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단편집 <변신, 선고 외>를 읽었다. 을유문화사 작품으로 읽었다. 카프카의 예민하고 예리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는 합리성과 계몽의 도래와 함께 비합리와 야만이 단순히 사라지거나 그저 지나간 과거의 일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비합리적 세계는 언제든지 다시 귀환할 수 있다. 근대적 합리성은 비합리성을 제거하고 세계의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합리성은 억압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p250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은 <변신>과 <유형지에서> 였다. 특히 <유형지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유형지에서>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한 여행가가 유형지에서 장교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장교는 죄수들을 처형기계로 처형하는 사람이다. 전임 사령관이 그 처형기계와 시스템을 만들었다. 죄수는 자신의 죄목을 알지도 판결을 받지도 않고 처형된다. 당연히 반론 또한 없다. 신임 사령관은 이런 악습을 없애려 한다. 오직 장교만이 굳은 신념으로 이 시스템을 옹호하고 있을 뿐이다. 장교는 여행가에게 이 시스템을 옹호해달라 부탁하지만 여행가는 거절한다. 장교는 그 처형기계를 통해 자살을 한다. 그 후 여행가는 한 찻집을 방문한다. 그 찻집에는 전임 사령관의 묘비가 있다. 그 묘비에는 그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새겨져 있다.


 이제 우리는 장교가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합리성과 계몽, 근대 이성가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 속에서도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계몽과 근대 이성을 믿고 신뢰했다. 야만과 폭력은 멀어보였다.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2차세계 대전이 시작되고 홀로코스터가 벌어지고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이후 냉전이 시작되고 수많은 공산주의자가 죽거나 남을 죽였다.


 카프카의 예언이 맞은 거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합리성과 야만은 억압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 또 우리를 경악하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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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13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 처형기계에 대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했다가 비슷한 결론에 이른듯요

고양이라디오 2024-03-13 16:59   좋아요 1 | URL
최근에 <유형지에서>를 읽으셨나요? 카프카 소설 상당히 그로테스크합니다.

그레이스 2024-03-13 17:28   좋아요 1 | URL
저는 단테의 신곡에서 언급되는 ˝시칠리아의 암소˝ 때문에 생각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