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윤지 작가는 매불쇼에서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레디컬 페미니즘을 저격하는 모습과 솔직한 모습이 인상깊어서 저자의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도 담겨있고 저자의 정치 행보도 담겨 있습니다. 응원하고 싶은 작가, 정치가입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신 판사였습니다. '문세광 사건'의 주심 판사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젊은 남성들조차 넓은 진보의 품을 허락 받지 못했다. 그것은 성 관련 사건을 정치화한 결과였다. 정치권과 언론, 여론이 편파적으로 페미니즘 진영의 손을 들어준 탓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맥락은 더욱 분명해졌다. 지금의 2030 남성들은 정치적으로 고립된 채 '차악'으로 보수를 지지하며 '무고'를 두려워한다. -p126
2030 남성들이 왜 보수가 많나 궁금했는데 아마 이런 원인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페미니즘에 맞섰던 보수 정치인이 2030 남성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높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의 실제 적용은 이렇다. 여성이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 그녀는 바로 피해자로 간주된다. 그녀가 설령 가해자에게 연정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할 수 없다. 그 사실을 지적하는 순간 2차 가해가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성이 조금이라도 확인되면, 모든 의문은 닫히고 여성은 확정된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2차 가해 담론은 페미니즘 담론을 더욱 경직시켰다.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모든 시선을 '가해'로 규정하면서, 실질적인 토론과 반성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p128-129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형사재판에서 사실인정을 반드시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원칙), 죄형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명확히 규정되어야 하며, 법률 없이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는 지켜져야 합니다.
나는 사건 초기에 명확한 물리적 저항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의 기억은 사라졌고, 어느 순간 나는 가해자의 요구에 마치 노예처럼 협력하고 있었다. 그 사실까지 법정에서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기억 안에서 확실한 것만 말하고 싶었다. 애매한 구석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래도 윤리적 순결주의에 빠지는 편이다. 그리고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페미니즘적 법리 해석에 정면으로 반대해온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내 사건은 덮고 가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나와 가해자의 관계는 이어졌다. -p144
저자는 성폭력을 당합니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신고하면 증거가 없이도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주장해온 것과 반대되는 것이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자 본인의 신념에는 위배되지만 가해자를 방치하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으니 그래도 신고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쉽사리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도 합니다. 성폭력과 인간관계는 다를 수도 있는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