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긴 작품을 읽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재밌는 소설은 <죄와 벌>이후로 처음이다. 




 그날 내내, 그녀는 자기보다 뛰어난 배우들과 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듯한, 그리고 자신의 서툰 연기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p181


 하, 어쩜 이런 비유를 할 수 있는지! 



 어떠한 결과도 이루어 내지 못하는 그 모든 긴장이 레빈의 마음속에 고통을, 꿈에서 육체적 힘을 행사하고 싶을 때 맛보는 그 원통한 무력감과 비슷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p204 


 어쩜 이리 찰떡같고 신선한 비유를 할 수 있는지.



 만일 선이 이유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야. 만일 그것이 결과를, 즉 보상을 갖는다면, 그것 역시 선이 아니야. 따라서 선은 원인과 결과의 사슬을 초월해 있어. -p518


 레빈은 오랫동안 고심했던 인생의 해답을 농부와의 대화를 통해 문득 깨닫습니다.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p560 


 소설을 마지막 문단입니다. 


















 톨스토이는 푸슈킨의 <벨킨 이야기>를 읽고 <안나 카레니나> 집필에 착수했다고 한다. 예전에 본 거 같기도 한 소설이다.



 글쎄, 자네는 내가 레빈의 편이라고 생각하는군. (중략) 난 물론 사제의 편이야. 절대 레빈의 편이 아니라네. 하지만 난 그 이야기를 네 번이나 고쳐 썼네. (중략) 난 어떤 이야기든 작가가 누구에게 공감하는지 사람들이 알아챌 수 없을 때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네. 난 이것을 들키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만 했어. -p574 


 대단하다. 작품에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고 자신과 반대 편인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훌륭히 쓸 수 있다니. 



 드디어 톨스토이의 소설에 빠져들었다. <안나 카레니나> 최고의 소설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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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3-15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완독인가요?

고양이라디오 2025-03-17 17:33   좋아요 1 | URL
네! 2025년 큰일 벌써 했네요ㅎ 대만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