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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을 기다리는 사람 - 흰 건반 검은 시 ㅣ 활자에 잠긴 시
박시하 지음, 김현정 그림 / 알마 / 2016년 12월
평점 :
오랜만에 시를 만났다. 이 책은 시로 쓴 산문이지만, 시처럼 음악처럼 느껴졌다. 시인 박시하. 그리고 그가 사랑한 천재 음악가 쇼팽. '활자에 잠긴 시'는 알마출판사에서 나온 산문시리즈다. 시리즈 중 첫 선을 보인 책이 바로 이 <쇼팽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기대된다. 올리버색스는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그가 시리즈로 나오면 보고 싶다.
시인 박시하가 언어로 쇼팽을, 그의 사랑과 삶과 음악을 노래했다. 책을 읽으면서 유투브에서 쇼팽의 음악을 찾아들으면서 읽었다. 이 책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 시인이 이야기하는 쇼팽의 곡들을 따라들으면서 같은 감성으로 음악을 듣고 글을 읽었다. 쇼팽은 화려하다. 화려함 뒤에 슬픔이 감춰져 있다. 아니 슬픔을 감추지 않고 기쁨으로 승화시켜 노래한다. 고통을 행복으로 이야기한다. 쇼팽은 많이 아팠고 많이 슬퍼했지만 많이 사랑했다. 그의 음악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음악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여인에 대한 사랑. 자신의 운명에 대한 사랑. 실패한 사랑노래들. 슬프지만 희망이 담긴 노래들.
정말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그리고 쇼팽을 들었다. 나는 책과 독서를 좋아하지만 시는 잘 읽지 않는다. 내게 시는 어렵고 낯설다. 시를 노래하는 시인의 감성에 젖어들기가 힘들다. 책에서 나는 감성과 운율보다는 정보와 지식을 탐색한다. 때문에 시는 읽기힘들다. 시는 속독이 불가능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한다. 마치 노래하듯이 읽어야 한다. 감정을 담아서 읽어야 한다. 내게 아직 이런 독서는 익숙치 않고 어렵다. 나는 빠르게 좀 더 빠르게. 술술 책장을 넘기고 싶어한다. 브레이크를 걸고 책을 읽기 힘들다.
하지만 오랜만에 시를 즐겼다. 조급함을 버리고 음악을 들으며 시를 감상했다. 언어의 떨림에 같이 떨었다. 역시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 박시하씨가 내뿜는 언어의 조합들은 신선하고 아름다웠다. 간결하고 다채로웠다. 조용하고 깨끗했다. 이렇게 좋은 시인이 있는지 몰랐다. 쇼팽의 음악을 몰랐던 것처럼.
앞으로 시와 음악도 좀 더 즐기고 싶다. 빠르게만 읽는 것만이 독서는 아니리라. KTX,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리라. 때론 천천히 자연의 풍광을 즐기면서 걷고 싶다. 햇빛과 달빛을 감상하고 싶다. 가끔은 그런 독서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