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관리 - 인생을 바꾸는 하루관리의 기적
이지성.황희철 지음 / 차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이지성 작가의 <하루관리>란 책은 시간관리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자기계발서이다. 북플에서 이지성 작가에 대한 디스글을 자주 본다. 굳이 쓸데없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우선 자기계발서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단순하다. 자기계발을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보기엔 사람들은 이것을 혼동한다.

자기계발서에서 인문학을, 철학을, 과학을, 혹은 사회학, 정치학, 인류학을 찾는다. 분식집에서 랍스타를 주문한다. 혹은 노래방에서 클래식 음악을 선곡하고, 악기를 요청한다. 나는 자기계발을 하라고 모는 사회만큼이나 자기계발은 무용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나쁘고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남들에게 어떠한 조언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안되는 것은 남들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아주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자기계발서는 기본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주고 조언을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조언이 마음에 와닿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조언이 마음에 안드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시간관리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시간의 소중함과 시간관리의 필요성, 그리고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는다든지, 사회의 모순으로부터 눈멀게 한다든지,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잘못 인식하게 한다든지 하는 말들은 모두가 허망하다. 자기계발서만 읽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에게서 자기계발서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회가 아프면 개인은 그 속에서 시를 짓고 사랑을 나누고 행복하면 안되는 것인가? 사회가 불평등하면 개인은 자기계발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생각한다. 수신이 우선이다. 나를 바꿔야 사회도 바꿀 수 있다. 나는 자기계발과 수신을 혼동한다. 차라리 그것이 낫다.

 

 조금 더 생각해보자.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따져보자. 첫번째 비판은 '자기계발서는 쓸모없다. 도움이 안된다. 뻔하다.' 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안 읽으면 된다. 쉽게 해결 된다. 아무도 그들에게 자기계발서를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멍청한 사람들을 돕고 싶을 것이다. 여기서 대립이 발생한다. 정말 자기계발서는 쓸모 없는 것일까? 도움이 안될까? 뻔한 내용일까? 일단 나는 자기계발서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위의 명제에는 반례가 존재한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존재하면 저 명제는 항상 참은 아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남들도 도움이 안된다는 1차원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면 문제는 해결 된다. 자기계발서는 뻔할까? 역시 뻔한 사람에게는 뻔하고 새로운 사람에게는 새롭다. 그리고 원래 자기계발서란 뻔할 수도 있다. 뻔해서 안될 것은 또 머인가? "시간은 소중하다." 라는 뻔한 이야기를 또 해서 안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그 뻔한 것들을 얼마나 뻔하게 잘 실천하고 있는가? 자기계발서가 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죄와벌>도 뻔하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죄와 벌' 이라니 얼마나 뻔한가! <노인과 바다>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이 고래잡다가 실패한 이야기라니. 뻔한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문학작품도 읽고 나면 뻔한 줄거리이다. 한 줄로 요약 불가능한 책은 없다. 하지만 그 뻔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숭고함이 숨겨져 있고, 심오한 사상이 들어있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다. 뻔함 속에 진리가 들어있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읽지도 안고 함부로 뻔하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뻔하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두번째 비판은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최근에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에세이>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아쉽게도 이 책에서도 사회의 모순과 사회의 불평등을 지적하지 않았다. 과학책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실망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황당해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책을 자기계발서로 아이작 아시모프를 이지성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과학에세이>를 <시간관리>로 바꾸면 사람들은 공감한다. 왜 우리는 자기계발서에게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주기를 원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학자금대출과 취직이 안되서 힘들어 하면서 자기계발서를 읽고 있다고 하자. 자기계발서에서는 그 사람에게 "너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야." 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TV광고에서도 예능프로에서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헬스장에서도 알려주지 않고, 지하철 안내방송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에서는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채 자기계발의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논리인가! 그 사람이 접하고 있는 것은 자기계발서만이 아니다. 누구도 자기계발서에만 둘러싸인채 세상을 살지 않는다. 자기계발서 말고도 사회의 모순을 알려줄 책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 논리라면 자기계발서만의 잘못이 아니라 (당신을 포함해서)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는 모든 것들의 잘못이고, 사회의 모순을 깨닫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그 사람의 잘못이다. 도대체가 왜 자기계발서가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고, 허수아비처럼 공격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모든 자기계발서의 표지에 ※자기계발서는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서에만 장시간 몰두하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에 눈 멀고 이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주의사항을 알려줘야 할까?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그렇다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알려주지 않는 모든 책에 이런 주의사항을 붙여야 할 것이다. 심지어 시집같은 문학작품에도 말이다. 책 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 모든 예능프로, 모든 상품, 심지어 헬스장 등 끝도 없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에도 이런 주의사항을 붙여놓고 다녀야 할 것이다. 헬스장에서는 사회의 모순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피곤하고 지치는 이유는 장시간의 노동, 임금착취,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데 헬스장은 그것을 외면한채 개인에게만 건강해지라고 말하고 사회의 모순에 눈멀게 한다. 왜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자기계발서에는 그대로 적용하는 것일까? 누가 속 시원하게 알려줬으면 좋겠다.

 

 세번째 비판은 '그냥 자기계발서는 나쁘다.' 라는 비판이다. 왜 생긴대로 살면 되지 자기계발을 하고 자기계발서를 읽어서 다른 사람들과 같아져야 하느냐 라는 비판이 있다. 역시나 해결책은 이런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안 읽으면 된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자기계발을 수신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향상을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생긴대로 살기에는 우리는 너무도 불충분하다. 너무 게으르고, 나태하고, 천박하고, 부끄러움을 모르고, 충동적이고, 어리석다. 간단히 말해서 어리석다. 최근에 본 책 <인간의 품격>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을 '뒤틀린 목재'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자는 결단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행동은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고칠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나이만 먹어갈 뿐이다. 나이들어서 남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 나이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인간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사실 이렇게 이야기해도 결국은 공허할 뿐이다. 결국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나의 인식일 뿐이다. 자기계발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이 글로 인해 설득당하기는 커녕, 더욱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자기계발서가 쓸모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쓸모없는 것 같다. 사실 자기계발서보다 좋은 책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좋은 자기계발서는 드물다. 나도 굳이 자기계발서를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장자>의 말씀처럼 쓸모없는 것은 없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다. 자기계발을 수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그러면 모든 책이 자기계발서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자기계발에 쓰일 수 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물론 내가 모든 자기계발서가 좋고, 모든 자기계발서 작가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발 이것을 혼동하지 마시길 바란다. 소설도 모든 소설이 좋고, 모든 소설이 재미있고 훌륭할 수가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무수히 많이 봤다. 자기계발서도 좋은 책이 있고 나쁜 책이 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내가 구태여 말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몇 권의 안좋은 자기계발서와 자기계발서작가를 놓고 모든 자기계발서가 안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위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나는 굳이 자기계발서가 사회의 모순에 대해 말해야하는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해주길 기대하고 읽지 않는데 말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만은 반드시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사회의 모순을 모르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자기계발서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혼동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기계발서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책이 아니라 개인을 바꾸기 위한 책이다. 사회를 비롯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은 그보다 쉽다. 둘다 해서 안 될 것도 없다. 나를 바꾸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것은 전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택일의 이분법이 아니다. 제발 이것도 혼동하지 마시길. 자기계발을 한다는 것이 사회의 모순에 눈감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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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6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내용도 좋고 자기계발서에 대한 비판에 대체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과학책이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자한테 실망했다는 의견은 의외군요. 과학책이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거나 대척점을 이뤄야한다는 말씀인가요? 자기계발서까지도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6 08:21   좋아요 1 | URL
그것은 반어법이었습니다ㅎ 글을 수정해야겠네요.
물론 저는 과학책을 읽을때 사회모순을 지적해주길 기대하면서 읽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나 힐링서에게서 사회모순을 지적해주길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저자에게 실망했다느니 하는 것을 패러디해 본 것입니다.
아이작아시모프에게 실망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ㅎㅎ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