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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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거창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읽은 우리나라 인문학자의 책이 무엇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아무튼 나의 짧은 기억의 범위에서는 이 책과 정희진씨는 단연 최고였다.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붉은돼지님 덕분에 앍게 되었다. 붉은돼지님의 리뷰를 (앗! 이름을 빨간색으로 하면 싫어하시려나;; 이름이 아닌 아이디는 괜찮겠죠^^?)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붉은돼지님이 추천해주셔서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못 읽을뻔했다. 아니 안 읽을뻔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10권을 빌리면 가끔 다 못 읽고 반납하기도 한다. 반납할 때 이 책은 손도 안댄 상태였다. 아니 목차는 훑어봤었다. 79권의 책 중 내가 읽은 책은 1권, 그리고 아는 책도 몇 권 없었다. 저자와의 공감대, 그리고 흥미유발실패. 그리고 나는 정희진씨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모르는 작가가 쓴 모르는 책에 대한 글. 구미가 당길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붉은돼지님이 추천해주신 것이 생각나서 '어떤 책인지 한 번 읽어는 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반납하기 전에 책을 펼쳤다.

 

 좋은 책은 정말 좋은 책은 보통 책의 서문만 읽어도 느낌이 확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이 그랬다. 저자의 깊이와 내공이 느껴졌다. 내가 몰랐을 뿐 어마어마한 고수셨다. 그가 읽은 책 79권도 정말로 좋은 책들이었다. 전문적인 분야의 어려운 책들도 많았지만, 읽어보고 싶은 책들도 상당히 많았다. 지금 그 책들을 읽어나가는 중이다.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읽기 쉽지는 않았다. 내용을, 글을 곱씹으면서 읽어야 했다. 한 번에 소화시키기에는 내게 과분한 책이다. 나중에 다시 재독을 하고 싶은 책이다.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좋았던 구절을 소개하고 책의 에필로그에 정희진씨가 독후감에 대해 쓴 글이 좋아서 그 부분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굉장히 공감가는 글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후감의 의미는 단어 그 자체에 있다. 독후감. 말 그대로 읽은 후의 느낌과 생각과 감상이다. 책을 읽기 전후 변화한 나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없다면 독후감도 없다. 독서는 몸이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통과할 수도 있고 몸이 덜 사용될 수도 있다. 터널이나 숲속, 지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것처럼 어딘가를 거친 후에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다.

 독후감은 그 변화 전후에 대한 자기 서사이다. 변화의 요인, 변화의 의미, 변화의 결과..... 그러니 독후의 감이다. 당연히, 내용요약으로 지면을 메울 필요가 없다. 독후에 자기 변화가 없다면? 왜 없었을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해 쓰는 것도 좋은 독후감이 된다. 나는 왜 책을 읽고 아무 느낌이 없을까도 좋은 질문이다. 자기 탐구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더 좋은 독후감이 될 확률이 높다. 자신의 경험, 인식, 지식, 가치관, 감수성에 따라 여정의 깊이는 달라진다. 독후감의 수준은 여기서 결정된다.

 

과거엔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지금은 위협이 되는 것. 작가는 중독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인생에서 완전한 기쁨이나 완벽한 절망은 없다.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사람, 생각, 조직...)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내게 이 이야기는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였다. 20년 된 관계, 30년 된 생각, 사라진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이해는 읽는 이의 이해(利害)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이해는 난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이해의 영어 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하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이해는 사랑과 지식을 아우른다. 사랑은 수용이다. 상대를 수용할 때 이해는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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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2-1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역시 제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 뒤짚에쓰며 털어줄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날잡아서 죄다 털어줘야겠어요 ㅎ 저도 빨리 읽고싶어집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2-18 21:02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았어요. 해피북님 좋은 책을 책장에 많이 보유하고 계시군요ㅎㅎㅎ
저도 먼지 뒤짚어 쓰고 있는 책들 언제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