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문학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열띤 토론, 논쟁을 하고 왔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결론은 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을 바꾸는 것도,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오늘은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의상 상대방을 A라고 하죠. A군은 상대주의론자 입니다. 저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은 머라고 불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편적. 합리적 상대주의라고 해보겠습니다. 혹은 절대주의라고 해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A군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절대적 진리란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A군의 관점이 극단적 상대주의라는 것이고,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는 제가 판단하기에 너무도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예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은 극명한 대립만을 확인한채 끝났습니다.

 

 예를들어 인신공양 문화가 있습니다. 고대 잉카, 아즈텍, 마야 문명에서는 인신공양 문화가 있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서 산 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제물로 바쳤죠.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이것을 잘 보여줬습니다. 과연 이런 문화도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고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일 뿐이고 여기에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개입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일까요? A는 그렇다고 보고, 저는 단연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타협점도 없습니다. 서로 자기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평행선만을 그을 뿐이죠.

 

 또 다른 예로 이슬람 문화에서는 '명예 살인'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이라크의 한 소녀가 영국인 남자와 친구를 맺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집안의 남자 형제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명예 살인이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자 가족 중 누군가가 그 여성을 살해하는 풍습을 말합니다. 이것도 문화 상대주의 입장에서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그 문화의 사회규범과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니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역시 단연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A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A군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인신공양이나 명예살인이라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또 다른 진리에 의한 폭력이 됩니다. 아즈텍 문화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나 이슬람 문화에서 명예살인을 저지른 남자 형제는 제 생각을 이해를 못하겠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니, 왜 우리 문화에 대해서 너가 왈가왈부 따지느냐? 너가 진리냐? 어떻게 너가 진리라고 그렇게 확신하냐? 너가 옳다는 생각이 옳듯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라고 이야기하겠죠.

 

 이러한 예들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A군은 힘과 권력, 시스템을 항상 우위에서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저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극단적 상대주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없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제 논리로 A군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평행선이죠.

 

 제가 최근에 본 뉴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도였나? 아무튼 어디에서 누군가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고, 이것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맞아죽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맞아 죽은 사람은 그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리고 그 어머니도 다른 사람들을 말리면서 오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맞아죽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런 일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와 다른 문화에서 벌어진 일이고,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 생각하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야 옳은 걸까요? 설사 그 맞아죽은 사람이 종교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먹었다고 해도 그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도킨스가 분노하는 이유는 사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분노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친 짓은 어떤 이유에서든 미친 짓이죠. 인류가 지켜야할 보편규범이라는 것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없다는 입장과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죠.

 

 물론 문화적 상대성은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에 지켜져야할 도덕이나 윤리는 반드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떠한 기준도 없다면, 우리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절대적인,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할 도덕윤리가 없다면,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A군을 설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A군도 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극단적 ISIS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시작지점이 다릅니다.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과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다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극단적 문화상대주의조차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최소한의 생명존중은 지켜져야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시든지 간에 그것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한 쪽을 맞다고 생각하면 다른 쪽은 틀렸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생각을 하시든지 간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만약 ISIS에게 포로로 잡힌다면 아마 설득을 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6-02-14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만도 문화 상대주의로 포용을 해야되느냐 마느냐로 논점을 이동하는 것이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죠. 먼저 야만이 존재하려면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어야 겠지요. 그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면 이 논쟁은 성립하지 못하겠지요.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1   좋아요 0 | URL
배익화시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류의 보편적인 도덕률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비로그인 2016-02-14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대적이라는 말은 절대적인 것이 있기때문에 생긴 말이죠.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이 절대 진리가 되면 역설적 모순이 발생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50   좋아요 0 | URL
저 대신 좋은 답변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망고林 2016-02-14 0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공계 교육을 받아서, `절대적 진리`라는 말에는 어떤 맥락에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순수수학은 예외). 저는 모든 학문이 기본적으로는 과학과 같이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오류의 발견 및 수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동설도 한때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천동설과 치열하게 누가 더 정확한지 맞붙던 라이벌이었습니다. 지금 고양이라디오님과 A군이 벌이는 논쟁도 몇백년, 빠르면 몇십년 안에 지동설과 천동설 간의 논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는 박빙의 매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론에서 제일 얄미운, 비겁한 제3자 위치를 택해서 유감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넓게 보면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간주하기엔 너무 다양합니다. 물론 생식행위의 결과 가임인 자손이 나온다면 같은 종이다-라는 현재 우리의 종 분류의 카테고리 하에서는 인류는 모두 같은 종입니다만, 인간이 얼마나 특별하게 문화적인 종인지 생각하면 문화에 따라 좀더 세분화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인류는 자연선택설을 가장 자주 의심하게 만드는 종일 만큼 기상천외하고 발생 및 지속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운 문화들을 갖고 있는 종이기도 하죠.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우리는 사마귀 암컷이 사마귀 수컷과 교미한 뒤 머리부터 먹는다고 해서 사마귀를 욕하고 사마귀의 대체적인 번식수단을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 그렇구나- 신기해하죠. 좀 덜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오래된 미래] 등의 훌륭한 인류학 서적들이 수차 호소해온 `서구 중심 사고방식의 강요와 산업화 우월주의의 폐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은 인류가 택한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인용문도 나오죠. [오래된 미래]는 평화롭고 조화롭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던 라다크 사람들이 관광객, 개발, 돈&자본주의 등이 라다크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느끼며 실제로 빈곤해지는지 보여줍니다. [인류의 기원]에서는 농업으로 인해 발생한 학대에 가까운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의 반복, 인구 폭발 및 인구 밀집에 따른 전염병과 영양 결핍 등 수많은 인간의 행복과 삶을 앗아간 온갖 악재를 설명해줍니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 꼭 선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저는 요즘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히 옳은 일이지만, 그 대상자가 아닌 그 대상자가 속한 문화 전체를 변화시켜야할 타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우월주의일 수 있으며 오히려 상대의 문화가 상징하는 것들에 대한 반감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종이 살아온 방식은 언제나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 종이 살아남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종의 상황에 대한 적응력에 달려있다고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야만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1:02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망고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교육의 기회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는 것 뿐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하지만 망고님의 말씀대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보다 보편적 도덕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망고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3자에 입장에서는 `그들의 문화는 참 특이하구나.`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문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높은 제단 위에서 순식간에 심장이 꺼내지고 싶지 않을 것이며, 돼지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오해를 받아서 맞아죽고 싶지 않을 것이며, 영국 남자친구하고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해서 가족에게 살해당하길 원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문화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이 아닐까요?

이런 문화적 양식이 꼭 개인이나 집단의 생존에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적 양식은 마치 `바이러스` 처럼 우리의 문화에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밈`의 개념처럼 말입니다.

망고林 2016-02-14 0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실례지만 IS는 Daesh나 적어도 ISIS로, 이슬람주의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로 바꿔써주셨으면 합니다. Islamic state라는 이름은 그런 테러리스트 집단에게는 전혀 가당찮을 만큼 과분한 명칭이고, 그들은 이슬람(=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교의 경전을 자기네 구미에 맞게 고르고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원리주의자`라고 부르는 파렴치한 집단입니다. 진짜 이슬람의 핵심 가치는 화합과 평등과 평화인데 말입니다. 이미 모든 이슬람권 국가들이 Daesh의 만행을 비난하고 그들에 대한 지탄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원리주의자들과 같이 이런 폭력적이고 과잉보호적인 종교분파의 발생은 여러 종교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 이들 모두를 `원리주의자`로 부르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Daesh(그들에겐 모욕적인 이름)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라고는 부르지만, 그들이 원하는 이름인 Islamic state라고는 불러주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동참해주시면 조금이나마 그들의 위세를 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2-14 10:44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