쓰지 않고, 형사들은 뒤늦게, 독자가 다 아는 걸 모르고 범인을 찾겠다고 덤빈다.  대단한 반전이라던가, 숨겨뒀던 비밀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닌데, 잘 읽히고 시원하게 끝난다. 약간의 오픈 결말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뭐 살인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인하며 잘 살았습니다.하고 끝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어디선가 영화화된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그거야 영화가 나와 봐야 알 테지만, 딱 영화로 만들기 좋은 플롯이다. 대본 작업 하면서 구조를 뜯어고칠 거 없이 거의 그대로 영화화해도 충분히 그림이 나올 거 같다. 익숙한 클리쉐가 많아서, 책 읽을 때 느끼는 살인이라는 작업을 쿨 하게 해 내는 매력적인 빨간 머리 소녀와, 으스스한 분위기를 영화에서 충분히 잘 살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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