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의 유령>은 하루키가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고자 작정하고 쓴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공포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잔인하고 과격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뜨거운 공포가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모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공포, 오랫동안 지속되고 벗어날 길이 없는 차가운 공포가 있다. <렉싱턴의 유령>은 후자다. 얼음처럼 차가운 공포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공포. 자신의 사랑이 거부당하고 존재까지 부정당하는 공포. 집단 따돌림. 결혼이라는 새장에 갇힌 공포. 사별의 공포. 죄책감이라는 공포. 소중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잊혀진다는 공포.



 "우리 인생에서 정말로 무서운 건, 공포 그 자체는 아닙니다. 공포는 확실히 인생의 내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서 때로는 우리의 존재를 압도해 버립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공포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무엇인가를 주어버리게 됩니다. 내 경우, 그건 바로 파도였습니다." -p199



 이 책 독서모임 선정도서로 추천해봐야겠다. 공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인생 내부에 도사리는 수많은 공포들에 대해.




<침묵>


  "한마디로 고독이라고 말했지만 고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신경이 갈기갈기 찢기듯 쓰리고 아픈 고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습니다. 그런 고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을 깎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만큼 돌아옵니다. 그것이 내가 권투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p61


 내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하는 건, 아오키 같은 인간이 내세우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믿어버리는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맛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으로 행동하는 무리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무의미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고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무리들이지요.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p94 


 <침묵>은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남자는 그것을 버텨냈고 이겨냈다. 그는 복싱으로 단련된 체력과 멘탈이 있었고 그리고 어느 정도 강인한 정신을 소유했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었다. 죽어버릴까하는 아슬아슬한 지점까지도 갔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 집단에서 소외되는 따돌림은 정말 큰 고통이다. 주인공이 말하듯 따돌림을 앞에서 주도하는 사람보다 무서운 건 아무 생각없이 그에 따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히틀러에 동조했던 수많은 국민들이 생각난다. 보통의 사람들. 아무것도 비판할 줄 모르는 사람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정말 무섭다. 



 

 













 존 포드가 감독한 <아파치의 요새>란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무척 재밌다고 한다. 보고싶다. 



 


   

 












 나쓰메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은 <렉싱턴의 유령>처럼 오컬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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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3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렉싱턴의 유령> 하루키 표지모델 버젼으로 읽었었는데 ㅋ 이 표지가 더 좋은거 같습니다 ㅋㅋㅋ 표제작 완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3-05-30 18:33   좋아요 1 | URL
처음 읽었을 때는 표제작이 가장 좋았는데 다시 읽으니 <토니 타키타니>가 가장 좋더군요. 영화까지 보고 싶어졌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