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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2년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출근길에 버스를 탔다. 그 때는 차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당시 나는 시골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 손에는 <스푸트니크의 연인>이 들려있었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었다. 그 때 든 생각은 '아, 이런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 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만하고 치기어린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그 때 그렇게 생각했다. 그 때의 감정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문장이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웠다. 10년이 지나 최근 다시 읽었을 때는 그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죽어도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설의 내용도 전혀 기억이 안났다. 책을 읽으며 단편적인 몇몇 내용이 기억났을 뿐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몇몇 이야기들만이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어떤 문장이 그렇게 좋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장을 필사해놓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이 책을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함께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소설이었지만 역시나 내가 사랑하는 소설은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다. 10년 전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소설 속 여주인공 스미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겠다. 언제부터 사랑하게 되었는지. 소설 속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가 무사하길,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랬다.
소설의 결말은 열린 결말이다. 그녀가 무사히 돌아왔는지, 아니면 주인공 '나' 의 환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왠지 나는 그녀가 돌아오지 못한 거 같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이 싫고 하루키가 미웠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 결말이었다.
그녀는 정말 돌아왔을까?
읽은 지 얼마 안됐지만 다시 읽고 싶은 소설이다.
p.s 알라딘 책소개에 이런 글이 있다. "실제로, 제1장의 도입부는 하루키 작품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농밀한 아름다움을 품은 명문장으로 유명하다." 내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 문장이 이 문장이었을까? 초반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입부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