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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_주의 ㅣ 알마 해시태그 1
박권일 외 지음 / 알마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한국에 혐오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혐오하는 헬조선부터 정치혐오, 여성혐오 등 무수히 많은 혐오가 등장했습니다. 혐오의 감정은 언어로 나타납니다. '김여사', '씹선비', '금수저', '흙수저', '맘충', '전라디언' 등의 언어로 나타납니다. 저는 이 혐오라는 증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혼자 이 증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자문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책이었습니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기뻤습니다.
책은 다행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책은 헬조선 담론, 정치혐오, 여성혐오,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 처벌의 관점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특히 헬조선 담론으로 서두를 꺼낸 박권일씨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도 혐오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는 관점을 취합니다.
헬조선론은 '자국혐오' 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저또한 세월호 사건 이후로 한국을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혐오는 분노와 다릅니다. 분노는 주체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 대상으로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혐오는 혐오 대상으로부터 가능한한 멀리 떨어지게 만듭니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시킵니다. 헬조선론은 겉보기에 사회 모순에 대한 반발로 보입니다. 박권일씨는 왜 분노가 아닌 혐오로 나타나는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대상을 향한 감정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자국을 '미개한', '문명화가 덜 된' 국가로 바라봅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는 미개한 국가로부터 떨어져나오고 싶어합니다. 주체와 대상의 분리, 자신은 순수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오염된 자국으로부터 분리되고 싶어합니다. 저또한 그렇습니다. 한국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터무니없을 정도로 미개하다고 느낍니다. 특히나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욱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세월호 사건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있으면 분노를 넘어서 혐오하게 됩니다. 그 댓글들을 더 이상은 보고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단지 혐오에만 머물러선 안된다고 말합니다. 혐오는 단지 '체제를 유지하는 파국론'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분노가 더욱 적당한 감정입니다. 분노는 대상에게 다가가게 만드는 감정이니까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자살률 1위, 출산율은 뒤에서 1위, 이 밖에도 사회불평등지수, 남녀불평등지수는 최상위권을 차지합니다. 국민들의 행복지수 또한 하위권입니다. 세대간, 지역간 대립도 점차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를 어떻게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혐오를 떨쳐버리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삶의 터전이고 우리의 뒷 세대들이 살아갈 곳이니까요. 혐오는 문제를 회피하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이 외에도 여성혐오에 대한 글들이 좋았습니다.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쓰인 글들을 보면 제 자신이 아직도 얼마나 남성적인 사고관에 물들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사고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이런 책과 글들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매체에서 소비되는 여성성에 대한 비판 글들도 유익했습니다.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줬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글들은 항상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페미니즘 책들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정치혐오와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인 처벌에 대한 내용도 좋았습니다. 특히 혐오표현에 대한 법적인 내용은 평소 궁금했던 차라 유익했습니다.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표현의 자유와 혐오표현에 대한 규제와의 관계도 알게 되었습니다. 명예훼손죄는 사실과 관련되고 모욕죄는 의견과 관련됩니다. 예를들면 "너는 못생겼어!" 는 의견에 해당하니 모욕죄입니다. 하지만 "너는 어제 길가에 똥을 눴어!" 라고 말하면 명예훼손죄입니다. 진실이든 허위이든 사실에 대한 것은 명예훼손죄와 관련됩니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줘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됩니다.
188p의 짧은 책이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사회학 책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를 혐오라는 틀로 분석해보는 책입니다.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