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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칼 포퍼 지음, 허형은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칼 포퍼를 이제서야 만났습니다.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진작 만나뵙고 싶었고 만나뵀어야하는 분인데 말입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을 조금 읽었습니다. 분명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이 두껍기도 했고 읽는데 집중과 노력을 요하기도 한 책이라 다른 책에 밀려 잊혀졌습니다.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는 356p라서 그리 부담스러운 두께도 아니었고 어렵기는 했지만 과학철학은 워낙 좋아하는 주제라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완독하는데 힘들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칼 포퍼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현존하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철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로 칼 포퍼를 꼽았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서 세상의 주목을 받은 탈레브는 <안티 프레질>, <블랙 스완>, <행운에 속지마라> 등의 책을 쓴 저자입니다. 저는 <안티 프레질>을 읽고 정말 너무 좋아서 그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칼 포퍼와 데이비드 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일단 칼 포퍼는 만났으니 이제 다음은 흄 당신입니다! 칼 포퍼의 책들도 전작을 다 읽고 싶습니다. 집에 있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칼 포퍼는 과학철학자입니다. 본인도 자신을 과학철학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철학에도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칼 포퍼의 과학철학에 가장 중요한 공헌은 '반증주의' 입니다.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데 '반증주의'는 매우 유용하고 합리적인 도구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반증할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이다.' 라는 주의입니다. 예를 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명제를 반증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이런 명제는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질문입니다.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 라는 명제는 어떨까요? 이 명제는 반증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까맣지 않은 까마귀만 발견해도 이 명제는 반증됩니다.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명제를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진화론은 굉장히 좋은 과학이론입니다. 진화론은 아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폭넓게 적용됩니다. 폭넓게 적용된다는 것은 반증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아주 작은 반례만 있어도 진화론이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토끼가 존재할 수 없는 지층에 토끼 화석이 발견된다면 그것으로 진화론이 반증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한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진화론이 반증되기는 이렇게 쉽습니다. 진화론은 우리에게 수많은 통찰과 추측을 제공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반증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반증주의'도 다루지만 진화적 인식론을 다루는 점이 재밌고 신기했습니다. 처음 생각해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과 생물체가 진화하는 과정을 같은 논리로 설명하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해결책을 제거합니다. 생물의 진화도 이와 같습니다. 생물은 환경이라는 문제에 처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해결책인 유전적 변이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해결책인 유전적 변이는 제거됩니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과학철학을 다루고, 2부는 정치철학, 사회철학에 대해 다룹니다. 마르크스주의와 전체주의를 자유와 민주주의와 비교해서 분석하는 통찰이 좋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왜 그가 평생을 자유와 평화를 위해 투쟁했는가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평생 문제들과 사랑에 빠졌더니, 어느 날 철학자가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공부하고 사색한 한 노년의 철학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값진 책이었습니다. 독서 모임 전에 책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울러 칼 포퍼의 책들도 전작을 다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