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하는 여자들
조안나 러스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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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텔라는 늑대여자다. 늑대일 때는 제시, 여자사람일 때는 스텔라로 불린다. 여자는 한달 중 며칠은 늑대로 변신한다. 늑대와 인간의 시간은 7배 차이가 있다. 시간은 삶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늑대이거나 인간이거나 사는 시간에 상관없이 스텔라는 제시의 시간을 산다. 늑대의 시간을 2년간 살았을 때 인간의 나이로 14세가 되었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를 발견한 생물학 교수는 그녀의 변신 사실을 학계에 알리지 않고 그녀를 소유한다. 늑대일 때는 길들이고 소녀일 때는 사랑한다. 남자는 서른 중반이다. 1년에 7살씩 나이가 먹는 소녀는 몇년 내 그녀가 남자보다 나이가 많아지는 날이 올 테고 늙고 병들어 죽는 날도 뒤따르리라는 사실을 걱정한다. 그는 그녀가 영원히 아름다울 거라고 안심시킨다. 

매달 돌아오는 변신이지만 변신 그 자체에는 극심한 고통이 뒤따른다. 뼈가 뒤틀리고 새 자리를 잡기 위해 고통으로 신음하고 소리지르고 몸을 뒤트는  동안 그는 그녀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보살펴준다. 늑대일 때도 소녀일 때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를 매혹시킨다. 변신 과정의 고통마저도 성적인 자극이다. 제시(늑대)가 3살이 되고 스텔라(그녀)가 20살이 되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다다르고 교수들 모임에서 늘 다른 교수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이로 인해 교수 부인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그들 모두는 스텔라와 섹스하고 싶어하고 조나선은 그런 스텔라를 소유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4발짐승 제시의 나이로 4살이 되자  스텔라는 27세가 되고 여전히 아름답다.  5살이 되자 남자와 같은 나이가 된다. 여전히 그윽한 아름다움과 지적인 매력이 솟아나지만 평평한 배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엄청난 시간을 복근 운동에 쏟아야 하고 가느다란 주름을 감추기 위해 세심한 화장을 하고 타이트하고 섹시한 옷 대신 이국풍의 느슨하고 세련된 패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 다른 교수의 부인들은 그다지 그녀를 미워하지 않으며 그녀의 지적 매력이 더욱 돋보인다.  점점 스텔라는 남편의 사랑과 새로운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식 탐구에 보다 몰두한다. 모임에서 그녀가 가진 방대한 지적 세계를 우아하게 드러내고 여전히 매력적이다. 


늑대 나이로 5살 6살이 되자 40세 50세로 급격히 진행되는 노화를 주변에서도 눈치채고 괜찮은지 어디가 아픈지를 묻는다. 늘어진 피부와 주름은 진한 화장으로도 더는 감출 수 없고 노쇠하고 무거운 몸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 이제 여자들은 그녀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지만 그녀 자신이 새로 들어온 젊은 여자 교수를 미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녀를 보던 욕망하는 눈길로 새로 온 젊은 여자 교수를 모두가 바라본다. 그녀도 똑같이 자신의 남편이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불안과 질투를 느낀다.


그녀의 나이는 70세 80세로 급격히 노화된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서서히 변해가던 남편은 이제 그녀의 고통스런 변신을 지켜보거나 돌보지 않으며 제시에게도 학대에 가까운 방치로 그녀를 섭섭하게 한다. 조나선이 돌보지 않아, 늑대는 인간으로 변신한 후에야 무겁고 노쇠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똥들을 스스로 치우며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지쳐간다. 이제 그녀는 남자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다. 출렁거리는 살들을 지방흡입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여보지만 잠자리마저 회피하고 침대에서는 멀찌막한 구석으로 몸울 웅크리고그녀를 점점 멀리한다. 외로움에 지쳐 울다 지쳐 잠드는 날들이 늘어간다.


그러던 중 미술관에서 19세기에 그린 그림에서 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굽은 등으로 차를 따르는 노인의 모습은 숨막히도록 아름답다. 그녀는 화가도 그 여인을 자신이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았음을 안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 아픈 자각은 그녀에게 무엇을 알려주었을까.  조나선을 떠나 자신의 무리들이 있는 곳 자기가 떠나온 곳 (유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왜 미련이 남았나. 무거운 몸으로 반나절동안 멋진 요리를 하고 식탁과 자신을 꾸며 놓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진정한 대화가 될 리가 없다. 대화는 돌이킬 수 없는 더 큰 상처를 남긴다. 그는 함께 쓰던 방마저 떠나 다른 방에서 잔다. 침실에 남겨진 그녀는 후회한다. 똥 얘기를 하지 말 걸 그랬나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꺼낼 걸 그랬나. 홀로 침실에 남겨진 스텔라는 울다 지쳐 잠들고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이른 변신이 찾아와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침실 문을 안에서 닫아 놓은 걸 이미 때가 늦은 변신 단계에서 깨닫는다. 늑대 제시는 문을 스스로 열 수 없음과 방에는 먹을 것이 없음을 그리고 조나선이 그를 꺼내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침실에 갇혀 화장실 변기 물로 갈증을 때우며 울부짖는 제시를 조나선이 꺼내주는 반전(?)이 일아나고 조나선은 제시를 착한 개주인처럼 달랜다.

그는 제시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다정하게 대한다 불쌍한 제시 배고팠지? 하지만 거기까지. 늑대를 꺼낸 조나선은 제시를 목줄에 짧게 매어 기둥에 묶어둔다. 조금 후 웬 젊은 여자가 집으로 찾아오는데 그에게 아내가 떠난 걸 위로하는 소리가 들린다. 조나선은 그 젊은 여자에게 밖에 있는 개는 누이가 맡겨두고 간 개라고 둘러댄다. 조너선은 어쩔 작정으로 왜 스텔라를 떠나지 말도록 말렸을까.  스텔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독특하게도 이 소설은 2인칭이다. 너라는 지칭으로 서술되기에, 마치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스텔라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우리가 여성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전혀 나의 이야기가 아닐 때조처 일부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철저하게 남성의 성적 욕망만을 위해 대상화된 스텔라는 자신이 네 발일 때조차 본능을 억제하고 개처럼 조나선에 의해 길들여진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어떤 작은 별에서 어린 왕자의 사랑을 얻기 위한 장미의 밀당처럼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길들여진다는 건 상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내가 온전히 내가 아닌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본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계속 사랑하도록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 소설에서 스텔라는 늙어가는 자신의 육체적 매력의 감소를 왕성한 지식욕으로 무장하여 새로운 매력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애초 조나선이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헛된 소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늙고 못생겨지면 자신을 떠날거냐고 물었을 때 조나선은 뭐라고 대답했나. 늘고 못생겨져도 당신을 여전히 사랑할거가 아니라 안돼 당신은 늘 아름다울 거야라고 대답하지 않았나. 이 대답은 중의적이다. 당신이 늙어도 여전히 아름다울 거라는 뜻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당신의 아름다움이므로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을 떠날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늙어도 그 초상화 속의 그림처럼 내적 아름다움을 그가 알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었다. 

발화 당시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도 모를 것이다. 다만 그가 사랑한 건 그녀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노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오는데 만일 남성과 여성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늑대와 인간의 수명 및 성장 차를 이용하여 늑대인간을 페미니즘적으로 접근한 이 작품이 스토리 구조만 본다면 그냥 뻔한 나쁜 남자에게 당하는 바보같은 여자의 뒤늦은 자각이라는 프레임 속에 있다. 시대는 변했고 이런 식의 프레임이 식상한 건 사실이지만 너라는 인칭의 영리하고 단아한 문체는 이야기가 의도한 메시지를 떠나 문학적으로 반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이 있다. 

페미니즘, SF, 동식대 여성 작가, 등을 키워드로 하는 이 단편집에는 흔히 접항 수 없는 다양한 동시대 여성 작가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좋은 기획,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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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귄의 초기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은 굉장히 오래된 책이지만 시공사에서 재출간되면서, 표지가 사람 마음을 홀랑 앗아간다. 2004버전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게다가 영문판 표지도 오래돼서 별로 읽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이 책 실물로 보면 더욱 예쁘다. 단편집으로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10여년 동안 출간된 단편을 작가 스스로 선택한 선집이다. 각 단편마다 해당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첨부되어 있어 무엇보다도 특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젊었을 때 쓴 초창기 단편집이라 작은 이야기 속에 담긴 거대한 메시지와 대담한 이야기 구성이 매력적이다. 


사실 르귄의 작품이 그렇게 술술 잘 읽히는 편이 아니다. 이 소설들에 비하면 몇달 전 나온 에세이 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심심하리만큼 평이한 문장에 속한다. 첫 작품 <샘레이의 목걸이>를 읽었을 때 가슴에 뭔가 쿵 하는 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헤인 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이 탄생할 거였다는 걸 이 소설을 쓸 때 작가가 알았을까 궁금하다. 그래서, 이 단편이 남긴 아쉽고 마음아픈 여운이 다소 풀리기를 기대하며 헤인 시리즈 첫 편인 <로캐넌의 세계>를 읽었는데, 결론은 더욱 아쉬웠다. 얘기를 만들자면, 샘레이가 목걸이를 찾아 돌아온 그 충격적인 순간부터 얼마든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을 텐데, <로캐넌의 세계>에서 샘레이는 이미 그 목걸이를 자신의 시누이인지, 딸인지에게 맡긴 채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마음을 온통 흐트러놓고, 자꾸 그 작은 단편 속의 이야기 속으로 향하고 집착하게 만드는 <겨울의 왕>을 읽고는 책을 잠시 덮고 여운을 즐기기로 했다. 르 귄의 작품을 읽으면 판타지 SF라는 쟝르에 가두기엔 너무 아쉬운 다채로운 색깔의 문학적 세계를 발견한다. 단편들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다채롭고 역동적인 서사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산문을 통해 전달되고, 섬세한 배경 묘사는 독자를 책과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지만, 매번 출판사에서 거절당했고, 그 중 첫번째로 원고료를 지급받은 소설이라는 설명도 있고, 소설의 결말에 등장한 인물이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의 주요 인물이 되기도 했다는 각 단편의 앞에 들어있는 여러 설명은 더없이 소중하다. 특히 <겨울의 왕>에 대한 르 귄의 설명이 특별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남자와 여자를 he와 she로 구분해야 하는 영어권 문학의 애로 사항을 실감하게 된다. 르귄님 왈, <겨울의 왕>의 초기 집필 당시 양성인의 대명사를 남성으로 취급하여 he로 썼는데, 개정판을 내면서 she로 바꾸었다고. 그러고 보면 르귄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 시리즈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는데, 모든 인물들이 she 로 지칭된다. 시리즈의 후반에서 더욱 중요한 사실이 드러나겠지만, 르귄이 집필 당시 남녀구분이라는 단단하게 굳어진 세상의 틀을 깨고 구분을 모호하게 한 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의 사람이 봤을 때 겨우 아이로 느껴지는 데뷰 초창기 나이의 르귄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그렇고, 당시 SF 문단의 생태계도 그렇고, 당연히 남성위주의 세계관에 익숙해져있었을 것이다. 또한 서구인의 언어에서 남과 여를 극도로 구분하는 문화 자체가 그와 그녀를 동시에 나타내는 자연스러운 인칭대명사를 찾을 수 없는 언어 문화적 빈곤함(?)이 양성인을 지칭할 때 He를 사용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이 양성인 주인공이 왕이라는 사실인데, 왕이라는 최고 권력자의


명칭 역시 나뉘어져 있고, 최고 권력자는 남성적 명칭이 더 어울렸을 테니 왕에는 그녀보다는 그가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양성인의 체계가 뭔가 복잡해서 왕은 아이를 낳고, 왕의 행동 역시 어떤 섬세함을 연상시킨다. 어쨌든 명칭의 문제는 페미니즘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이 소설의 초기 버전을 읽으면서 He와 매치되는 번역인 그 혹은 그남자로 아르가벤을 접했다면 이 소설에 대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다. 


말했다시피 소설에 등장하는 행성에 사는 게센인들은 양성인이고, 이들은 <어둠의 왼손>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이 작품은 눈쌓인 왕국의 동화같은 풍경과,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광속 여행에서 발생하는 시간차, 통치와 반역, 출생의 비밀 같은 서로 잘 매치되지 않을 것 같은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납치되어 세뇌된 젊은 왕 아르가벤은 자신이 왕국을 멸망케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음을 알고, 아직 아이인 자기 자식 암렌에게 선양하고 대신에게 섭정을 맡긴 후, 자신은 올룰이라고 불리는 24광년 떨어진 행성으로 간다. 가는동안 우주선 안에서는 겨우 몇 시간의 시간만 흐를 뿐이지만, 각각의 행성에서는 24년이 흐른다. 아르가벤은 올룰에 12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아이가 왕국을 슬기롭게 잘 통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다시 겨울 행성으로 돌아갔을 때 자식은 늙고 폭군이 되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지만 자신은 여전히 패기넘치고 젊은, 왕국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아르가벤을 알아보고 다시 반역을 꾀하여 아르가벤을 옹립하고자 한다. 늙은 왕이자 자신의 딸(아들)의 목을 베는 젊은 왕. 얼마나 아름답고 비극적인가. 


이렇게 쓰니 스토리 구조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풍성한 은유와 아름다운 시적 판타지 사이를 넘실거린다. 소설의 구조는 몇몇 개의 스냅 사진을 설명하는 식으로 띄엄띄엄 시간을 점프하고, 그 빈 시간의 공백들은 더욱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젊은 엄마(아빠)와 늙은 딸(아들)이라는 반전된 구조. 아르가벤->암렌->아르가벤->암렌으로 순환되는 통치자의 이름이 암시하는 영원한 부모-자식 간의 반역과 선양 구조는 더욱 깊은 사색과 추리 속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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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작품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몇달 전에 접하고 설레며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본토에서도 5월 7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작품집인데, 테드 창의 국내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속도의 빠른 번역이다. 번역은 이전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번역한 김상훈이며, 출판사 역시 엘리로 동일하다. 작품집이 최근 십여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엮은 것이어서 , 빠르게 번역출간될 수 있지 않았나 시파.  미발표작은 두 개에 불과하고, 그 중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같은 역자가 북스피어의 에스프레소 노벨라스 시리즈로 이미 출간되어 있다. 어쨌든, 미국의 테드 창 팬들은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엔솔로지나 발표지를 통해 거의 다 읽었을 테고, 새 작품 두 개를 읽기 위해, 그리고 테드 창의 작품만 모아져 있는 책을 갖기 위해 이 책을 사게 될 터인데, 미국 사이트에서는 목차(작품 목록)을 보기가 어려웠고, 알라딘 홈에도 목차가 빠져있고, 미리보기도 없다. 다행이도 국내 다른 서점에서 작품 목록(목차)가 올라와 있어서 긁어온다. 옮긴이의 말이 511쪽에서 시작되니, 꽤 두꺼운 책인데, 가격은 14000원 대로 합리적이지만, 이미 출간되어 있어서 이 책을 구입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대개 소유하고 있을 가장 긴 150쪽짜리 소프트웨어 객체 주기를 빼면 대략 350쪽 정도니,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십여년 간 주기에 한 번씩 출간되는 테드 창의 작품집을 안살 이유가 없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9
2. 숨 / 59
3. 우리가 해야 할 일 / 89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97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 249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 267
7. 거대한 침묵 / 333
8. 옴팔로스 / 345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395

창작 노트 / 493
감사의 말 / 509
옮긴이의 말 / 51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은 시간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그다드의 고대 도시에서 한 직물상인이 사업파트너에게 줄 선물을 찾다가 우연히 시장에서 새로운 가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매우 흥미로운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파는 가게 주인은 그를 워크샵으로 데려가 연금술을 사용하여 만든 검은 돌 아치를 보여주는데, 그것은 미래로로 통하는 게이트이다. 상인이 흥미를 보이고, 가게 주인은 그에게 미래의 자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상인은 카이로에  과거로 통하는 또다른 게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20년 전에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위키 영문판 참조함).  2007년에  subterranean에서 출간되었고, 같은 해에 Fantasy & Science 9월판에 실렸다. 구글링하면 전체 텍스트가 PDF로 링크되어 있는 사이트가 맨 앞에 뜨는데, 중국의 한 유명 대학 사이트여서, 합법판적지는 잘 모르겠다. 


표제작인 숨(Exhalation)은 2008년 앤솔로지인 Eclipse 2에 실렸고,  단편 부분 로커스와 휴고상을 수상했다.  이 단편은 저자의 허락 하에, 전체 텍스트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고, nightshadebooks.com 에서 찾으면 된다. 위키 영문판에도 링크가 있다. 짧은데도, 위키에 나온 플롯은 뭔가 길고 복잡해서 뭔소린지 모르겠고, 아마존 리뷰어의 말을 빌리면, 로봇들만 사는 한 대체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들은 자기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를 못하는데, 한 로봇이 해부학을 탐구하며 자신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존 리뷰어 Bradley Bervers 리뷰 참조)


우리가 해야할 일(What's Expected of us)는 흥미롭게도 네이처 지에 실린 짧은 단편인데, (네이처에 단편소설도 실린다는 건 처음 알았음), 이 스토리를 Year's Best SF(2006)에 실은 편집인인 David Hartwell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인간의 성격과 행동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또다른 소설적 탐험'이라고 한다. 10여 페이지 되는데 한 다섯장 정도 넘기면 다 읽을 것 같고, 워낙 짧아서인지 이 이상의 스토리 소개는 찾을 수 없지만, 기계로 자유의지를 탐구하는 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듯하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유일하게 내가 읽은 소설로, 삶의 구석구석 침투한 소프트웨어의 주기적 변화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과 이야기가 주는 감성적 울림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작년인가 몇달 전쯤인가 시간 개념이 좀 없어졌는데, 아무튼 이 중편을 읽고 써서, 알라딘에게서 2만원을 받아 리뷰 쓰는 자신감까지 준 작품이다. 2010년 로커스, 휴고상 수상. 지난번 리뷰에 상세한 내용을 적어놓았으므로 플롯 소개는 생략.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Dacey's Patent Automatic Nanny)는 2011년 The Thackery T. Lambshead - Cabinet of Curiosities 이라는 잡지에 실렸던 짧은 소설로, 찾아보니 이 앤솔러지 자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테드창의 이 소설은 Holy Devices and Infernal Duds: The Broadmore Exhibits 라는 파트에 묶여 있다. 개인적으로 이 앤솔로지에 흥미가 생긴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The Truth of Fact, the Truth of Feeling)은 2013년 subterranean에 발표된 작품으로 2014년 휴고상 중단편 후보에 올랐고, 넷플렉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의 한 에피소드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다.  블랙 미러 하면 주로 기억 장치가 많은 에피소드에서 주요 테마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이야기 도중 누구 말이 맞은가를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화면에 재생하여 같이 돌려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재생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시각 영상이 펼쳐지고, 대화와 소음까지 모두 그대로 재생된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눈치챈 남편이 아내의 기억을 불러내 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의 섬뜩한 느낌이 아직 생생하다. 아무튼 그것 말고도 기억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이 소설 역시 같은 모티브를 사용하는 것 같다. 블랙미러 보다는 이 소설이 훨씬 먼저 나왔지만, 기억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테드 창의 시점에서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거대한 침묵(The Great Silence)는 2015년 e-flux라는 인터넷 저널에 발표된 작품으로 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2016에 실렸고, 나머지 두 작품은 유일하게 미공개 작품이다. 따지고 보니, 거의 1년에 겨우 단편 하나씩 발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직업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작품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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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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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명단에서 빼기>는 여성독자들이 사랑했지만 남성들 또한 좋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레싱이 직접 밝힌 소설인데, 나 역사 이마를 딱 치며 아 이거다 싶게 유쾌했다. 이 소설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고 볼 수 있다. 남자 또한 좋아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운 건 이 남자가 홍상수 영화에나 나옴직한 전형적인 찌질남이고, 유명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 정복력과 성취감을 금메달처럼 전시하는 남성의 심리를 통쾌하게 조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법적 규제나 안전 장치가 부족했던 시대에, 남녀의 섹스라는 행위가 남성에게는 정복, 여성에게는 굴복이라는 프레임 속에 위치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일 이 소설을 100년 쯤 후에 읽는다면 이게 무슨 뜻인지, 무슨 맥락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는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상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물리적으로 보나 행위적으로 보나 두 사람이 서로 같이 몸을 만지고 뒹굴고 그러다보니 생기는 자연스레 욕정을 해소하는 행위를 남성은 갖는 것으로, 여성은 주는 것으로 느끼고 표현하던 이상한 관습적 사고를 예측 불가능한 방법으로 파괴한다. 쉽게 섹스하는 여성을 헤프다며 질타하던 시기에 쓰여졌다는 걸 감안할 때 다욱 파격적이다.


요즘도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들의 지나친 노출로 몰고가는 몰상식한 여론을 접할 때가 가끔 있다.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입는게 성범죄를 조장한다는 논리는 여성에게 부르카를 씌워 아예 여성의 실존 마저 지우고자 하는 이슬람 세계의 논리와 오십보백보다.  <옥상 위에 여자>는 어떤 문화적 변화 속에서도 집요하고도 끈덕지게 여성에게 집중되게 덧씌워지고 강요되는 성윤리에 대한 웃지 못할 풍자극으로 읽힌다. 무더운 날씨에 옥상에서 작업하는 세 노동자들은 반대편 건물에서 반나로 일광욕 중인 여성에게 각기 다른 마음을 품는데, 한 명(스탠리)은 휘파람을 불고 조롱하고, 한 명은 그런 그녀를 동료로부터 지켜줘야겠다는 망상과 그녀와 다정한 관계가 되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결국 남자들이 도달한 감정은 그녀를 향한 분노다. 조롱과 욕설 혐오 등 그녀를 향한 온갖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음에 더더욱 혐오와 분노를 표출하는 이 가엾은 남성들은 길거리의 모든 여성들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잘보이려고, 섹스하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일베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자기를 지켜보는 새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발가벗은)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났다 68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에 대해 도리스 레싱은,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어떻게 비쳤는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작가가 좋아한 이유를 독자인 내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서사에만 관심을 두고 읽다보니 여성의 심리에 대한 문제 의식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서사는 고골의 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이 몸 속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손에 달라붙어 다니는 모습은 코가 달린 부분이 평평하게 변한 우스꽝스런 모습에 비해 다소 괴기스럽다. 레싱의 작품으로는 처음 접했던 <다섯번째 아이>부터 일관되게 레싱의 작품 속에는 이런 그로테스크함이 있다. 순수하게 심리적인 소설 속에서도 이해 불가능해 보이는 괴기한 심리와 미친듯한 행동이 드러난다. 하지만 코보다는 심장이 의미하는 게 보다 명확해 보인다. 


일생을 통해 두 번의 ‘진지한’ 사랑 A, B를 했지만 두 번 다 뼈아픈 실패로 끝났고, 그 진지한 사랑 A와 B 사이에 셀수없는 십 수번의 진지하지 않은 교제가 있었지만 부푼 기대를 품고 다시 진지한 사랑의 후보 C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여자는 그 두 번의 진지한 사랑이 끝났을 때마다 돌덩이처럼 무거워진 심장을 기억하며, 다시 핑크빛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손으로 꺼내 버렸으면 하고 소망한다. 그런데 그런 말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C의 만남을 앞두고 전화 통화를 하다가 자신의 심장이 자신의 손에 걸려져 있는 거다.  원하던 일이었지만 그 선홍색 심장은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신체의 일부처럼 붙어 있다.  이렇게 떨어지지 않고 있던 심장을 알미늄에 감싸고 외출을 하는데, 지하철에서 허름한 차림을 한 미친듯한 여자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미친여자는 자신의 드라마에 빠져서 비난, 사랑의 배신, 혹은 부정 같은 개인적 비극을 연기하는 사람처럼 영혼없이 계속 혼자서 떠들고 있다. 모두에게 당혹감과 수치를 느끼게 하던 미친 여자를 보던 주인공은 손가락에서 자신의 그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심장을 그녀 앞에 갖다 놓고, 문제의 미친 여성은 그것을 품에 안고 좋아한다.


지하철의 미친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소설집에는 글자 그대로 읽는다면 미치거나 조금 정상이 아니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에서 도로시 브래드퍼드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이는데, 남편의 외도 그 자체보다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자신의 상관않는 심리에 대해 더 의아해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로시는 자신의 부부를 방문한 스텔라에게 자고 가라 권하면서 자기 남편과 관계를 맺을 것을 은근히 암시하여 실제로 그렇게 될 뻔하게 만든다.


<영국 대 영국>에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인 찰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다니던 중 자신을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하고 있는 광산촌의 집을 방문하고, 정신 분열적인 증상을 경험하고, <두 도공>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서, 꿈을 통해 타인의 현실을 제어하며, <목격자>에서 부룩은 외로운 알콜중독자이고, <20년>은 20년 전 어긋난 사랑 때문에 헤어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착각하고 있으며, <19호실을 가다> 역시 우울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중 <20년>은 서로 만나기로 한 곳에서 서로가 기다리다가 어긋난 지나간 사랑을 20년만에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상황을 묘사한다. 안타까운 영화같은 설정이지만, 독자도 화자도 두 사람의 기억 중 어느 기억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서로는 약속된 같은 장소, 같은 시간 서로를 애타게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결국 서로에게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평행우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한 사람이 날짜를 헷갈렸을 수도 있고, 같은 장소가 두군데 있었을 수도 있고, 수많은 가능성이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반드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헤어졌어야만 했을까. 오늘날처럼 휴대폰과 인터넷 이런 게 불가능하니 서로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안타까운 뜻하지 않은 어긋남과 이별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휴대폰 시대에서 우연과 착각에 의한 비극적 요소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같다.


<남자와 남자 사이>는 <최종면단에서 빼기>만큼 유머러스하게 읽힌다. 새삼 시대적으로 여성에게 경제적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따져볼 기회이기도 했다. 남자의 정부로서 이남자 저남자 등에 빨대를 꽂아 몸을 가꾸고 먹고 사는 꽃뱀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말 나온 김에 여담 하나, 친구가 목욕탕에 갔다가 거기 출퇴근하는 유한마담들과 안면을 텄는데, 그 중 꽃뱀으로 알려진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뭐 예를 들어 배찌(?)를 한다든지 하며 티를 낸다고 한다. 그 여성과 나름 진솔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기억나는 건 일단 한 남자랑 친해지면 초기에 가방이며 보석이며 마구 선물하고,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선물이 왜소해진단다. 그러면 그게 이별의 징조이므로 꽃뱀은 새로운 물주를 물기 위해 동분서주 해야한다고. 길게 가봐야 몇년 안가므로 끊임없이 정부를 탐색해야 하고, 그래서 몸치장에도 돈이 많이 든다고. 정확하지도 않고 뭐 막 섞이기도 했지만 대략 그런 내용이었는데, 나는 그 목욕탕 뱃찌녀가 자신의 삶의 패턴을 서비스 노동의 가치로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 소설속 여성들이 크게 다름없다.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요령이 대가의 손에 의해 과장적으로 설정되었음을 주목한다. 잭을 사이에 두고 두 명의 꽃뱀 이 붙었는데 그 중 한사람은 정식 부인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정부가 되었다. 정식부인이 되면 계약 상태가 되어, 이혼후에도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남편과의 정사는 주로 정부와 이루어진 듯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결혼했던 여성이 이혼했던걸 바로 알아차리는데, 그 이유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혼을 했으니 다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가꾸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둘은 술을 마시고 대화(인지 술주정인지)를 하면서 둘이서 남자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다. 만일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사회라면, 정부이든 정식부인이든 꽃뱀이든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이 궁극적으로는 남자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라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여전히 구석구석 층층히 존재하는 성차별이 특히 성적으로 여성을 취약하게 하는 이유다.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는 외로움과 자유 그 둘은 붙어다녀야 하는 건지, 성공한 가정이라는 따뜻하고 푸근한 울타리의 허위와 그것을 위해 포기된 자유와 속박,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제는 전체 작품에서 계속 반복된다. 가정이 없이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외로움 때문에 그토록 심장을 찔렸으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서는 여성(<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처럼, 우리 모두는 한편으로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누군가와 꾸준히 사랑을 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깨질까 다칠까 조심조심 보살피고 가꾸어온 완벽한 가정 속에서 허위와 불안을 느끼고(<19호실로 가다>, <한남자와 두 여자>), 애정과 결혼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정사를 갈망한다 (<최종명단에서 빼기>, <남자와 남자 사이>). 하지만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은 그녀의 정신 분열적 최종 선택과 관계없이 누구나 느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녹여내었다.


전에 읽은 중장편들(다섯번째 아이, 그랜드마더스)에 비해 압축적이라, 맥락 파악이 잘 안되는 부분이 다소 있어서 읽는 데 시간도 걸렸고 다시 읽어야 한 것도 많았지만, 다 읽고 나서 보니 대가의 작품다운 품위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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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의 모험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상 세계들로의 여행
로라 밀러 엮음, 박중서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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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100'이라는 광고 카피가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목차를 보면 이 카피가 실은 이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문자 그대로의 사실임에 동감하게 된다. 100개의 이야기는 커다란 컬러 도판에 실린 관련 명화와 함께 다섯 개의 챕터로 시대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가 환상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가 속해있는 익숙하고 따분한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현실에서는 물리학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들이다.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독자를 아득한 꿈과 환상 속으로 안내한다. 그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일들은 다시 현실을 비춘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를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인간의 삶만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고대의 신화와 전설 편에서는 고대부터 1700년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약 20개의 책 중 실제 첨부터 끝까지 단기간 내에 끈기있게 완독을 한 책은 오디세이아와 산문 에다, 돈키호테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읽은 책이 나왔을 때는 반가왔고, 안읽은 책들의 개요를 알 수 있어서 더없이 빠져들었다. 사실 이런 신화들은 오며가며 제목들은 대개 들어서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게 언제 어느 공간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신화와 전설들을 인류라는 전체적 시각에서 그 맥락을 이해하며 바라볼 수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 오디세이아(호메로스), 변신 이야기(오비디우스), 베오울프, 천일야화, 마비노기온, 산문 에다(스노리 스툴루손), 신곡(단테), 알리기에리(아서 왕의 죽음), 토머스 맬러리(광란의 오를란도),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선녀 여왕(에드먼드 스펜서), 서유기(오승은), 태양의 도시(토마소 캄파넬라), 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폭풍우(윌리엄 셰익스피어), 달나라 여행(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광휘세계’라는 신세계에 관한 보고,(마거릿 캐번디시) 여기까지가 편집부가 뽑은 17세기라는 긴 기간동안 쓰여지고 전승된 위대한 전설과 신화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한권 한권 모두 방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데 이를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실제 이야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어린이용 축약본이 과연 필요할까, 축약본은 흥미 위주로 쓰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 읽은 축약본을 읽고 그 책을 읽었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성인이 된 후에도 실제 스토리를 읽지 않게 되고, 그 때문에 원전의 깊이를 세상에서 감추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현상이 우려되기도 한다. <돈키호테>와 <걸리버여행기>가 대표적이다. 


이후 챕터는 과학과 낭만주의(1701~1900), 환상소설의 황금기(1901~1945), 새로운 세계질서(1946~1980), 컴퓨터시대(1981~현재)로 나뉘고 각 시대에 해당되는 신화, 전설, 서사시, SF, 판타지 모험서들이 빼곡하게 책장을 메운다.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고 팀이 작업을 하여서 각 작품에 대한 해설과 총평은 딱히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지면이지만 비교적 상세히 이야기 자체를 요약 전달하는 것도 있고, 비평에 가까운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최근 읽은 소설이 나타날 때면 그 작품을 읽을 때 그걸 골랐던 나의 안목에 자랑스러움이 생기면서 막 흐뭇해지는데, 그 중에서는 순전히 우연히 그러니까 작품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아무거나 집어 들었는데 얻어걸렸던 작품도 많다. 지극히 일부 중에서도 아주 조각만 읽었지만 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신비한 이야기란 건 알았지만 해당 단편은 듣도 보도 못했던 보르헤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어쩌다 손에 들어온 토베 얀손의 <무민 가족과 대홍수>(무민 버전이 하도 많아 이건 이게 그건지 그게 그건지 확실치 않음)이 그런 것들이다. 


까마득 오래 전에 읽어서 다시 봐야 할 소설들 마이클 쉐이본의 <유대인 경찰연합>가 있고, 어릴 때 읽어서 아마도 축약본이었을 테고 기억도 나지 않는,  <보물섬>, <나니아연대기>, <오즈의 마법사>, <해저2만리> 등등, 최근 5년 내에 다시 읽었던 것 같기도 한 <어린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반쯤 읽고 여전히 읽고 있는 중이라고 우기고 있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게르 멘 브란텐베르크의 <이갈리아의 딸들>, 해리포터 시리즈(원서로 사서 그런거니 스스로에게 이해를 구함), 관심 있어서 사두고 아직 펼쳐도 보지 못한 책들이 널렸고, 무엇보다도 최근에 읽었고 예스블로그에서 리뷰까지 찾아볼 수 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스노리 스툴루손의 <산문 에다>, 미겔 데 세르반데스의 <돈키호테>,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여행기>,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커트보니것<제5도살장>,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하루키 <1Q84>,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올 수밖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필자들이 설명하고 논평하고 이야기해주는 것들 사이의 갭들을 글자로 채워가는 즐거움이 아직 잘 모르는 이야기들의 겉을 핥는 것보다 더 크다. 


읽으려고 사둔 책도 몇권 있었고 보도 듣도 못한 생전 처음 제목과 저자를 들어보는 책들도 많았다. 특히 맨 마지막에 소개되는 동시대 작품들의 경우 제목은 익숙한데 읽을 생각도 못한 책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미국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아서다. 장르 문학으로의 입지가 굳건한 유명 작가의 작품 중 딱히 1개만 꼽기도 어려웠을 거 같다. 모든 작품이 골고루 다 주옥같은, 내가 좋아하는, 르귄 여사의 작품은 <어스시의 마법사>를 꼽았다. 얼마전 <로캐넌의 세계>와 <어둠의 왼손> 등 헤안시리즈의 몇 편을 읽고 어스시 보다는 헤안 시리즈에 더 관심이 갔기에 , 어스시를 1편만 먼저 읽었는데, 해리포터 시리즈보다 훨씬 앞서 출간된 책이지만, 해리포터에서 등장하는 주요 핵심 요소를 어스시에서 많이 차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마법사 학교라든가, 마법사의 돌, 그리고 볼더모트를 지칭하는 "you know who"가 사물의 이름에 진정한 힘이 들어있다는 사상적 기반등을 찾아볼 수 있고, 조지 마틴 RR의 하늘을 나는 용은 로캐넌의 세계에서 주요 통신수단이고, 'The winter is comming'이라는 유명한 말 역시, 다가오는 재앙, 혹은 긴 겨울에 대한 암시와 긴 공전 주기를 갖는 특별한 행성이 배경인 로캐넌의 세계와 어둠의 왼손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물론 르귄 여사 역시 소설의 여러 요소를 신화와 전설에서 많이 차용하였으므로 단적으로 오리지낼러티를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한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가 다른 소설의 매우 주요한 모티브로 동작한다는 것은 그 오리지널 소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마치 반 고흐의 그림이 우리가 만나는 일상적 사물의 곳곳에 색상과 그림의 요소들이 침투해있는 것처럼 르귄의 책들에서는 현재 상업적으로 드라마와 영화 등의 매체에서 유래없는 성공을 거둔 작품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영감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늘도 기승전르귄예찬으로 빠졌다.  보고 싶은 책도 많고, 그 이유도 끝이 없는데,  그래서 이 책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삼박 사일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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