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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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5년 만이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신기하다. 2017년 7월 29일에 <기사단장 죽이기 2> 리뷰를 썼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짜에 리뷰를 쓴다.


 멋진 제목이다. 기사단장 죽이기. 나는 하루키의 문장을 사랑한다. 그의 참신하고 설득력있는 비유들을 사랑한다. 이 소설은 멋진 메타포(은유)와 이데아까지 등장한다. 기사단장은 누구일까? 왜 그를 죽여야 할까?


 (스포일러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데아로서의 기사단장을 죽인다.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소설 속 저명한 일본화가 아마다 도모히코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혼을 담아. 하지만 그 그림을 발표하지 않고 숨겨놓는다. 소설의 주인공이 그 그림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멘시키라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신비한 인물도 등장한다. 그는 때로는 주인공의 조력자이지만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깊은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왜 '기사단장 죽이기' 라는 그림을 들춰내야 했을까? 그 그림을 들춰내지 않았더라면 일본의 극우들에게 공격받을 일도 없었을텐데. 


 그 이유는 하루키의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P.51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 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P.97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소설 속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는 빈 유학 당시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침략했다. 나치 고관 암살계획을 세웠다 실패하게 된다. 아마다 도모히코는 구사일생으로 일본으로 송환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살해되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도 함께. 

 나치 고관 암살 계획이 있기 전 아마다 도모히코의 동생은 징병되어 난징대학살을 겪고 일본으로 돌아와 자살한다. 그 일이 아마도 아마다 도모히코가 암살 계획에 가담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리라. 아마다 도모히코는 실패한 암살 계획을 그림을 통해서 실현시켰다고 유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사단장은 나치 고관이 아니라 역사 속 악의 은유로 생각할 수 있다. 히틀러, 나치, 홀로코스트, 난징대학살과 같은. 소설 속 주인공은 이데아로서, 은유로서의 기사단장을 죽임으로서 열린 고리를 닫는다. 역사 속에서 실현됐어야 하지만 실현되지 못한 정의를 실현한다. 


 하루키의 아버지도 중일전쟁 때 징병당해 전쟁을 겪었다. 하루키의 아버지는 난징전에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일들을 경험했고(이를테면 일본인 포로의 목을 베는 일) 그 이야기는 어린 하루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은 어두운 역사를 덮어 버리려 하지만 하루키는 소설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어두운 역사를 들춰낸다. 

    


"내가 이글에서 쓰고 싶었던 한 가지는,

전쟁이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_무라카미 하루키

  


 위 글은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할 때>에 대한 하루키의 답변이지만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답변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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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30 0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7월 29일이 의도된 날짜가 아니라 우연이라시는 거죠?^^ 신기하네요 5년의 시차

고양이라디오 2022-07-30 22:03   좋아요 2 | URL
네ㅎ 예전에 쓴 리뷰를 보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우연히 같은 날짜 더라고요^^

5년 후에 또 읽어야겠네요ㅎ

얄라알라 2022-07-30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우연. 좋아요^^

고양이라디오 2022-07-31 10:23   좋아요 0 | URL
저도요ㅎㅎ